“역시 손열음이었다”…피아노와 대금의 솔직한 대화
이 “국악기를 서양화해서 만난 기분...역시 손열음”
손 “미지의 세계 도전...국악 아니면 안했을 협업”
경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에서 만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쓰였다. 00학번 이아람(42)과 02학번 손열음(37). 손열음은 중학교 졸업 이후 한예종에 예술영재로 입학했다.
“클래식은 서초동, 전통음악은 석관동에서 공부해, 같은 캠퍼스를 거닌 적은 없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다녔더라고요. 학교 축제에서 어쩌면 한 번은 마주쳤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웃음)” (손열음, 이아람)
선후배의 첫 만남. 각자의 영역을 넘어 마주 선 그곳은 ‘백야’(7월 21~22일·달오름극장)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상이 아닌 경계에서의 꿈 같은 만남”이라는 의미에서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손열음은 처음으로 다른 음악 장르와 협업을 시도한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던 이아람도 피아노와의 단독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열음의 고향인 원주와 서울을 오가며 공연 준비에 한창인 두 사람에게 ‘특별한 만남’의 이야기를 들었다.
▶ 피아노와 대금의 만남…“국악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협업”
두 사람의 협업은 00학번 선배 이아람의 ‘구애’로 성사됐다. 대금 연주자이면서 한국 창작음악의 지평을 넓혀온 음악그룹 나무와 블랙스트링의 멤버인 그는 ‘2023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으며 손열음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국립극장의 여름 음악 축제다. ‘손열음’이어야 했던 이유가 분명했다.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해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는 손열음의 ‘찐팬’을 자처했다.
“피아노 연주의 여러 장르를 즐겨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열음 씨의 행보를 따라가게 됐어요. 몇 년 전부터 함께 해보고 싶었는데, 워낙 유명한 아티스트이다 보니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죠.” (이아람)
‘여우락 페스티벌’은 ‘절호의 찬스’였다. 올해가 안성맞춤이었던 것은 손열음에게 모처럼 여유가 생긴 여름이기 때문이다. 5년간 이끌어온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 직을 마치며, “6월 말~8월 초가 그나마 한가한 시기”가 됐다. 게다가 손열음의 전통음악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은 두 사람의 협업 가능성에 청신호를 밝혔다. 손열음은 국립극장의 완창 판소리를 혼자 보러 다닐 만큼 ‘고급반’ 국악 감상자다. 학구적인 음악가인 그는 이번 협업이 “전문가에게 전통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봤다.
“클래식 음악은 세계의 언어라고 하지만, 발원지는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제가 나온 곳의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서양음악보다 국악을 가까이 느끼는 것은 아니에요. 서양음악은 저의 모국어이니까요. 하지만 원래 나라는 사람이 나온 곳의 음악, 다른 지역의 고전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고전음악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악이 아니었다면 다른 장르와의 협업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은 나지 않았을 거예요.” (손열음)
연주자이자 기획자, 작가로 활동하며 ‘클래식 계의 팔방미인’으로 꼽힌 손열음에게 이 공연은 또 한 번의 도전이다. 전통음악과의 협업도 처음인 데다, 기존 클래식 공연에선 볼 수 없었던 그의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줄 무대이기 때문이다. 즉흥의 영역을 넘나들며 창작자로의 면모도 보여준다.
이아람은 첫 만남을 떠올리며 “손열음 씨가 공연의 외부 작곡가가 있냐고 물어봤다”며 “이 공연은 우리 두 사람이 작업하는 거라 했더니 그러면 해보겠다는 답을 줬다. 무척 의외이면서도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고 했다.
“연주자는 재창작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창작은 미지의 영역이기에 호기심도 있었어요.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도전할 용기가 생기진 않았는데, 지금 용기내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못하지 않을까 싶어 (창작도) 해보고 싶었어요.” (손열음)
▶ 재해석, 즉흥, 창작의 무대…모험과 도전, 파격
두 사람의 마음이 맞은 이후론 모든 과정이 속전속결이었다. 공연은 이아람이 세트리스트를 구성하며 큰 틀을 짰고, 손열음이 아이디어를 내며 생각을 맞춰갔다. 연주할 곡은 앙코르를 제외하고 총 여덟 곡. 공연은 크게 세 가지 구성으로 나뉜다. 기존 곡의 재해석(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의 거울’), 즉흥연주(문묘제례악, ‘황종평조 Eb 마이너’), 창작곡(이아람 작곡 ‘아워 임퍼펙션’, ‘룰라바이’, 공동 작업 ‘흘림’) 등이다.
