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김재련 "박원순 시장을 두번 세번 자꾸 조롱하지 마세요"
"박시장 성폭력 피해자 진술은 객관적 정황증거가 뒷받침된 것"
"국가인권위 결정문, 행정법원 판결문 제대로 읽어보고 말하길"
[※ 편집자 주= 김재련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두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오늘(19일) 송고한 인터뷰 기사는 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관련한 내용이고, 조만간에 보내는 2차 인터뷰 기사는 변호사 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도 들어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김재련 변호사(50)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는 명백한 성폭력이 있었는데도,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3년 넘게 무모한 2차 가해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박 전 시장의 명예를 두 번 세 번 훼손하고 그를 조롱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시장이 "혼자 있냐, 내가 갈까?", "아직 결혼을 못 한 것은 남자 경험이 없어서야", "좋은 냄새 난다" 등의 문자를 보내거나 말을 했다고 했다. 이는 국가기관의 판단을 통해 사실로 정리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한쪽의 일방적 주장이며,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한다. 피해자가 박 시장한테 손 편지를 쓰고, 생일축하 파티에서 박 시장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사랑해요", "꿈속에서는 돼요"라는 문자를 보냈다면서 꽃뱀이라고 했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이 누명을 쓰고 죽었다면서 8월 중에 박 시장의 '억울함'을 담은 영화 '첫 변론'을 상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쪽저쪽 진술과 의견을 모두 고려해 국가인권위(2022년 1월)와 행정법원(2022년 11월)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혐의를 인정했다면서 이들 기관의 판결문과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를 권한다고 했다.
1996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재련은 200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1천건 이상의 성폭력 사건을 대리했다. 외국인노동자, 가정폭력 변론도 많이 맡았다. 고려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2011년), 30대 남성의 60대 여성 성폭행 사건(2012년)의 피해자 측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는 여성의전화와 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변호사.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개방직), 국가인권위 성차별 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온세상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 나는 변호사이니 누군가를 대리하는 일을 한다. 그런 일상적인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데, 기존 사건과 관련해 자꾸 일이 터진다. 지난 5월과 6월은 매우 바빴다.
--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때문인가.
▲ 그렇다. 2차 가해가 발생하니 행정법원 판결문을 다시 보고,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을 다시 들여다보고, 피해자(김잔디)가 썼던 책도 다시 읽었다.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 8월 중에 상영한다는 영화 '첫 변론' 기획 의도를 아는가.
▲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영화를 제작한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 믿음이 견고하게 유지되기를 원하는 듯하다. 자기들 믿음에 맞게끔 이 사건을 재해석해서 뭔가를 창조하고 싶은 것이다. 성희롱과 성폭력은 사실관계에 관한 문제다. 특정인(박 전 시장)을 믿는다고 해서 사실관계를 비틀고 왜곡할 수는 없다.
-- 그 사실관계는 누가 판단하나.
▲ 먼저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는 서울시 비서실 전현직 직원 등 50여명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조사를 한 결과,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 유족들은 잘못됐으니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접수한 행정법원은 오랫동안 검토한 끝에 성희롱이 맞다고 판결했다. 이런데도 박 시장 지지자들이 2차 가해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이는 박 시장에게 남아있는 명예마저 다시 훼손하는 행위다. 사실관계를 부정하고 왜곡하면 우리는 팩트에 대해 다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박 시장의 잘못은 다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의 명예는 훼손되고 또 훼손되는 것이다.
-- 박 시장 지지자들은 국가인권위와 행정법원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 그러면 국가위원회, 수사기관, 법원은 뭐 하러 두는가. 그런 기관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부정한다면 국가기관의 의미는 없다.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본 사람은 이런 기관을 통해 권리 구제를 받고, 수사절차를 통해 가해자의 범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는 게 원칙이다. 그게 바로 법치국가다. 그들의 행동은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다.
