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대통령, 민주유공자법 거부 말아야…586 정치인도 반성할 점 있다”[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 기자 2023. 7.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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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재오 이사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여야가 대립 중인 민주유공자법 제정과 관련해 “가짜 유공자 양산에 대한 정부·여당의 우려는 시행령을 세밀하게 만들어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유공자를 엄격히 가려내면 해소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재오 이사장이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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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서 강하게 할 일은 부패 청산…고위공직자 최우선 손봐야

“이사장 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그만두게 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만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78)은 윤석열 정부를 화두 삼자 너털웃음부터 지었다. 그는 그간 윤 대통령과 여당 비판을 서슴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로 통했다. 하지만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되고선 다소 포용적인 말투로 바뀌었다.

정부·여당 대표는 올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기념사업회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내건 행사를 후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념사업회는 사전에 몰랐고, ‘퇴진’ 구호 확인 즉시 지원 취소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는 그 후 기념사업회 특별감사를 한 달 가까이 진행했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 제정도 그가 챙길 사안이다. 이 법안은 관련 법령이 있는 4·19, 5·18 이외의 민주화운동 사망자와 부상자, 그 가족·유족을 예우한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3년 만에 국회 상임위 소위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은 법안 강행 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며 반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친이명박계 좌장’, 5선 의원,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지낸 그가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지 주목받고 있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고, 고문당하며, 5차례에 걸쳐 10년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3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3/서성일 선임기자

- 힘든 시기에 기념사업회를 맡았습니다. ‘입막음용’ 인사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내가 하는 쓴소리는 정권을 어렵게 잡았고, 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위기인 만큼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야 한다, 권력에 취해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뜻에서 하는 거예요. 또 여권에서 쓴소리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잖아요. 나야 잃을 것이 없고 욕심내는 바도 없으니 소신껏 발언한 거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아닌 다른 기관이었다면 나는 가지 않았을 거예요.”

- 어째서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을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기관이니 민주화운동 한 사람이 맡아야 하는데, 여권에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어요. 여당뿐 아니라 야당 원로·중진들도 내게 ‘당신이 해야 한다’고 권했죠. 추천서 쓰겠다며 나선 것도 이상민 의원(민주당)이었고요. 2000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이 제정될 때 법안을 대표발의한 사람이 나예요. 그러니 피할 수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지원했어요.”

- 정치인 이사장은 처음이지요. 이재오 이사장이 이끄는 기념사업회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우리는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데, 정치인이 이사장으로 앉으면 아무래도 외부로부터 외압이나 간섭이 좀 줄어들겠죠. 또 여권에서 나를 이 자리에 보낸 것은 기념사업회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니 그 소임을 다해야죠.”

- 정부·여당이 올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2007년 국가기념일 제정 후 처음입니다.

“그 일은 기념사업회가 잘못한 거예요. 지원을 취소했어도 후원단체로 이름 올린 해당 행사 광고가 이미 신문에 실렸고, 포스터도 공개됐잖아요.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정권 퇴진 행사에 이름을 박았으니 정부로선 어이가 없죠. 그래서 정부 불참은 이해돼요. 하지만 여당 대표는 당연히 와야죠.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내가 당시 이사장이었다면 ‘잘못했고, 내가 책임진다. 하지만 국가기념행사이니 참석하는 게 옳다’고 정부와 당을 설득했을 거예요.”

- 행안부가 한 달 가까이 특별감사를 진행했고, 예산도 삭감한다죠.

