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됐는데 감독이라고 말 못하면"…초보 이승엽의 소신, 새 역사의 발판 됐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감독이라고 말 못하면 팀이 아니라고 봅니다. 늘 그렇게 말해요."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의 말이다. 이 감독은 2017년 '국민타자'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현장을 벗어나 있었다. 물론 야구해설위원, KBO홍보대사 등 한 발 떨어져서 야구를 볼 수 있는 곳에는 언제나 있었지만, 지도자로 경험을 쌓은 적은 없었다. 지난해 10월 두산이 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3년 18억원으로 신인 감독 최고 대우를 안길 때 계속 물음표가 뒤따랐던 이유다. 최고 스타 선수가 곧 스타 감독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서다.
이제 첫 시즌 전반기를 마친 시점이지만, 이 감독은 그를 불신하는 시선을 어느 정도는 걷어냈다. 42승36패1무 3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하면서 2위 SSG 랜더스(46승32패1무)에 4경기차로 따라붙었다. 전반기 막바지 9연승을 질주한 기세면 후반기에는 1위 LG 트윈스와 2위 SSG의 2강 체제에 균열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두산이 올해 처음부터 단단한 느낌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이 감독을 비롯해 코치진이 다수 바뀌면서 선수들과 새로 호흡을 맞출 시간이 필요했다. 전력은 특급 포수 양의지를 FA 시장에서 영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개막부터 2선발 딜런 파일(현 방출)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김동주, 최승용 등 영건들에게 일찍부터 많은 이닝 부담을 줘야 했다. 외국인 타자 호세 로하스도 2군에서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타격이 무너져 사실상 국내 타자들로만 버텨 나가야 했다. 외국인 투수와 타자가 동시에 말썽이다 보니 6월 승률이 0.417(10승14패)까지 떨어져 애를 먹었다.
이 감독은 숱한 위기 속에서 판단과 선택이 필요할 때 늘 코치진에 귀를 기울였다. 조성환 수비코치의 의견을 수용해 유격수 이유찬을 2루수로 돌려 효과를 봤고, 센터라인이 계속 흔들릴 때 베테랑 유격수 김재호를 중용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투수 쪽은 베테랑 권명철 투수코치의 의견을 십분 반영했다. 타격은 고토 고지 타격코치와 김한수 수석코치한테 맡겼고, 최근 이영수 타격코치를 로하스 전담으로 붙이면서 또 효과를 봤다. 딜런을 방출하고 9연승 일등공신인 브랜든 와델로 교체할 때는 또 이 감독이 앞장서 구단에 적극적으로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나는 권위가 없다. 너무 가벼워서 탈일 수는 있지만, 여기 나보다 지도자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 자리가 감독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 팀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사람이든,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코치진도 다 능력 있고 경험 있는 코치들이다. 경기를 하다가도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과감히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감독이라고 말을 못하면 팀이 아니라고 본다고 늘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의 이런 태도는 선수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때때로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같이 캐치볼을 하고, 타격 훈련할 때는 옆에서 농담처럼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조언한다. 여전히 선배처럼 느껴지는 감독이란 말을 듣는 이유다.
양의지는 "언젠가는 감독을 하실 분이었고, 감독님과 내가 같이 뛸 수 있다는 게 영광이다. 내가 이승엽이랑 야구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 때 많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경기장에서는 많이 봤다. 다들 아시겠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감독님 반응이 좋아서 재밌다. 아직도 선수 같으시다"고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이 전반기 내내 원팀에 집중한 결과 신인 감독으로 새 역사를 쓸 기회까지 잡았다. 이 감독은 일단 현재 9연승으로 베어스 감독 부임 첫해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세웠다. 앞서 김영덕 전 감독(1982년 5월 22일 삼성전∼6월 12일 MBC전)과 김성근 전 감독(1984년 4월 17일 삼미전∼28일 롯데전)이 달성했다. 이 감독은 후반기 첫 경기인 21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까지 승리로 장식하면 베어스 부임 첫해 감독 최다 연승 신기록을 작성한다.
10연승 달성 시 구단 역대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세운다. 김인식 감독 시절인 2000년 6월 16일 수원 현대전~6월 27일 잠실 현대전, 김태형 감독 시절인 2018년 6월 6일 고척 넥센전~6월 16일 대전 한화전까지 모두 2차례 10연승 기록이 있다.
선수들은 내친김에 11연승까지 도전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외야수 정수빈은 "9연승하고 전반기가 끝났다. 10연승이 최다인데, 10연승 하고 11연승까지 해서 구단 최다 연승을 이승엽 감독님께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정수빈의 바람대로 11연승을 달성하면 구단 역대 최다 기록은 물론, 국내 감독 부임 첫해 최다 연승 신기록까지 달성한다. 공식 사령탑 부임 첫해 10연승을 달성한 감독은 1997년 천보성 LG 트윈스 감독, 1999년 이희수 한화 이글스 감독, 2000년 이광은 LG 감독 등 3명뿐이다. 이 감독은 후반기에도 선수단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 가며 감독으로도 KBO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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