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선에게서 원클럽맨의 낭만이 보인다

김종수 2023. 7.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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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 속의 한 대목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대구‧고양 오리온스는 농구 팬들 입장에서 쉽게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이 묻어있는 팀이다. KBL 원년부터 리그에 참가해 경쟁해왔으며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2001~02, 2015~16), 정규시즌 우승 2회(2001~02, 2002~03), 컵대회 우승 1회(2020) 등의 성적을 남겼다.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씩은 위상을 보여줬다.


최다연패 신기록의 불명예를 떠앉은 것을 비롯 전희철, 김병철이라는 이름값 높은 고려대 듀오를 데리고 있었음에도 저조한 성적으로 원성을 사는 등 암흑기도 짧지 않았다. 약팀, 혹은 전력에 비해 성적이 나지않는 대표적 팀중 하나로 불리기도했다. 이같은 이미지가 불식되기 시작한 것은 김승현이라는 역대급 포인트가드가 팀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김승현은 데뷔 첫해 신인으로서 단번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과 함께 ‘빅3’를 완성해 KBL무대에 돌풍을 일으켰다. 성적은 물론 화려한 플레이까지 어우러지며 ‘쇼타임 오리온스’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오리온스 팬들은 감격과 함께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김승현이 전성기가 길지않았음에도 오리온스는 물론 많은 농구팬들에게 전설적인 정통파 1번으로 인정받고있는 이유다.


김승현 시대 이후 주춤하던 오리온스를 2번째 우승으로 이끈 것도 ‘승현’이었다. 고려대 전성시대를 이끌며 ‘두목호랑이’라고 불렸던 파워포워드 이승현은 입단과 동시에 오리온스에 근성과 투지를 심어줬다. 김승현처럼 전면에서 화려한 주인공으로 빛나지는 않았지만 팀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기둥으로서 팬들의 인정을 받았다.


추일승 감독이 장신 포워드 군단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할 당시 이승현은 197cm의 신장으로 '빅터팬' 하승진(221.6cm)을 수비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당시 오리온스가 KCC보다 전력적으로 앞섰던 상황에서 유일한 변수가 역대 최장신 센터 하승진이었는데 그걸 이승현이 막아서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오리온스는 좋을 때와 안좋을 때의 성적 기복이 심했던 관계로 팬들을 울리고 웃기는 사이클이 높았으나 팀에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만큼은 어떤팀 못지않았다. 무엇보다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사실은 팬들 입장에서는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21~22시즌을 마지막으로 팀 운영을 포기했고 데이원으로 구단이 바뀌고 말았다.


오리온의 포기도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후에 이어졌다. 데이원은 프로 구단을 운영할 수 없을 만큼 자금력 문제가 심각한 팀이었고 그로인해 크고작은 잡음과 사고가 끊이질않았다. 가입금 연체로 인해 좋은 성적을 거둬놓고도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을 박탈당할 뻔한 것을 비롯 선수단과 프런트 월급까지 밀리며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심지어 거래처, 지역 상인들에게까지 외상값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었다. 팀의 주장을 맡고있던 김강선(37‧190cm)이었다. 당시 아무도 책임져주지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김강선은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다독이고 이끌어간 것을 비롯 국회의원들과의 면담, 언론과의 소통 등 궂은 일에 앞장섰다. 각자의 생계가 달린 민감한 현실 속에서 김강선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선수단은 더욱 크게 동요했을 공산이 크다.


‘그 사람의 진짜 인품은 힘들 때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김강선은 많은 후배들이 믿고 따를만한 존재였다. 당장 나부터 캄캄해진 실정에서 본인의 마음을 추스르면서 다른 이들까지 챙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어떤 식으로든지 대표로 앞에 나선다는 것은 적지않은 책임까지 동반한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앞이 보이지않을 것 같은 데이원 사태도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여전히 산적해있는 문제가 적지않지만 소노인터내셔널이 10구단을 창단해 지난시즌 함께 고생한 김승기 감독과 선수단의 동행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한시름 놨다고 할 수 있다. 9구단체제, 해체 드래프트 등은 없던 일이 됐다.


2009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로 지명된 김강선과 오리온스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 허일영이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됐던지라 지명권 양도같은 방법이 아니었다면 김강선이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해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등이 참가한 귀화혼혈드래프트가 있었다.


그로인해 지명권이 나눠지면서 다수의 팀이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2장씩 쓸 수 있었고 오리온스도 허일영과 김강선 둘다를 데려오는게 가능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온스를 비롯한 해당 팀들은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혼혈드래프트 빅3는 각자가 신인드래프트 1순위급 이상이었던 이유가 크다.


이때 신인 드래프트는 골짜기 세대로 불릴만큼 전체적인 평이 좋지않았다. 실제로 박성진은 역대 최악의 1순위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으며 상위지명자중 허일영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전 도약에 실패했다. 1라운드 전체를 봐도 어지간한해 2라운드가 연상될 정도로 프로에서 성공한 픽이 적다.


때문에 오리온스 역시 1라운드 지명권 두장을 쓰면서도 운이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라운드 지명선수중 허일영과 김강선이 가장 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는지라 있는 자원내에서 제일 좋은 픽을 행사한 팀은 오리온스다. 허일영같은 경우 전체 2번이라는 높은 순위로 뽑았지만 8순위 김강선은 스틸픽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식스맨으로 나설 때가 많았던 김강선은 많은 지도자들이 선호할만한 스타일의 선수다. 악착같은 근성과 투지를 바탕으로 수비 등 궂은 일에 앞장서는 살림꾼 스타일로 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 그렇다고 수비전문선수만도 아니다. 과감하게 골밑으로 드라이브인을 들어가는 것을 비롯 3점슛 능력 역시 준수한지라 공격력도 나쁘지않다. 성격 또한 밝고 친화적인 편인지라 벤치에서도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는 선수로 유명했다.


오리온스는 김병철 정도를 제외하고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만한 선수가 없다. 이름값 있는 선수의 대부분이 자의든 타의든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끝까지 팀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런가운데 김강선은 오리온스에서 데이원, 소노로 모기업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원클럽맨으로 남아있는 모습이다. 어찌보면 팀의 살아있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제는 그를 오리온스, 데이원, 소노 3개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듯 싶다.


그만큼 선수단 사이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보여온 이유가 크다. ‘그때 오리온스에서 김강선을 뽑지않았다면 어쩔뻔 했냐’는 말이 심각하게 흘러나올 정도다. 이름값만 놓고보면 소노의 간판스타는 단연 전성현과 이정현이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거기에 김강선의 이름도 빼놓지않고 포함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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