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바비랜드에서 현실 세계로…‘금발 바비’의 좌충우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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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살 된 여자아이 수십명이 모여 아기인형을 가지고 논다.
하지만 바비는 인기만큼이나 비난에도 시달려온 바, 페미니즘이 확산된 1960년대 말부터 풍성한 금발머리와 잘록한 허리, 하이힐에 맞춘 발 모양 등이 여성의 상품화와 백인 중심 외모지상주의에 여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엘에이에 온 바비는 자신이 모든 여자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반면 켄은 바비랜드에 없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매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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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살 된 여자아이 수십명이 모여 아기인형을 가지고 논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빨래를 하며 분주한 아이들 사이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웅장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울려 퍼진다. 수영복 차림의 늘씬한 인형 바비가 올림픽 영웅처럼 아이들 가운데 등장한다. 아이들은 아기인형을 내던지며 바비에 열광한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바비>의 첫 장면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 인형인 ‘바비’의 탄생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남자아이들을 위한 우주비행사, 소방관, 군인 같은 남자 인형이 나와 있던 1950년대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던 건 아기인형이 전부였다. 여자아이들은 아기인형을 안고 놀면서 육아와 살림살이를 미리 배울 뿐이었다. 남편과 함께 마텔을 창립한 루스 핸들러는 딸을 보면서 성인인형을 착안했고 1959년 긴 머리와 늘씬한 몸매에 줄무늬 수영복을 입은 바비가 탄생했다. 처음 출시한 해부터 35만개가 팔려나가며 장난감 시장의 판도를 뒤흔든 바비는 지금도 전세계에서 해마다 5800만개씩 팔려나가는 초대형 스테디셀러 인형이다.
하지만 바비는 인기만큼이나 비난에도 시달려온 바, 페미니즘이 확산된 1960년대 말부터 풍성한 금발머리와 잘록한 허리, 하이힐에 맞춘 발 모양 등이 여성의 상품화와 백인 중심 외모지상주의에 여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텔은 다양한 인종과 과학자, 운동선수 등 다양한 직업, 임산부와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소수자 바비를 출시했지만 ‘성 상품화’ 딱지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원해도 엄마와 이모들이 사주기를 꺼린다.
마텔사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마고 로비에게 바비의 옷을 입히고, 여성주의적이면서 세련된 각본을 쓰는 그레타 거윅에게 연출을 맡겨 성인을 위한 실사영화 <바비>를 만든 이유다.
대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영화는 ‘전형적인’ 바비의 외형과 무대를 십분 활용한다. 금발머리 찰랑거리며 핑크 가득한 집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바비에게는 매일이 행복한 날이다. 대통령 바비와 의사 바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바비 등 예쁘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바비들이 넘쳐나는 ‘바비랜드’에서 ‘켄’들은 그저 거들뿐이다.
신나게 파티를 하다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바비에게 다음날부터 아침에 입냄새가 나고 늘 들어올려진 발꿈치가 내려가는 등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바비는 ‘이상한 바비’를 찾아가고 현실세계로 떠나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는 조언을 듣는다. 미국 엘에이에 온 바비는 자신이 모든 여자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반면 켄은 바비랜드에 없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매혹된다.
영화는 무균질의 바비랜드가 가부장제와 ‘맨스플레인’으로 전복되고 회복되는 과정을 그린다. 다양한 인종과 전문직으로 변신해왔지만 비판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바비의 신세는 “날씬하면서도 건강하고, 도전적이면서도 사려깊고, 성공하면서도 돈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의 모순되는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바비>는 ‘걸스 비 앰비셔스!’라는 주제의식 안에서 이러한 딜레마를 경험하는 여성들의 고단함을 이해하려는 이해가 담겨있다. 거윅 감독은 지난 3일 내한 간담회에서 “바비는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드러나는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이 자신을 인간답고 온전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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