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눈을 가리면[편집실에서]
정말 몰랐다고 칩시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변경안의 종점 일대에 김건희 여사 일가 소유의 땅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땅과 별개로 오로지 변경안의 타당성 여부만 따져 승인했다, 따라서 떳떳하다, 어떤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명분이 없으므로 사업은 계속 추진해나가겠다 이렇게 해야지요.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했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거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선 공식 사과와 함께 원안으로 돌려놔야지요.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마친 계획안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변경된 건 사실이니까요. 그게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자세입니다.
주무장관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갑자기 ‘사업 전면 백지화’를 선언합니다. 쟁점 흐리기의 끝판왕입니다. 원안이 맞다거나 변경안이 옳다는 얘기는 일절 없이 할 거면 다음 정권에서 하랍니다.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결코 다다르기 어려운 희한한 결론입니다. 그래놓고선 근거 없는 정치공세를 일삼은 데 대해 사과하라며 야당을 향해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국정의 발목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답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습니다.
원희룡이 누구입니까. 1982년 대입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인물입니다. 머리 좋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정답’을 몰라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그렇게 주렁주렁 늘어놓았을까요. 여론을 호도해 국면 전환을 꾀해보려는 속내가 너무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어설픈’ 방식으로 보는 이의 공분을 키웠을까요.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기자회견 내내 그토록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일관하도록 이끌었을까요. 욕심이 눈을 가리면 저잣거리의 손가락질이 보일 리 없고, 세간의 입방아가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지역의 숙원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인 양평군민의 분노가 당장 하늘을 찌릅니다. 사태의 심각성과 폭발력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여야는 다시 전면전에 돌입했습니다. 정치권 전체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알고도 강행했다면 책임을 지면 되고, 몰랐더라도 갑작스러운 계획안 변경의 전말은 소상히 밝혀야 합니다. 보고가 누락된 건지, 보고했는데도 정신이 딴 데 팔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건지 국민이 속 시원히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원안으로 갈 건지, 변경안으로 갈 건지 해법도 내놓아야 합니다. 변경안으로 결론이 난다면 대통령실을 향해 김 여사 일가 소유 땅을 처분하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짜고짜 총대를 메고 나선 것도 모자라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양평군민을 갈라치고, 그들의 ‘욕망’을 볼모 삼아 상대를 겁박하는 방식으로 이번 사태를 풀 수는 없습니다. 큰 꿈을 꾼다면서 진실과 역사를 외면하고 어찌 ‘정치인 원희룡’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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