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인터뷰]'황금세대' 양효진이 본 女 배구 현실 "성장통도 필요한 과정, 분명 나아질 것"

고성=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2023. 7. 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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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구의 황금 세대를 이끈 양효진(가운데). 노컷뉴스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미들 블로커 양효진(34·190cm)은 한국 여자 배구의 황금 세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13년간 태극 마크를 달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동메달,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 등 여러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V리그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7-2008시즌 현대건설에 입단해 한 팀에서만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정규 리그 2회, 챔피언 결정전 2회, 통합 우승 1회 등을 견인했다. 여기에 베스트7 미들 블로커 부문 9회, 정규 리그 MVP 2회 등 화려한 개인 수상 이력도 자랑한다.

양효진은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태극 마크를 반납했다. 오랜 기간 대표팀의 기둥이었던 김연경, 김수지(이상 흥국생명) 등과 함께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대표팀은 세대교체에 나섰는데 최근 극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전임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을 코치로 보필했던 세자르 에르난데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1승 28패로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2회 연속 전패의 수모를 당했고, 승리는 지난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4연패 이후 간신히 크로아티아에 거둔 1승이 유일하다.

침체에 빠진 대표팀을 바라본 양효진의 심정은 어떨까. 대표팀 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양효진은 후배들의 고충을 깊게 공감했다.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경상남도 고성군 일대에서 진행된 현대건설 전지 훈련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양효진은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년 연속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현대건설. 한국배구연맹

▲"2년 연속 우승 좌절?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덧 17번째 시즌을 준비 중인 양효진. 새 시즌을 앞둔 그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더 절실함이 가득해 보였다. 최근 2시즌 연속으로 아쉽게 우승을 놓친 탓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1-2022시즌 정규 리그에서 28승 3패 승점 82를 기록, 2위 한국도로공사(승점 70)에 무려 승점 12 차로 앞선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 19 확산으로 리그가 조기 종료된 탓에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지 못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곧바로 다음 2022-2023시즌에는 개막 15연승을 달리는 등 무서운 기세를 보였다. 하지만 시즌 중 주포 야스민(27)과 주전 리베로 김연견(30) 등 주축 선수들이 잇따라 부상으로 이탈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35)을 앞세운 흥국생명(승점 82)에 밀려 2위(승점70)으로 시즌을 마쳤다.

정규 리그 2위 자력으로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PO)에 직행했지만 우승을 향한 여정은 멈췄다. 한국도로공사와 3전 2선승제 승부를 펼쳤는데 1, 2차전을 모두 내주면서 챔피언 결정전 진출이 좌절됐다.

현대건설 양효진. 한국배구연맹

그만큼 현대건설 선수들 모두 새 시즌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다시 정상에 오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양효진은 "우승이 계속 무산됐지만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느낌"이라면서 "새 멤버들도 투입된 만큼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난 시즌 부상이 발목을 잡았던 만큼 체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효진은 "최근까지 부상 선수가 워낙 많아서 팀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강성형) 감독님께서 새 시즌을 잘 버티기 위해 비시즌 동안 체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고 계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변명은 없었다. 양효진은 "시즌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같다. 선수 구성에 변수가 생기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부분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다들 지난 시즌보다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젊은 선수들에겐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이들을 바라본 양효진은 "어려운 점이 많고 배우고 싶은 열망도 컸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항상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었다"면서 "어린 친구들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침체를 겪은 만큼 새 시즌에는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양효진은 "시즌 초반이 제일 중요하긴 하다. 1~3라운드에서 분위기를 잡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는 후반기에 안 좋았다"면서 "장기 레이스인 만큼 체력 안배를 잘하고 시즌 막바지까지 꾸준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 출전한 정지윤(왼쪽)과 이다현(오른쪽). 연합뉴스

▲"VNL 전패? 수고했다는 말밖에…시간이 더 필요해요"

소속팀에서 아끼는 후배인 이다현(22), 김다인(24), 정지윤(22) 등 3명이 지난달 2023 VNL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비록 좋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진 못했지만 양효진은 후배들의 노고를 깊게 공감하며 어깨를 토탁였다. 그는 "수고했다는 말 외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면서 "대회 일정이 빡빡한 만큼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수고했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양효진이 태극 마크를 반납한 뒤 성장통을 겪고 있는 대표팀이다. 이에 양효진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아직은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인 것 같다"면서 "나는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응원해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계 배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효진 역시 이를 공감하며 "여자 배구도 최근 남자 배구 같은 느낌으로 바뀌는 흐름"이라면서 "예전에는 아기자기한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공격적이고 파워풀한 플레이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배구가 변하고 있는 시점에 맞춰 시작된 세대교체인 만큼 대표팀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양효진은 "한 번에 기량이 좋아지는 건 어렵다. 일반 사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차근차근 배워나간다면 개인은 물론 팀적으로도 더 강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격려했다.

후배들의 고충을 모두 겪어본 양효진은 "나도 개인적으로 대표팀에서 느꼈던 부분은 많다"면서 "경기를 통해 발전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후배들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끈 양효진. 노컷뉴스

▲"대표팀은 성장통 느끼는 곳, 후배들도 잘 해낼 거라 믿어요"

과거 대표팀에서 여러 영광을 누린 양효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일까. 양효진은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처음 출전한 2012년 런던 대회도 아직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면서 "일본전에서 상대 미들 블로커의 공격을 못 잡았던 게 계속 생각이 났는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놓치지 말아야겠단 생각으로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지금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배구 생활을 재미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국제 대회에서도 양효진은 블로킹상, 베스트 미들 블로커 등 여러 화려한 개인 수상을 자랑한다. 이에 양효진은 "블로킹만큼은 애착이 강했던 것 같다"면서 "미들 블로커로서 팀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고민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한국 여자 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만큼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양효진은 "성장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면서 "내 현주소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시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선수로서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현재 침체를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다. 양효진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자존감이 낮아지기 마련"이라면서 "외국 선수들이 신체 조건이 워낙 좋아서 다른 세상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후배들의 고충을 깊게 공감했다. 이어 "그래도 본인들이 노력하고 있고 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응원을 보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양효진. 한국배구연맹

▲"팬들의 기억 속에 좋은 선수로 남고 싶어요"

양효진은 대표팀 은퇴 후 소속팀 현대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프로로 데뷔한 2007-2008시즌부터 계속 몸담고 있는 팀인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다른 팀에 갈 수 있는 순간도 굉장히 많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계속 몸담은 팀이라 애착이 생긴 것 같다"면서 "선수 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까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는데, 그동안 팀에서도 굉장히 잘 챙겨줬던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2015-2016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 이후 7년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다시 한번 현대건설에 우승을 안기겠다는 열망도 강렬하다. 하지만 내심 우승 앞에서 좌절했던 지난 두 시즌에 대한 아쉬움이 큰 모양이다.

양효진은 "2021-2022시즌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포스트 시즌에 갔다면 젊은 선수들이 좋은 경험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면서 "봄 배구를 경험해 봐야 우승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우승에 도전할 기회조차 없어서 선수들의 마음 속에 응어리가 많이 남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지만 새 시즌 특별한 목표는 없다. 양효진은 "어렸을 때는 블로킹에 대한 확고한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잘하자는 생각뿐이고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양효진은 개인 기록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가 있다. 그는 "특별히 이루고 싶은 목표보단 마지막까지 팬들의 기억 속에 좋은 선수로 남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서 "목표 달성에 큰 의미를 두는 것보다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성=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startjo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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