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연방 단합' 상징 커먼웰스 게임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김태훈 2023. 7. 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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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대회 유치했던 호주 개최권 반납
"천문학적 비용 들어가… 감당할 수 없다"
BBC "영연방 체육대회 종말 맞을 가능성"

비(非)영어권 국가 국민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커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라는 이름의 국제 체육대회가 있다. 영연방 회원국 50여개 나라가 올림픽처럼 4년마다 한 번씩 모여 여러 종목에서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 축제다. 1930년 시작해 어느덧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커먼웰스 게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 주목된다.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타계 후 ‘영연방이 구심점을 잃었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가운데 커먼웰스 게임 중단이 그 신호탄이 될 것이란 예측마저 불거진다.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인 2022년 7월 버밍엄 알렉산더 스타디움에서 제22회 커먼웰스 게임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왼쪽은 부인 커밀라 왕비. AP연합뉴스
영국 BBC 방송은 18일(현지시간) ‘이것이 커먼웰스 게임의 종말인가(Is this the end of the Commonwealth Games)?’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2026년 커먼웰스 게임을 주최하기로 했던 호주 빅토리아주(州)가 “경기를 열지 않겠다”며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호주의 다른 주들도 개최권을 넘겨받길 거부함에 따라 2026년 커먼웰스 게임이 공중에 붕 떠 버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빅토리아주가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 빅토리아주는 커먼웰스 게임 개최에 18억달러(약 2조270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최근 호주의 경제 전문가들은 실제로 투입돼야 할 비용이 예상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41억달러(약 5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뭘 어떻게 하든 ‘밑지는 장사’라는 생각이 든 빅토리아 주정부가 재빨리 발을 뺀 결과라는 게 BBC의 설명이다.

커먼웰스 게임 조직위원회는 호주의 다른 주들한테 경기 개최 의사를 타진했으나, 천문학적 비용에 놀란 주정부들이 모두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실 커먼웰스 게임 주최국을 선정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2022년의 경우 원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재정적 이유로 도저히 대회를 치를 수 없다”는 남아공 측의 호소에 따라 영국 잉글랜드의 버밍엄으로 개최지가 변경됐다. 2000년대 들어 커먼웰스 게임은 잉글랜드(2002), 호주(2006), 인도(2010), 스코틀랜드(2014), 호주(2018), 잉글랜드(2022)에서 차례로 열렸다. 인도를 제외하면 모두 영국 및 호주가 개최국으로서 부담을 짊어진 셈이다.
지난 2006년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커먼웰스 게임 개막식에서 대회 조직위원회를 상징하는 깃발이 옮겨지고 있다. 호주는 2026년 커먼웰스 게임을 빅토리아주에서 열기로 했으나 최근 천문학적 비용 등을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했다. AP연합뉴스
BBC에 따르면 커먼웰스 게임은 1930년 당시만 해도 영국 자치령이던 캐나다에서 시작했다. 이후 4년에 한 번씩 영연방 국가에서 대회를 개최했다. 영연방이란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영국을 중심으로 뭉친 국제기구다. 영국 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6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 일부는 아예 영국 국왕을 자국 국가원수로 섬기는 중이다.

문제는 엘리자베스 2세 시절만 해도 나름 강한 결속력을 자랑했던 영연방이 아들인 찰스 3세 즉위를 계기로 흩어질 기미를 보인다는 점이다. 찰스 3세는 젊은 시절 부인 다이애나 비(妃)를 멀리하고 커밀라(현 왕비)와 불륜을 저지른 것 때문에 대중의 원성이 자자하다. 엘리자베스 2세 재위 기간만 해도 군주제에 찬성했던 이들이 찰스 3세 취임 이후 생각을 바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가자”는 주장을 펼친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진다. 특히 영국 국왕을 자국 국가원수로 모셔 온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에서 이번 기회에 아예 공화정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커먼웰스 게임을 주최하겠다는 영연방 국가가 없어도 대안은 있다. 옛 식민 종주국인 영국이 계속 대회를 조직하고 주관하면 된다. 문제는 과거 식민지 경영에 올인했던 영국의 잘못에는 눈을 감은 채 영국이 옛 식민지 국가들을 상대로 지금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호주의 스포츠 및 역사 전문가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호주 젊은이들은 더는 커먼웰스 게임에 관심이 없다“며 “호주의 어떤 지자체도 그 대회를 개최할 생각이 없다는 점은 커먼웰스 게임이 종말에 이르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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