-- 당시 피해자가 항상 해맑은 모습을 보이고 박 시장을 응원하고 하니, 성폭력 피해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 '피해자다움'에 기반한 착각이다. "성폭력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거야", "성폭력 피해자라면 이런 행동을 했을 리 없어"라는 편견을 사람들은 갖고 있다. 실제로는 '피해자다움'이라는 것은 없다. 피해자들은 성향이나 기질, 주변 환경, 지지기반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피해자마다 대처하는 과정도 다르다. 군 생활을 할 때 상급자가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이 피해 군인은 가족들이 보내온 선물을 그 상급자에게 주면서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 상급자가 특정 노래를 좋아하면 그 앞에서 그 노래도 불러준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는 항상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강하고, 업무에 상당히 열정적이며, 정무적 판단력도 갖춘 훌륭한 청년이다. 피해자의 그런 모습을 근거로 피해자답지 않다며 성폭력을 부정한다면 아주 잘못된 인식이다.
-- 이런 현상은 직장에서도 많을 듯한데.
▲ 직장에서도 상사한테 "부장님 오늘 옷이 너무 멋져요". "목소리가 좋아요"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고 이 부하직원이 부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체벌을 심하게 하는 선생님께 스승의 날에 "존경한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감사 편지를 쓰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 이는 양가(兩價)감정 같은 것인가.
▲ 그렇다. 성폭력 피해자는 양가감정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더욱 그렇다. 가해자가 공동체의 영역 안에서 업적을 쌓고, 공적 활동을 열심히 하고, 그동안 표방한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을 때 존경하는 마음, 따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박 시장이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고, 수많은 지지자를 두고 있으며, 권력을 가진 것은 그동안 공적 영역에서 쌓아온 결과다. 그것은 박 시장의 공(功)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적(性的)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힘들고 불편한 일이다. 존경하는 마음과는 다른 문제다.
-- 양가감정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 친부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그 여중생의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지방을 다니면서 막노동을 했다. 그 아이는 서울의 사촌 언니 집에서 지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딸을 성폭행했다. 너무 힘들고 끔찍한 일이기에 그 아이는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선생님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아빠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는 선생님에게 "아버지는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성폭력이 지속되자 아이는 다른 친족한테 그 고통을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결국 구속됐다. 법정에서 검사는 아이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아이의 눈은 수의를 입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밥은 먹고 있는지?"가 첫마디였고 그다음이 "미안해요"였다.
-- 아이는 아버지에게 분노와 미안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인가.
▲ 그 아이는 자기를 위해 지방에서 막노동했던 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좀 더 참지 않고 신고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구속된 데 대해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아버지의 성폭력으로 고통스러우면서도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양가감정이다.
-- 박 시장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하면 사실 판단에 도움이 될 듯한데.
▲ 우리는 고소 당시부터 수사기관에 끊임없이 요구했다. 박 시장이 사용 중인 휴대전화, 이전에 사용했다가 캐비넷에 두고 있었던 휴대전화까지 포렌식 해달라고 했다. 박 시장의 휴대전화에는 본인이 찍어 보낸 사진도 있을 것이기에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 포렌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포렌식 하면 안 된다면서 휴대전화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휴대전화를 받아 간 이후에 박 시장의 텔레그램 계정이 탈퇴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시장이 사망한 후여서 당사자가 직접 탈퇴한 것은 아니다.
-- 박 시장이 섹스의 전체 과정을 설명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피해자 휴대전화 포렌식에서 복구되지 않았나.
▲ 박 시장이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피해자를 초청해놓고는 섹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과정을 묘사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심해서 걱정됐던지 피해자에게 지우라고 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가 미처 지우지 못한 사이 피해자 휴대전화에 있는 대화 내용까지 직접 폭파해버렸다고 한다. 폭파는 대화 상대방의 문자 내용까지 삭제하는 조치다.
-- 이 문자 내용은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 직전에 언급했던 '문제의 소지가 될만한' 내용에 포함되나.
▲ 이 문자는 박 시장이 보내온 내용 가운데 가장 적나라한 것으로 판단된다. 박 시장은 이런 내용이 피해자 휴대전화 포렌식에서 복구됐을 가능성에 대해 많이 걱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이 사망 직전 서울시 젠더 특보에게 "직원과 주고받은 문자가 있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 될 소지가 있다. 이번 파고는 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는데, 문제의 그 문자가 2020년 2월에 섹스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박 시장도 그 문자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무릎에 '호'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박 시장 지지자들은 주장하는데.
