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소득으로 빚도 못 갚는 나라"...1·2·3위 차지한 한국
먼저 '1위'
지난 5월 말에 나온 국제금융협회의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 결과다. 올해 1분기 세계 34개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이었다. 비율은 102.2%. 34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100%를 넘어섰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국민소득으로 가계 빚을 갚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의미다.
또 다른 1위 결과도 있었다. 지난 3월 초,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가계부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공식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7조 원인데 여기엔 우리나라에만 있는 '숨은 빚'인 전세 보증금이 빠져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세보증금은 1,058조 3,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둘을 합하면 2,925조 3,000억 원. 3,000조 원에 육박한다. 이렇게 되면 주요국 가운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당연히 1위이고 2위와의 격차도 더 벌어진다.
한경연에 따르면 전세보증금은 2017년 말 770조 9,000억 원에서 2022년 말 기준 1,058조 3,000억 원으로 폭증했다. 5년 만에 287조 4,000억 원, 37.3% 증가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이 최고가를 찍은 건 지난 2021년 9월. 이때 맺었던 전세 계약 2년 만기가 올해 9월부터 시작된다. 2년 사이 전셋값이 크게 떨어져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우려가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13.6%. 국제결제은행(BIS)이 분석한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다. 조사 대상은 세계 주요 17개국. 이 가운데 한국은 호주(14.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DSR은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DSR이 높으면 소득에 비해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1위인 호주와 2위인 한국에 이어 캐나다(13.3%)와 네덜란드(13.1%), 노르웨이(12.8%), 덴마크(12.6%), 스웨덴(12.2%) 등도 지난해 기준 DSR이 10%를 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가 이어진다.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을 경고했던 IMF는 한국의 경제 성장 전망치를 네 차례나 거듭 낮춘 데 이어 가계부채 위험까지 경고했다. 지난 4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선진국 대부분은 2000년대 중반보다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적용하면서 부실 대출 위험을 줄였고, 가계의 부채 상환 비율 역시 2007년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벨기에·프랑스·한국·스웨덴 같은 국가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가계부채가 오히려 증가하면서 가계 부문의 취약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선진국 대부분은 가계 빚을 최대한 줄이는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였다. 그렇게 가계부채는 꾸준히 증가했다.
3위라는 결과는 최근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한국은행이 지난 17일 발표한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05%. 주요 43개국 가운데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왜 늘어났을까? 먼저 공급 측면, 즉 빚을 내주는 입장에서 보면 가계대출의 높은 수익성과 안정성 때문이다. 국내 은행의 수익 구조상 총이익에서 이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0% 이상으로 매우 크다. 가계대출은 기업 대출보다 연체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고 안정적인 만큼 가계대출 취급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수요 측면, 즉 빚을 지는 입장에서 보면 주택 등 자산투자 목적 때문이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지속된 우리나라의 저금리 기조가 한몫했다. 은행 입장에서 가계부채를 늘리면 수익이 늘고 수요자 입장에선 빚을 쉽게 지고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는 사이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은 일단 가계부채가 금융 불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가 GDP의 100%를 웃도는 기간이 길어지면 소비가 위축되고 금융을 통한 자원 배분의 효율성도 떨어져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자연스럽게 자산 불평등 문제도 심화한다. 이는 IMF의 잇단 경고와도 일치한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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