“정부가 공공기관의 내년도 예산을 다 30%씩 삭감하는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50% 깎아 예산을 신청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오기 전 그렇게 예산을 신청했다는데, 50% 삭감하면 기관 운영을 못해요. 문 닫으라는 얘기죠. 그럴 수는 없어요. 또 나를 일하라고 보내놓고선 예산을 50% 깎으면 앞뒤가 안 맞잖아요. 나는 그렇게 안 되리라고 봐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3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3/서성일 선임기자

- 2020년 처음 민주당 의원들이 민주유공자법을 추진할 당시엔 이 이사장도 ‘후안무치’라며 반대했는데, 지난 4일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은 법안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전 특혜 논란이 있던 교육·취업·주택 지원 등은 빼고 양로·의료비 지원 등만 남겼지만, 정부·여당은 과거 반정부 시위나 불법파업 관련자 등 가짜 유공자가 양산된다며 반대하고 있어요.

“내가 이번에 법안을 자세히 검토했어요. 우원식 의원과 전재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 두 개가 상임위 소위를 통과했는데, 내용은 비슷해요. 그래서 이 두 법안을 종합해 단일안으로 다시 내겠다고 한 상황이에요. 그 최종안이 아직 안 나왔어요. 가짜 유공자 양산에 대한 정부·여당 우려는 시행령을 세밀하게 만들어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유공자를 엄격히 가려내면 해소될 일이에요. 이때 사건 기준이 아니라 개인별로 민주화운동 참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봐요.”

- 정부·여당의 법 제정 반대 이유가 기우라는 말씀이군요.

“그런 이유로 정부·여당이 법 제정을 막는 것은 말이 안 돼요. 하지만 여야 합의가 정 안 된다면 우선 박종철·이한열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분들과 그 유족만이라도 대상으로 해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해요. 부상자는 기준이 애매할 수 있지만, 사망자는 명확하니까요.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예를 지키자는 취지로, 최소한의 예우예요. 여야가 맞서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민주화운동 자체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 부상자 등은 아쉬움이 클 텐데요.

“보상을 바라고 민주화운동 한 사람은 없어요. 당대 지성인이면 해야 할 일이었어요. 일제 때 독립운동과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은 맥락이 같아요. 시대정신으로 일어난 거죠. 그렇기에 끝내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차선책으로 부상자는 일단 양보하자고 말한 거예요.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예요. 이 둘은 우리의 자산이죠. 대통령은 물론 시골 조합장까지 직선제로 뽑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마련한 것은 목숨 걸고 민주화운동을 한 이들이에요. 그걸 잊지 않아야 해요.”

- 이제 본격적으로 정부와 여당 설득에 나설 참인가요.

“그러려면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라는 공감을 얻어야 해요. 이재오가 자기가 민주화운동 했다고 자기 논리를 만드는 거라면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왜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반대가 있느냐도 돌아봐야 해요. 민주화운동 했다는 사람들이 반성할 점이 분명히 있어요.”

- 어떤 건가요.

“우리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 맞서 싸운 것은 자유·민주·통일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해 노력한 것이지, 이 운동 자체를 이념화·진영화하기 위해 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대우를 못 받는 점이 분명히 있어요. 또 일부이긴 하지만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의 비리·부패 문제도 있죠. 공직자, 특히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요.”

- 586 운동권 국회의원 말씀인가요.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 중에, 특히 정치인 중에 이권사업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된 사람이 많았단 말예요.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은 도덕성이 바탕이고, 독재를 하고 부패와 도둑질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저들보다는 적어도 나아야죠. 그런 명분으로 싸웠고요. 그런데 이후의 삶이 달랐다면 결국 자기 배 부르려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냐고 국민이 물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 민주유공자법이라든지 민주화운동한 사람들의 명예에 관한 말만 나오면 일부 보수신문에서 거품을 물고 씹어대는 거예요. 일부의 잘못된 처신이 오늘날 민주유공자법을 만드는 데도 장애물이 되고 있어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3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3/서성일 선임기자

화제를 바꿔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와 국정기조,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 윤석열 정부에 이명박(MB) 정부 사람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사정기관과 권력기관은 검사 출신들이 장악하고, 그 나머지 기관들은 MB계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건 나도 인정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진보정부 10년 후에 정권을 잡았잖아요. MB 정부가 누적돼 있던 보수 성향의 뛰어난 사람을 싹 가져다 썼죠. 이후 박근혜·문재인 정부 10년간은 MB 정부 사람을 안 썼어요. 그러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는데 인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 있는 사람을 써야 하잖아요. 그래서 MB 정부 때 비서관, 행정관, 장차관 했던 사람들을 다시 기용한 거죠.”

