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바비', 여자들을 꿈꾸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강효진 기자 2023. 7.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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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비. 제공ㅣ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어느 날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명제가 나타났다. 바비를 만난 소녀들도 자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바비는 바비 인형이 현실 세계의 페미니즘 문제에 기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엔 바비 스타일의 철지난 '핑크빛 여성성'은 오히려 족쇄가 됐다. 그 순간 바비랜드엔 균열이 찾아오고 바비랜드 속 바비는 완벽했던 일상에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게 된다.

19일 개봉한 영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는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던 ‘바비’(마고 로비)가 현실 세계와 이어진 포털의 균열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켄’(라이언 고슬링)과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바비랜드는 바비가 지배계급인 세계다. 바비는 대통령, 물리학자, 의사, 우주비행사, 노벨문학상 수상자 등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켄은 직업도 없이 해변을 떠돌며 바비가 봐줄 때, 바비의 남자친구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켄과 함께 인형 집을 떠나 '리얼 월드'에 발을 딛은 바비는 바비랜드와는 정반대인 현실의 권력구조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 반면 가부장제에 눈을 뜬 켄은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배운 가부장을 바비보다 한 발 앞서 바비랜드에 전파시키면서 바비랜드를 '켄돔'(Kendom)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이 과정에서 바비는 자신과 연결된 인간을 만나 함께 바비랜드로 향하지만, 바비랜드는 이미 켄이 퍼트린 가부장제에 물든 상황. 설상가상 다른 바비들마저 각자의 켄에게 종속돼 스스로를 잊고 켄들의 여자친구로서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만다. 바비랜드에서 가능한 최악의 재앙이 벌어진 것이다. 실의에 빠졌던 바비가 정신을 차리고 '맨스플레인'을 역이용해 동료 바비들을 계몽시키고 다시 켄으로부터 바비랜드의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 영화 \'바비\' 포스터.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속 바비랜드와 현실세계는 명확하게 여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로 미러링해서 비유된다. 바비와 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세계를 오가면서 두 캐릭터의 계급이 전복되는 모습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이자 주요 웃음 코드로 작용한다. 현실로 온 바비가 성희롱을 당하고 충격을 받거나, 바비랜드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 모습, 하루 아침에 지배계급이 된 켄이 우월감에 차 내뱉는 모든 대사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풋티지로 공개되기도 했던 초반 30분에는 작품의 방향성이 노골적으로 담겼다. 자의적 해석이나 착각은 금물이라는 듯 빙빙 돌리지도 않고 또박또박 '페미니즘'(여성과 남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을 외친다.

명확하게 메시지를 드러낸 만큼, 영화 전반에서 스토리의 갈등 구조에서 오는 작품 자체의 엔터테이닝한 지점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중 후자를 우선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자칫 촌스러운 선전 영화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계급이 전복된 캐릭터들을 활용해 영화적 재미도 이끌어가려고 노력한 지점들이 눈에 띈다.

볼거리도 화려하다. 향수를 자극하는 바비랜드의 비주얼을 매력적으로 구현했다. 영화 전반적으로 인형 세상의 유쾌하고 만화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장난감 재질의 구급차 키트, 바비들의 집, 바비의 의상들, 바비의 일과 루틴을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가 가득하다. 종종 제4의 벽(현실과 극중 세계를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넘나드는 유머 포인트가 등장해 폭소를 안기기도 한다.

▲ 바비 스틸. 제공ㅣ워너브러더스코리아

특히 '전형적인 바비'로 분한 마고 로비는 인형과 사람 중간 쯤의 삐그덕하면서도 그럴 듯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걸음걸이부터 손동작, 미소까지 확실하게 '인형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섬세한 연기가 관전 포인트다. 라이언 고슬링의 켄은 표정부터 노래까지, 그야말로 모든 장면들이 '킹'받는 코믹함으로 유쾌함을 더한다.

엔딩은 다시 한 번 바비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치 피그말리온 신화를 떠오르게 하는 선택이다. 마지막 대사는 막상 의아할 수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명백하게 없다고 했던 '뭔가'가 생겨났음을 암시한다. 결국 바비는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무엇이 되고야 만 것이다.

과거의 바비 인형은 언제부턴가 여성 인권을 후퇴하게 만들었다지만, 마고 로비의 '바비'는 바비 인형을 2023년에 걸맞게 진화시켰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될 전세계 여성들에게 'She's Everything'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안겨줄 것이다.

19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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