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구의 빨간벙커] 로리 맥길로이를 위한 헌사
[골프한국]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DP 월드투어가 공동 주관한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로리 맥길로이 선수가 우승했다.
이 대회는 디오픈(THE OPEN) 바로 앞에 열리는 전초전 같은 대회라 관심을 끌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가 스폰서를 맡아서 한국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대회 첫날부터 안병훈 선수가 선두로 올라가서, 그의 우승과 디오픈 출전권에도 궁금증을 유발했다. 셋째 날 로리 맥길로이 선수가 선두로 올랐고 김주형 선수가 한 타 뒤진 2위였다.
우승은 로리 맥길로이가 예약한 듯 보였다. 하지만 골프의 본 고장 스코틀랜드는 누구에게도 쉽사리 우승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것이 설령 로리 맥길로이라도 약속을 이행하는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북극에서 불어온 바람이 숲을 흔들었고 황량한 링스 코스를 휩쓸고 지나갔다. 갈매기가 차가운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러프의 긴 풀은 종아리를 덮고도 남을 듯 길게 자라 있었다. 깊은 항아리 벙커가 촘촘하게 공이 굴러올 길을 막아섰다. 르네상스 골프장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먼저 경기를 끝낸 스코틀랜드 출신 로버트 맥킨타이어는 갤러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고 14언더파로 단독 선두였다. 클럽하우스 리더인 그의 표정은 최선을 다한 선수의 느긋함과 만족감이 보였고 긴장감도 간간이 드러났다. 그가 우승한다면 스코틀랜드 출신으로는 25년 만의 쾌거이니 감회가 남다를 수도 있었다.
16번홀에서 13언더파로 한 타 뒤지고 있는 로리 맥길로이의 버디 퍼트가 남은 상황이었다. 동반 플레이어인 토미 플리트우드와 김주형이 모두 버디를 했고, 로리 맥길로이에게 기회가 왔지만 공은 홀 옆으로 비켜갔다.
우승의 문턱에서 미끄러졌을 때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지만 로리 맥길로이도 예외 없이 퍼팅이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특히 그는 모든 샷에 능하지만 퍼팅에 기복이 있다. 이 버디 퍼트가 빗나갔을 때 우승의 예약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남은 두 홀이 결코 쉽게 버디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타는 스스로를 증명할 줄 알아야 한다. 17번홀에서 로리 맥길로이가 버디로 공동 선두에 올랐고 18번홀의 티샷을 마쳤을 때 로버트 맥킨타이어는 연장을 생각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리 맥길로이가 두 번째 샷을 하기 전에 김주형의 두 번째 샷이 있었다. 그의 공은 그린 옆 러프에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바람의 영향인 것 같다. 그가 샷을 하려던 참에 바람이 그의 모자를 날려버렸고 그런 장면이 로리 맥길로이에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로리 맥길로이는 4번 아이언을 집어넣고 2번 아이언을 선택한다. 그리고 낮은 탄도로 날아간 공은 핀에 3m 정도를 남기고 선다.
김주형은 3온 상태에서 파 퍼트를 남겨 놓았다. 내리막의 라인을 검토하고 어드레스 한 김주형은 순간 바람을 감지했는지 자세를 풀었다. 동시에 공은 흔들렸고 김주형은 약간 당황한 듯 경기위원과 얘기를 나눴고 원래 위치에서 다시 퍼팅을 했다.
공은 홀 컵을 휙 지나갔고 부담스러운 보기 퍼트가 남았다. 공의 흔들림 때문에 그랬을까. 로리 맥길로이의 버디 퍼트이자 챔피언 퍼트가 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조연의 자리를 빨리 내려오고 싶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김주형은 보기 퍼트에서 조금 서둘렀고 그마저 빗나가 3퍼트 더블보기로 마감한다.
김주형이 더블보기로 내려온 그린 위에는 로리 맥길로이가 마지막 바람을 맞으며 홀 컵을 노려 보고 있었다. 그의 퍼터를 떠난 공이 빨려들 듯 홀로 사라지자 숨죽이던 갤러리들이 환성을 질렀다.
타이거 우즈를 이을 후계자로 로리 맥길로이를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스타가 가져야 할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연상시키는 몸매와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스윙, 엄청난 비거리와 정교한 숏 게임은 보는 사람을 감탄케 한다.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 때문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명성에 비하면 PGA 투어 24승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다가오는 디오픈에서 2014년에 그가 이뤘던 우승을 기대해 본다.
스타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사람이라면 로리에게 그 자질은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장보구: 필명 장보구 님은 강아지, 고양이,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쓴다. 그의 골프 칼럼에는 아마추어 골퍼의 열정과 애환, 정서, 에피소드, 풍경 등이 담겨있으며 따뜻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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