▲ 박 시장은 집무실에서 단둘이 있을 때 피해자에게 "멍이 들었네"라고 말하고는 '호'해주겠다면서 피해자 무릎에 자기 입술을 댔다. 그 과정에서 박 시장이 넘어지려고 했고, 피해자가 몸을 잡아줬다. 집무실에서 나온 피해자는 바로 탕비실로 가서 자기 무릎을 세정제로 여러 차례 씻어냈다. 며칠 후 박 시장은 한밤중에, 집에 있는 피해자에게 텔레그램 문자를 보냈다. "무릎 다 나았냐?"라고 물었고 피해자가 "다 나았다"고 하자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그 사진이 남아있기에 경찰조사 때 날짜를 특정할 수 있었다.
-- 박 시장 지지자들은 당시 '호'했다는 현장에 여러 사람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 다른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피해자가 경찰에서 피해 사실로 주장한 것은 박 시장 집무실에서 단둘이 있을 때 발생한 것이었다. 행정법원 판결문에서 언급됐듯이 피해자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당시 비서실 동료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물론, 이 문자도 경찰에 제출됐다.
-- 박 시장이 러닝셔츠 차림 사진을 보낸 것은 홈페이지 등에 많이 나오는 평범한 수준이어서 성희롱이 아니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하는데.
▲ 같은 사진이어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박 시장이 옥탑방에서 에어컨 없이 서민 체험을 한다면서 러닝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과 심야에 여직원을 비밀 채팅방으로 초청한 뒤에 "혼자 있느냐? 내가 갈까?"라는 문자를 남발하면서 보낸 러닝셔츠 사진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박 시장이 한밤중에 텔레그램으로 속옷 사진을 보낸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덮을 수 없는 잘못된 행위다.
-- 피해자가 "꿈에서는 돼요"라고 했는데, 어떤 맥락이었나.
▲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그 부분에 대해 명확히 판단해 줬다. 판결문은 "꿈에서는 된다는 취지의 말은 박 시장이 밤늦은 시간에 대답하기 곤란한 성적 언동을 지속하자, 피해자는 이를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이라면서 "박 시장에게 밉보이지 않고, 그를 달래기 위해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라고 했다.
-- 사실상 거절의 의미란 것인가.
▲ 그렇다. 심야에 추근거리는 문자를 받은 말단 직원이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 "시장님 이런 문자 보내지 마세요. 저 정말 불편하고 싫습니다"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반응을 시작으로 문제가 되면 잘 나가는 상사를 무너트린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조직에서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직 위신을 추락시켰다는 이유로 인사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도 많다. 거절하면서도 가해자의 심기를 살펴야 하는 것이 피해자들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도 이런 이유로 "꿈에서는 돼요"라는 소극적 문자로 대응한 것이다.
-- 이에 대한 박 시장의 반응은.
▲ 박 시장의 문자가 "꿈에서는 맘대로 ㅋㅋ"였다. 현실에서는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지만 꿈에서는 자기 맘대로 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피해자가 "사랑해요"라는 표현을 썼는데,
▲ 박 시장 비서실에서 "사랑해요"라는 표현은 일상적이다. 이성적으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행정법원 판결에서도 명시돼 있다. 박 시장 생일축하 파티 영상을 보면 남자 직원이나 여자 직원이나 모두 "사랑해요"라고 한다. `사랑해요'는 비서실에서 존경의 표시로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밝혔다.
-- 박 시장의 "킁킁"은 구체적으로 무슨 맥락인가.
▲ 박 시장은 피해자의 냄새가 좋다면서 옆에 와서 "킁킁"하면서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고, 자주 그랬다고 한다. 박 시장은 문자로도 '킁킁'을 보내왔다. 피해자가 '킁킁' 문자를 받은 후 서울시청 동료에게 직접 보여주며 불편하다고 토로한 것도 인권위 조사에서 확인됐다.