손열음은 피아노 외에 다른 악기들도 함께 연주한다. 현에 고무, 나무조각 등의 이물질을 부착해 음질과 가락을 바꾸는 프리페어드 피아노, 벨 소리가 나는 토이 피아노를 비롯해 하프시코드의 연주도 들려준다.
“피아노 말고도 다른 소리가 나는 악기를 쓰면 어떨까 싶어 아이디어를 내봤어요. 하프시코드는 서양의 고악기이고, 대금은 동양의 고악기이니 두 악기도 조화로울 거라 생각했어요.” 손열음이 정식 무대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것은 2015년 평창 대관령 음악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피아노와 대금은 제법 잘 어울렸다. 이아람은 “대금이 독주회를 할 때 거문고, 가야금, 장구가 반주를 하는데, 피아노는 이 세 가지의 장점을 다 가진 악기”라고 했다.
“가야금처럼 화성 반주를 할 수도 있고, 거문고처럼 무뚝뚝하게 베이스 라인을 칠 수도 있고, 때로는 장구처럼 장단을 치듯 타악기와 같은 반주도 할 수 있더라고요. 천변만화한 악기라 국악기를 서양화해 만난 기분이에요.” (이아람)
대금의 소리가 지나치게 작을 것이라는 음량 차에 대한 우려도 연습 과정에서 조금은 덜게 됐다. 공연에선 자연 음향과 확성의 조화로 새로운 사운드의 실험도 해볼 생각이다.
가장 ‘파격’으로 다가올 무대는 피아노와 대금의 즉흥연주다. 곡마다 달라지겠지만, “그날의 느낌과 서로간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즉흥”이 나오리라는 것이 이아람의 설명이다. “정해진 규칙이나 틀 안에서 그날 그날 느끼는 다른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모험과 도전’이었다. 이아람은 “왜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까 하는 농담도 나눴다”고 했다. 특히 악보에 담긴 작곡가의 이야기를 해석해 자기만의 것으로 옮기는 클래식 음악가에게 즉흥 연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수많은 곡을 연주하며 이미 몸 안에 너무 많은 아름다운 선율과 구성이 있을 테니 그것을 적재적소에 꺼내기만 해도 관객들은 좋아할 거라고 이야기했어요.”(이아람) 이아람의 조언은 손열음에겐 큰 힘이었다. “사실 저도 잘 상상이 안 가고 의심스러웠는데요. (웃음)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라고, 감독님이 워낙 용기를 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창작이라 해도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은 기존에 들어왔던 것의 반복일 테니, 완전히 무에서 유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모든 창작이 그런 거니, 감독님 말을 믿고 하고 있어요.” (손열음)
▶ “피아노와 대금의 동등하고 솔직한 대화”
‘백야’ 무대에선 서로 다른 두 악기가 “공평하게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아람)을 목표로 한다. 이아람은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전통음악계에 와서 대금을 반주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며 “어느 한쪽으로 음악적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고, 두 악기 모두 솔직하고 멋진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피아노와 대금의 만남에서 상상가능한 협업의 형태도 넘어선다. “피아노의 선율 위로 단선율 악기가 유려하게 흐르는” 고정된 형태의 협업을 깨볼 생각이다. “스테레오 타입보다 더 넓은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두 사람의 마음이다.
몇 번의 연습을 통해 다가올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두 사람 모두 “여러 장르에 열려 있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자신의 악기에 대해 사랑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손열음은 “두 악기가 만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배우고 싶어 하게 됐는데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손열음의 이야기에 이아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역시 손열음이었다”고 했다.
“사실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더 빨리 (협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늦게 하는 기분이기도 하고요. 평소 여우락 페스티벌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이곳에 참여하는 관객들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는 멋진 분들일 거라고 상상해왔고요. 이번 무대도 그렇게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어떻게 될지 너무나 궁금해요.(웃음)” (손열음)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환상적인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을 마친 뒤, 그 순간 아름다운 꿈을 함께 꿨다는 느낌을 가지길 바라고 있어요. 서로 다른 악기를 하는 두 사람의 솔직한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아람)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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