- 두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 방향도 비슷해 ‘MB 시즌2’ 아니냐는 말이 나와요.

“이명박 정부의 기본 국정노선은 중도실용주의였어요. 윤석열 정부도 결국은 중도실용주의로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나라가 처한 분단 상황에서는 그게 가장 바람직하니까요.”

-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엔 국민의힘을 실용주의 정당으로 바꾸고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포용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현재 대통령 모습은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닫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기 초기인 만큼 윤 대통령이 본인이 생각하는 헌법적 가치, 자유의 가치에 충실하도록 국정기조 틀을 다잡기 위해 세게 나가는 것이라고 봐요. 문재인 정부 때 국정운영을 너무 물렁하게 했으니까요. 그래서 국가 기강이 안 섰고요. 금년이 지나면 윤 정부도 국정기조 틀이 잡힐 테니 임기 3년차부터는 중도실용주의로 가지 않겠나, 이렇게 봅니다.”

-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김정은 타도’를 주장했습니다.

“문 정부 때 북한에 너무 일방적으로 끌려다녔잖아요.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이니까 두드러질 수 있는데 결국엔 힘이 비축되고 나면 남북 문제도 대화로 푸는 기조로 갈 거예요. 통일부 장관에 그런 사람을 앉힌 것은 남북관계에 있어 일단 입장은 분명히 하겠다는 거겠죠. 그리고 그 사람이 과거 그런 글을 썼다고 해도 장관이 되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백선엽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며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 적힌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제 때 한 행위와 6·25전쟁 과정에서 한 역할을 동시에 기록하면 되는 일이에요. 영웅적 행위를 부각하기 위해 다른 하나의 기록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죠. 그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분을 친일로 매도할 건 아니지만, 누구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모두 기록해 후세 사람들이 평가하게 해야 해요.”

-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검찰식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와요.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언급하고 해법은 ‘수사·처벌’이나 ‘보조금 폐지’ 등으로 귀결됩니다.

“과도기니, 그런 충격요법이 필요할 거예요. 내가 보기엔 윤 대통령이 이 나라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생각을 갖고 카르텔을 제기한 거예요. 나 역시 부패 청산이야말로 윤 정부가 제일 강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최우선은 고위공직자, 특히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부패 청산입니다.”

- 왜 그렇죠.

“공무원들이 인허가를 한 달 안에 해줄 수 있는 것도 1년 이상 끌어요. 공장 하나 짓는 데 인허가 문제로 3년이 지연되죠. 또 국회의원들은 국회 상임위 통과 후 한두 달 안에 본회의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도 몇달씩 끌다가 결국 회기를 넘겨 폐기되게 해요. 사법부도 마찬가지예요. 형사재판은 1·2·3심 기간이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판결을 해줘야 피고인 인권이 보장되지만 지켜지지 않아요. 이 모두가 밥술깨나 먹는 고위공직자들이 일으키는 만연한 부패예요. 이런 걸 먼저 청산해야 나라를 바로잡는 거예요.”

- 방법은요.

“부처마다 부패 종류를 제시하고 발본색원하라고 해야죠. 그야말로 혁명적인 부패 청산 로드맵을 제시해야 해요.”

- MB 정부에선 왜 안 했습니까.

“정권 초부터 하려고 했지만, 저항이 많아 잘 안됐어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다 반대하니까.”

-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가능할까요.

“나는 윤 대통령 스타일로 봐서는 가능하다고 봐요. 본인 말대로 정치권에 빚도 없고, 신세진 사람도 없잖아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3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3/서성일 선임기자

-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둘러싼 특혜 의혹은 어떻게 봅니까.

