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군복만 입으면 왜 사람이 변할까요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2023. 7. 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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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D.P. 시즌2' 28일 공개
부조리 키우는 군문화 집중해부
현실로 확장 시도…용감한 기획
사회 변혁, 개인 아닌 시스템 몫
'D.P.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 작품 '기생충'에서 냄새는 극적 긴장의 끈을 조이는 강렬한 장치로 쓰인다. 냄새가 그것과 관련한 기억을 소환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특정 냄새로 떠올린 기억에 따라 편안, 그리움, 불쾌와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 감정은 각자 개성에 따라 표정이나 몸짓, 말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의복, 그러니까 옷도 냄새와 비슷한 맥락을 지닌 문화적 소산이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사람을 보면 중세 한반도 조선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옷 역시 우리네 머릿속에 시간과 공간에 관한 기억을 불러들이는 셈이다.

옷은 같은 시공간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색다른 기능을 한다. 바로 '계급' 구분('기생충'에서 목격했듯이 냄새도 그렇다)이다. 우리는 상대가 입은 옷을 통해 그의 계급적 위치를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인류가 문화라고 불러 온 법칙이 우리를 그렇게 학습시켜 온 탓이다. 명품 옷에 대한 많은 이들의 커다란 열망은 이러한 학습의 결과물일 터이다.

그렇다면 군복은 어떤 옷일까. 예비군 훈련장 주변에서는 군복 단추와 군화 끈을 풀어헤친 채 껄렁하게 걷거나 앉아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군대를 다녀온 이들은 "군복을 입으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이 군 복무 당시 받은 억압에 대한 저항이든, 말년 병장으로서 누린 권력에 대한 향수이든, 이미 군 복무 의무를 끝낸 자의 여유이든 군복이 그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D.P.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군대 문화는 '상명하복'으로 대표된다. 윗사람 명령에 아랫사람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 군복에 달린 계급장이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무언가 지시를 받으면, 마지못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극상으로 간주돼 처벌이 뒤따른다.

이렇듯 철저한 계급 체계가 작동하니 군대 문화는 상급자의 윤리적 역량에 따라 많은 부분이 좌우되는 듯하다. 높은 계급을 지닌 자의 일탈이나 그것을 은폐하는 행태가 결국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보호 받고 양산되는 구조인 셈이다.

오는 28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화제작 'D.P. 시즌2'에서 다루는 사건·사고는 모두 부조리한 군대 문화 위에서 벌어진다. 흥미로운 지점은 극중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한국 사회 부조리와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이다.

군인 출신 정치 지도자들이 오랜 기간 나라를 통치하면서 그 문화를 우리 사회 뼛속 깊이 이식했으니, 그 잔재는 여전히 곳곳에 스며 있을 것이다. 앞서 높은 인기를 끈 'D.P. 시즌1'에 대한 공감대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번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고 'D.P. 시즌2'는 웅변한다. 극중 군간부 자녀의 학습지 배달 심부름 등에 시달리는 병사 준호(정해인), 말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채 무기력증에 빠진 또 다른 병사 호열(구교환), 그리고 부조리한 시스템을 수호하기 위해 갈수록 잔인해지는 군 법무실장 구자운(지진희) 무리까지.

'D.P.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온갖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는 문화 속에서, 이를 바꾸는 역할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일은 무책임한 사회의 전형적 행태다. '영웅' 아니면 '반역자'라 불리는 개인들의 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

결국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주체는 부조리를 직시하고 행동하는 군중이다. 이를 통해 부조리에 대한 감시는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오히려 몰개성을 강권하는 군대 문화에 녹아들기 힘든 소수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는 데 있다. 두 주인공은 군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이탈한 이들 소수자를 쫓으면서 군대 내 만연한 부조리를 목격한다. 그리고 결국 행동한다.

소수자를 못살게 구는 사회, "너만 희생하면 모든 사람이 다 잘 살 거야"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기득권자의 민낯은 결국 까발려지기 마련이다. 'D.P. 시즌2'는 이러한 인식의 지평을 현실 사회로까지 넓히려는 용감한 기획으로 다가온다.

극적 긴장감을 높일 목적으로 펼쳐지는 다소 과장된 추격신 등이 눈에 밟힐 수도 있다. 하지만 장면마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배우들 연기와 몰입도를 극대화 하는 세련된 편집이 이를 충분히 상쇄하고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전반을 휘감는, 사회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를 뜻하는 '정의'(正義)라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를 떠받치는 든든한 토대로서 빛난다. 소수자, 약자를 희생양 삼아 혐오하고 배제하도록 만드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울림으로 그 메시지가 오롯이 수렴하는 까닭이다.

'D.P. 시즌2'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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