-- 피해자가 박 시장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 제지하지 못한 것이 피해자의 책임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성적(性的) 행위가 불편했고, 근무에도 영향을 받았다. 피해자는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하면서도 가해자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 봐 눈치를 봐야 했다. 박 시장이 집무실 안에 있는 내실로 피해자를 불러서는 안아달라고 했을 때 피해자는 박 시장이 기분 나쁘지 않게, 완곡하게 거절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 성폭력 증거가 없다는 박 시장 지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피해자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나온 내용, 부적절한 문자를 직접 본 동료들, 지인들의 증언들이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거에 더하여 박 시장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해서 추가 증거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족들의 반대로 박 시장의 휴대전화는 포렌식 되지 못한 채 반환됐고, 영구 봉인돼 버렸다. 성폭력은 주로 내밀한 공간에서 둘만 있을 때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를 직접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꽤 있다. 객관적 정황증거가 없는 경우 피해자 진술만을 근거로 유죄가 나오기는 어렵다. 직접적 증거가 없는 때에는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있는지 법관들은 신중하게 판단한다. 피해자가 주장한다고 해서 수사기관과 법원이 일방적으로 믿어주는 것이 아니다.
-- 박 시장 사건에서는 피해 정황증거가 있다는 것인가.
▲ 박 시장 사건은 피해자의 주장이 구체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건 발생 전후의 상황에 대한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정황증거가 존재했다. 누구와 있을 때 그런 문자를 받았는지, 그 문자를 본 지인의 반응은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참고인이 그런 문자를 본 사실을 기억하는지, 기억하는 문자 내용은 무엇인지,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은 문자를 직접 보여준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여 주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서울시청 동료는 피해자가 보여준 문자를 기억하는지,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가 이뤄졌다. 이렇게 확보된 정황증거에 의해 피해자 진술이 뒷받침됐고, 신빙성을 부여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적인 삶은 여러 차례 분해되고 해체되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박 시장 지지자들은 왜 그런 주장을 하나.
▲ 그들은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증거 없이는 '사실'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에 피해자 주장은 법원에서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박 시장 지지자들의 주장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따른 것이다.
-- 박 시장 지지자들은 그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하는데.
▲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많은 지지자를 두고 있는 박 시장이 자기를 방어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지자들은 "박 시장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당당하기 위해 결단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궤변이다.
-- 법원은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나.
▲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박 시장은 자해에 의한 사망을 선택해 방어권 행사 기회를 스스로 상실했다"고 했다. 법원은 "조사를 앞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잘못의 시인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억울함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해석되기는 한다"면서 "이 사건에서 박 시장은 자신이 고소됐음을 알고 곧바로 사망을 선택했는데, 이는 자기 잘못을 시인한 것"이라고 했다.
-- 박 시장 묘소를 모란공원으로 이장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모란공원은 민주화의 성지다. 위력 성폭력으로 피소되자마자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시장의 묘소를 그곳으로 옮긴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 시장에 대한 사후 평가를 거듭 훼손하는 행위다. 가해행위가 다시 조명될 수밖에 없고,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란공원은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이 모셔지는 상징적 장소인데, 그 장소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 이화여대 김수진 명예교수가 박 시장 묘소 이장식 추도사에서 고인이 중상모략을 당했다고 했는데.
▲ 굳이 반박할 필요조차 없는 수준이다. 그분의 추도사를 보면 뭔가 좋은 일이 있으면 제자들을 얼싸안고 격려해줬다고 하는데, 제자들도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심야에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초대하고는 '킁킁', "혼자 있느냐? 갈까?"의 문자를 보내는 것은 학위를 받은 제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 박 시장 지지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특히 2차 가해자들은 국가인권위의 결정문과 행정법원의 판결문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거기에 사실관계가 명시돼 있다. 이들 기관이 단순하게 한쪽 이야기만 듣고 결정하고 판결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관련자들의 여러 의견, 증거자료 등을 토대로 판단한 것이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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