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고, 친구는 안되네"…비대면진료 직접 해보니
사람마다 비대면 허용 ‘들쑥날쑥’, 기준 어디로
원산협 불편접수 14일간 842건 접수, 최근 급증
의사들도 불만, 시범사업이 오히려 현장 혼란만
“비대면진료 신청하신 환자 분 맞지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세요?” 수화기 너머 친절한 의사의 목소리에 증상을 전달했더니 속전속결로 진료와 약 처방까지 완료됐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비장애인인 기자였지만, 지난 4월 시범사업 이전과 동일하게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약 배송도 원칙적으로 금지됐지만, 이날 8000원의 배송비를 냈더니 30여분만에 집에서 약을 받을 수 있었다. 비대면진료시 의료기관이 환자를 대상으로 시범사업 대상자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관련 절차도 없었다.
기자의 경우는 시범사업 시행 이후 달라진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며칠 뒤 비대면진료를 이용한 지인의 경우는 달랐다. 역시 초진 환자인 30대 지인 A씨는 감기 증상으로 비대면진료 신청을 했는데, 연거푸 연결된 의료기관들로부터 거절 메시지를 받았다. 기자는 아무런 문제없이 바로 비대면 초진 진료가 가능했던반면, 지인은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계속 거부 당한 것이다. 기준도 모른 채 비대면진료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이상한 상황이다.
닥터나우 앱 커뮤니티만 들어가 봐도 이같은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문제없이 비대면진료를 이용했다는 이용자들이 있는가 하면, 한 시간 이상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진료를 받지 못했다는 하소연이 담긴 글들도 자주 보인다.
‘닥터나우’ 앱을 사용하는 한 여성 이용자는 “여성질환으로 비대면진료를 급하게 볼 일이 있었는데 6차례나 다 진료가 취소됐다”며 “진료를 보기 위해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초진도 안돼, 약배송도 안돼 이게(시범사업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꼬집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는 초진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체제하에서 의료기관이 환자가 시범사업 대상자인지를 파악하기 힘들어 벌어지는 상황들이다. 이용자가 예외적 초진 허용 대상자임을 제시해도 의사가 관련 정보의 사실 유무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현재로선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음달 31일까지 계도기간이어서 비대면진료 현장에선 당초 취지와 무색하게 시범사업의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모습이다.
18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이하 원산협·비대면진료 플랫폼 연합)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운영 중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불편 접수센터’의 지난 14일 기준 접수 건수는 총 842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5일만 해도 512건이었던 것이 9일만에 300여건 이상 늘었다.
특히 ‘거리나 시간적 상황으로 병원 방문이 곤란한 이용자’들이 불편(216건, 25.7%)을 가장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밖에도 ‘약 배송 제한 불편’(179건, 21.3%), ‘소아청소년과 이용 불편’(127건, 15.1%) 등으로 뒤를 이었다.
비대면진료를 해왔던 의사들의 고충도 상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전남지역 한 내과 전문의는 “그동안 비대면진료 환자의 90%가 초진이었기 때문에 시범사업 이후 비대면진료 앱으로 유입되는 환자들이 없다”며 “진료 요청은 있지만 (시범사업) 대상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어 일일이 취소하고 있다. 플랫폼 제휴에 돈이 드는 건 아니어서 유지하곤 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비대면진료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경남지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타 지역 거주 환자들까지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적은 지방 소아과지만 야간진료도 진행해왔다”며 “하지만 시범사업 이후엔 환자 유입이 줄기도 했고, 상담만 가능하다보니 환자 부모들이 진료비 지불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어 앞으로 야간진료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비대면진료 연착륙을 위해 시행한 시범사업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의료단체, 원산협 등과 자문단을 구축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행보를 보이진 않고 있다.
장지호 원산협 회장은 “정부는 시범사업 평가를 이유로 자문단을 구성했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평가 기준, 방식, 일정 등 시범사업 평가 계획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서 답답한 심정”이라며 “비대면진료를 직접 경험한 산업계와 실제로 진료를 보는 의사, 그리고 국민들은 이러한 불편을 예상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요청했지만 시범사업이 시작하고 두 달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현 시점까지 아무런 개선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유 (thec9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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