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혜성처럼 나타나 린 그랜트…LPGA의 한국 텃밭이 좁아진다
[골프한국] 지난 17일(한국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일랜드 메도우스GC(파71)에서 끝난 LPGA투어 다나오픈 결과는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이 대회는 그동안 한국선수들이 12차례나 우승한 '텃밭'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17명이 출전해 단 한 명도 톱10에 들지 못했다.
신인왕 레이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유해란(21)과 이정은(35)이 합계 8언더파로 공동 19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최혜진이 7언더파로 공동 23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8)은 6언더파로 공동 26위에 그쳤다. 김세영(5언더파)이 공동 32위, 박성현 김아림 전인지(3언더파)가 공동 41위에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 우리 선수들이 한 명도 10위 안에 들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21언더파로 우승한 린 그랜트(24·스웨덴), 2위 앨리슨 코푸즈(25·미국)를 비롯해 톱10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의 면면은 LPGA투어에서 우리 선수들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하다. 한국선수들이 주류에서 밀려나고 미국 국적의 이민자 후예와 태국, 중국, 일본, 유럽, 중남미 출신의 선수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이번 대회에서 21언더파 263타로 우승한 스웨덴의 린 그랜트, 3타차로 준우승한 US여자오픈 우승자 앨리슨 코푸즈(25), 지난달 초 미즈호 아메리카스 오픈에서 우승한 신인 로즈 장(20) 등 새로운 강자의 등장은 LPGA투어에 심상찮은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거치면서 기본이 탄탄히 다져진 '준비된 우승 후보'라는 점이다.
특히 린 그랜트는 '제2의 아니카 소렌스탐'을 연상시킨다. LPGA투어 통상 72승을 거두며 각종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소렌스탐의 분위기가 그랜트에게서 풍긴다는 것은 LPGA투어로선 반길 일이지만 한국선수 입장에선 불운이다.
린 그랜트를 머릿속에 담아둔 한국 골프팬은 드물 것이다. 지난 4월 KLPGA투어에 출전해 공동 18위, 공동 36위에 올랐지만 골프팬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러나 린 그랜트는 지난해 LET(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4승을 거두며 신인상과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사실상 '유럽 최강'이다. 올해도 1승을 보탰다.
지난해 LPGA 파이널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통과해 LPGA투어 카드를 획득했으나 개인적인 사유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아 미국 밖에서 열린 6개 대회만 출전해 4차례 톱10에 들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가 사라진 올 5월부터 본격적으로 LPGA투어에서 뛰고 있다.
린 그랜트는 스웨덴 국적이지만 그에겐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할아버지 제임스 그랜트는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프로골퍼로 활동하다 스웨덴 헬싱보르그로 이주했다.
스웨덴 이주 전 그랜트 가족은 LPGA투어 통산 4승을 거둔 카트리오나 매튜(54)의 홈 코스인 노스베릭 골프클럽을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이번에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이 열린 지역이다. 할아버지 제임스가 스코티시 소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지 49년 후 손녀 린이 브리티시 아마추어 스트로크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린의 아버지 존 그랜트도 스웨디시 골프투어 선수로 활동했고 스웨디시 시니어투어에서 7승을 올렸다. 이런 가족 이력을 보면 그의 조상은 바이킹의 후예로 스코틀랜드에 살다 마음의 고향인 스웨덴으로 이주한 것 같다.
린은 스웨덴 국가대표팀, 유럽 여자 대표팀의 일원으로 각종 대회에 참가했고 2018~2020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주니어 걸스 챔피언십에서 3년 연속 우승하는 등 아마추어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2021년 프로로 전향한 뒤 레이디스 유러피안투어, 남아공의 선샤인 레이디스투어 등에서 활동하다 LPGA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거쳐 LPGA투어 가드를 획득했다. 루키 시즌인 2022년 6개 대회만 출전해 4차례 톱10에 들며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출전권을 획득했으나 코로나19 백신 접종 문제로 불참했다.
그의 골프 기량은 2022년 DP월드투어라는 이름으로 스웨덴 할름스타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볼보 카 스칸디나비아 혼성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증명됐다. 남녀 각각 78명이 출전, 티만 달리하고 대결을 벌이는 대회로 린은 남자보다 9타, 여자보다 14타 차이의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다나오픈에서 3타 차로 준우승한 엘리슨 코퍼스가 그를 두고 "믿을 수 없는 샷을 날린다. 모든 샷이 완벽하다"고 감탄하는 것을 보면 그의 기량을 짐작할 만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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