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25년 전 과학자-철학자 내기, 승자는?

곽노필 기자 2023. 7. 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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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가설 검증 실험 결과
뇌 앞쪽보다 뒤쪽 피질 유력
최종 승부는 25년 후로 미뤄
의식을 일으키는 뉴런의 위치를 둘러싼 25년 전의 내기에 대한 결론이 나왔다. 픽사베이

1998년 6월20일 저녁 한 신경과학자와 철학자가 독일 북부 브레멘의 한 술집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경과학자는 크리스토프 코흐(현 앨런뇌과학연구소 소장), 철학자는 데이비드 차머스(현 뉴욕대 교수)였다. 이날 낮에 열린 학술회의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기 위한 2차 회동이었다.

두 사람의 토론 주제는 ‘의식이란 무엇인가’였다. 술잔이 몇순배 돈 후 코흐가 내기를 제안했다.

“앞으로 25년 안에 누군가가 뇌에서 의식의 특정 신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고급 와인을 사겠다.” 차머스는 즉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쪽에 걸었다.

2023년 6월20일 미국 뉴욕대에서 열린 의식과학연구협회(ASSC) 연례 학술회의에서 두 사람은 800여명의 신경과학자, 철학자, 일반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5년 전의 내기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내기는 코흐의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공동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과 1980년대 중반부터 함께 의식의 본질에 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두 사람은 의식의 기원까지는 못 밝혀내도, 적어도 어떤 특정한 의식적 지각을 설명할 수 있는 공통의 뇌 신경 메카니즘은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른바 ‘의식의 신경 상관물’(NCC=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이란 개념에 대한 탐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이는 의식 연구의 주된 주제가 됐다. 25년 전 브레멘 학술회의에서 코흐는 뉴런에서 나오는 약 40헤르츠(Hz)의 감마파가 이와 관련이 있으며, 뇌의 피질에 있는 피라미드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감마파는 30헤르츠(Hz) 이상의 가장 높은 진동수를 가진 뇌파로, 극도로 긴장하거나 복잡한 정신 활동을 수행할 때 활성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실험 참가자가 화면 속의 이미지를 보고 반응하는 동안 연구진이 뇌자기도 기록 장치를 이용해 의식적 지각에 해당하는 신경 신호의 위치를 찾고 있다. 사이언스

✅ 통합정보이론과 전역공간이론의 대결

이후 의식에 관한 여러 가설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현재 학계에서 현재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건 두 가지다.

첫째는 통합정보이론(IIT=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이란 이미지를 보는 것과 같은 특정 경험이 발생하는 동안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뇌 부위에서 정보를 통합시키는 신경 연결 메카니즘, 즉 구조다. 이 이론은 의식의 발원지를 감각처리 영역이 집중돼 있는 뇌 뒤쪽, 즉 후측 피질(머리 뒤쪽의 가장 바깥쪽 부위)로 본다.

둘째는 전역 신경 작업공간 이론(GNWT=global neuronal workspace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감각기관에서 나온 신호 가운데 전두엽 피질에 도달하는 것만 인식하게 되며, 이 신호가 이곳을 거쳐 모든 뇌 영역으로 마치 방송하듯 전달되면서 의식이 형성된다. 이 이론은 의식의 발원지를 사고력, 주의력, 문제 해결력을 담당하는 뇌 앞쪽, 즉 전두엽 피질로 본다.

전 세계 11개 연구기관의 과학자들은 2019년 두 이론을 검증하는 연구 컨소시엄 ‘코지테이트’(COGITATE)을 출범시켰다. 과학자들은 이후 250여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비롯한 3가지 신경 이미징 기술을 이용해 얼굴, 사물, 문자, 합성 캐릭터 등을 인식할 때의 뇌 활동을 촬영해 분석했다. 뉴욕대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그 첫번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과학자들은 이 자리에서 세가지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첫째 실험은 이미지의 특징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통합정보이론이 이겼다. 이미지의 유형, 방향과 같은 이미지의 특징은 뇌의 뒤쪽 영역이 맡아 처리했다.

둘째 실험은 뇌 활동 시간의 지속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통합정보이론은 물체를 인식하는 동안 뇌의 뒤쪽 영역이 지속적으로 활성화한다고 보는 반면, 공간이론은 자극이 처음 나타날 때와 사라질 때 두 차례에 집중적으로 뇌가 정보를 보낸다고 본다. 여기서도 통합정보이론이 이겼다.

셋째 실험은 의식적 지각 활동을 하는 동안 뉴런들이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통합정보이론은 뉴런간의 통신이 뇌 뒤쪽 영역 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는 반면, 공간이론은 시각 영역과 정면 영역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본다. 이 마지막 실험에서는 공간이론이 통합정보이론을 약간 앞섰다.

데이비드 차머스(왼쪽)가 크리스토프 코흐가 내기에서 졌다면서 건네준 고급 와인을 들고 있다. 사이언스

세 가지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통합정보이론의 우세승으로 볼 수 있다. 위스콘신대 멜라니 볼리 교수(신경학)는 <뉴욕타임스>에 “실험 결과는 전반적으로 통합정보이론의 예측이 맞았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간이론 지지자들은 결정적인 신경학적 근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발표 행사를 진행한 뉴욕 마운트시나이 아이칸의대 헤더 벌린 교수는 이번 실험 결과를 ‘이혼한 부모 사이에 있는 자식의 처지’에 비유하며 “둘 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결국 내기는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장담한 코흐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코흐는 약속대로 고급 와인(1978년산 마데이라) 상자를 들고 와 그 가운데 한 병을 차머스에게 건넸다.

하지만 코흐는 “지금부터 25년 뒤에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내기를 제안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후는 2048년이다.

차머스는 즉각 내기를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이길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험 결과에 관한 논문은 6월26일 사전출판논문 공유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됐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101/2023.06.23.546249

An adversarial collaboration to critically evaluate theories of consciousnes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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