“진실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원희룡 장관이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말한 것은 잘못한 거예요. 자기 개인사업이 아니라 국가사업이잖아요. 의혹이 사실이 아니면 대화로 설득하고 설명해 풀어줘야지 야당이 공격한다고 해서 안 한다고 하면 양평군민들은 하루아침에 뭐가 되겠어요?”

- 국민의힘이 당대표는 존재감이 없고, 당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어 용산출장소라는 오명까지 씌워졌어요.

“그걸 개선 안 하면 내년 총선을 못 치러요.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어요. 대통령실도 공천 작업 등 선거전략을 당이 세우도록 상당히 많은 걸 점차 위임할 수밖에 없어요. 너무 깊이 개입했다가 선거에서 지면 대통령실이 뒤집어쓰니까요. 그러면 바로 레임덕이에요. 그 위험을 감수하겠어요?”

- 윤 대통령은 지난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때 유승민·안철수·나경원 후보 낙오에 영향력을 행사했잖아요.

“그렇게 전당대회에 개입하면서까지 김기현 체제를 만들어놨더니, 당이 박력 있게 하는 것도 없고, 영 기대에 못 미친다고 대통령이 생각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 더 이상 당에 개입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 내년 총선에서 이준석 전 대표에게 공천을 해줄까요.

“나도 선거 몇번씩 해봤지만 당연히 공천 줍니다. 선거 때는 당선되는 한 자리, 한 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미워도 일단 당선시켜놓고 보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탄핵당한 거잖아요. 당을 강하게 할 의원들을 다 잘라버렸으니 당이 자생력을 잃고, 대통령을 방어할 사람도 없었던 거예요.”

-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참모들이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와요. 참모의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윤 대통령 참모들에게 해줄 조언은 없습니까.

“잘릴 각오로 대통령께 필요한 직언을 해야 해요. 대통령이 화내면 일단 그 자리에선 멈추더라도 다시 기회를 엿봐 또 해야 해요. 조선시대 신하들도 경복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전하 통촉하소서’ 하다가 유배당하고 사약을 받기도 했잖아요. 조선이 500년간 유지된 것은 바로 그런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 집권 1년이 넘도록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았어요.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 적이 있습니까. 여당과 야당이 지금처럼 이렇게 극한으로 반목한 적이 있나요.

“없었어요. 앞에선 싸워도 뒤에선 비공식적으로 만나고 개인적으로도 만났어요. 이명박 정부 때 민주당 원내대표가 박지원 의원이었어요. 얼마나 속썩였어요(웃음). 야당이 죽어라 반대해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날에도 내가 저녁에 박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모시고 갔고, 이명박 대통령과 셋이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눴어요. 그런데 지금 여야 대립은 야당도 문제가 많아요. 사사건건 반대하고 정치적 음모를 퍼뜨리고 입만 열면 김건희 여사를 물고 늘어지니 대통령과 여당도 질리지 않겠어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1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3/서성일 선임기자

그는 매일 오전 5시30분에 서울 은평구 구산동 자택에서 나와 3시간 반 동안 북한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일요일엔 40㎞ 거리를 자전거 타고 3시간 동안 달린다. 벌써 30년 가까이 몸에 밴 습관이다. 술·담배도 안 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오래된 습관은 또 있다. 고교 시절부터 매일 잠들기 전 써온 일기다. 일기는 그가 하루를 성찰하며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정치지망생이나 후배 정치인에게 선배로서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은 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돈에 미련 갖지 말고 정치하는 데만 전념하라”였다. 구산동 23평 남짓 단독주택에서만 36년간 살며 청빈한 삶을 지향해온 그는 “국회의원은 먹고살 만큼 세비를 받으니, 작은 일이라도 오직 국민과 국가에 도움 되는 일을 하라”고 했다. 새겨들어야 할 여야 의원들이 적잖을 테다.

박주연 논설위원

박주연 논설위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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