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책은 정신의 탕약, 저를 사람꼴로 빚어낸 건 독서였습니다” [인터뷰]
국민 애송시가 처음 출현했던 시점을 알기란 쉽지 않다. 4년 전 이미 100권을 넘겼을 만큼 장석주 시인은 단독저서가 너무 많아서다. ‘연평균’ 두세 권. 다작(多作)이면서도 들여다보면 한 문장도 버릴 게 없어 그는 독자와 출판계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다.
장석주 시인이 새 산문집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를 출간했다. 루마니아 소설가 에밀 시오랑(1911~1995)을 중심에 두고 우리 시대의 책일기를 사유한 책이다. 지난 13일 서울 서교동 현암사에서 그를 만나 책읽기과 사람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만 삶의 이유 찾아 헤맸던
루마니아 소설가 에밀 시오랑
우리도 삶의 이유 발견해야 해
에밀 시오랑은 철학 에세이 ‘태어났음의 불편함’ ‘독설의 팡세’ 등으로 유명하다.
시오랑은 삶을 미로처럼 여겼고 그래서 자주 자살을 입에 올렸다. 특히 그는 인간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불편하다’고 여겼다. 그의 아포리즘은 이렇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다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났다는 재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났다는 것, 그것은 공포라고 시오랑은 쓴다.
“지독한 염세주의죠. 하지만 시오랑 철학은 비관주의가 전부가 아니예요. 실존의 불안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삶이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과정이라고 봤으니까요. 인간이란 불안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다니는 존재 아닐까요? 시오랑을 읽는다는 건 삶의 이유를 찾는 일입니다.”
종이책, 사람을 사람답게 할 것
“인지생리과학자 메리언 울프는 인간의 운명이 성장할 수 있던 계기를 동물이 갖지 못했던 ‘책 읽는 뇌’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독서 능력은 저절로 주어지 게 아니라 후천적 학습이에요. 책 읽기를 그만두면 뇌의 배선과 회로가 사라질 거예요. 활자가 없는 시대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종이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줍니다.”
기계의 세상에서 인간은 ‘심심함’을 잃어버렸다고도 그는 본다.
“인간이 불행해진 건 방에서 혼자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됐어요. 활동적인 삶, 분주한 삶보다 더 갈급한 삶은 심심한 삶이에요. 심심해져야 해요. 심심함은 창조로 가는 첫 문입니다.”
30대 젊은 시절, 장석주 시인은 청하출판사 대표로 13년간 500종 책을 출간한 대단히 성공한 출판기획자였다.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1992년 구속 당하는 수모와 분노를 경험했던 그는 생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독서란 세계를 열어보는 행위, 자기 내면을 책에 비춰보는 행위입니다. 책은 돌아봄의 시간을 허락해주는 소중한 거울이에요. 책의 문장에서 생각지 못했던 착상이 떠오르고 사유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책을 읽으며 집중할 때 몰입의 순간이 오고, 몰입할 때 세계와 내가 하나로 혼용되는 경험을 하잖아요. 그때 희열에 있죠. 그 시간이 제게는 창조의 시간이에요.”
“책상엔 늘 책이 가득 쌓여 있어요. 일주일만 지나도 책이 쌓여서 책기둥을 이루게 됩니다. 바닥에도 책이 많고요. 가끔 보면 서재에서 마치 ‘종유석’이 자라는 것만 같아요(웃음). 하지만 매일 읽어야 합니다. 평생 책을 읽고 쓰며 살았음에도 끝내 아둔함을 떨쳐내지 못했어요. 저를 사람꼴로 빚어낸 건 다름 아닌 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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