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방해 막아야” 독려에 추천 급증…‘세몰이’장 된 국민참여 토론
찬성, 반대측 투표 독려 이후 10분당 수백 건 급증
민감한 사안에 세몰이식 국민참여 토론 맞는지 의문
대통령실이 국민참여 토론에 부친 ‘집회·시위 규제 강화’ 방안에 대한 추천·비추천(찬성·반대) 숫자가 특정 시간대에 급증하는 현상이 다수 확인됐다. 특히 한국자유총연맹 관계자 등 현 정부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투표를 독려하면 국민참여 토론에서 추천 수가 급증하는 유형이 나타났다. 토론이 국민여론 수렴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세력 동원’의 장으로 변질된 셈이다.
앞서 대통령실이 진행한 TV 수신료 관련 토론 참여자 중 ‘중복 이용자’가 상당수라는 보도(경향신문 6월15일자 1·8면)가 나온 이후 해당 사이트에서 중복 이용자를 식별할 수 있는 기능을 삭제한 사실도 확인됐다. 정부는 토론 결과를 주요 근거로 집회·시위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이지만 이처럼 불완전하고 단선적인 여론수렴 방식으로 주요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게 맞느냐는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18일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국민참여 토론의 추천·비추천 수를 토론이 시작된 지난달 13일 오전 11시부터 10분 단위로 기록해본 결과, 한 자릿수로 늘어가던 투표수가 순식간에 10분당 수백건까지 증가하는 구간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본격적으로 투표수가 증가한 것은 지난달 19일 오후 6시였다. 비슷한 시각 트위터 이용자 ‘@s***’가 “집시법을 개악하려 합니다”라며 참여를 호소하자 비추천(반대) 투표수가 10분당 112건까지 증가했다. 그러자 이튿날인 지난달 20일 오전 9시쯤 친여 성향의 네이버 카페에 장철호 한국자유총연맹 사무부총장이 “좌파놈들의 방해로 오히려 불리한 상황으로 달리고 있다”며 추천(찬성) 투표를 호소했다. 게시물은 이미 여러 채널로 보낸 메시지를 복사·붙여넣기한 것으로 추정됐다.
장 사무부총장은 통화에서 “평소 집회·시위 문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웹서핑을 하다 국민참여 토론을 알게 됐다”며 “퇴근 후 저녁 때 개인적인 소견으로 올렸고, 할 수 있는 곳에 몇 군데 더 올렸는데 다 기억은 안 난다”고 말했다.
효과는 있었다. 이날 오후 9시쯤부터 9시30분까진 비추천이 추천을 근소하게 역전하기도 했지만, 오후 9시40분에는 추천 수가 10분당 544건까지 증가하면서 다시 뒤집혔다. 비추천도 계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트위터 이용자 ‘@g***’는 “반대가 많아지면 아무 소리 없이 게시물 내릴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루 뒤인 지난달 21일 오전 8시부터 9시50분까지는 비추천이 추천을 다시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추천 수는 무섭게 증가했다. 오전 10시32분 추천 측의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비상상황입니다! 어젯밤 노조에서 좌표를 찍은 듯합니다”라는 투표 독려 글이 올라왔다. 독려 직후 오전 10시40분에 1만7670건이던 추천 수는 자정 때가 되어서 4만8970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오후 6시50분에는 10분당 763건으로 순간 증가폭도 최대치를 기록했다. 초당 1.27건꼴로 추천 수가 증가한 셈이다. 비추천 수도 1만6512건에서 2만6845건으로 증가했지만 이에 미치지는 못했다.
트위터 이용자 ‘@k***’는 “갑자기 찬성이 두 배가 된다고? 이게 말이 됨?”이라는 글로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용자 ‘@d***’는 “이상해서 네이버 부계(중복으로 아이디 만들 수 있음)/카카오/비로그인 중 폰인증 다 해봤는데 각각 다 중복으로 투표 가능함”이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추천 수는 지난달 22일 하루 동안 2만4000여건, 23일에 1만4000여건, 7월1일에 1만1000여건으로 여러 차례 급격히 증가하는 구간이 눈에 띄었다. 비추천 수는 22일에 1만1000여건, 23일에 4600여건 증가했지만 추천 수 증가세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10분당 최대 증가 수도 추천 수가 763건이었던 반면 비추천 수는 277건에 불과했다. 결국 지난 3일 자정 최종 투표수는 추천 12만9416건, 비추천 5만3288건으로 마감됐다. 지금까지 진행된 국민참여 토론 세 차례 중 최고 투표 건수였다.
토론 댓글 중복 이용자 분석 코드도 삭제
투표수는 늘었지만 이전 토론에서 지적됐던 중복 투표 우려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손쉽게 만들어 투표할 수 있어 논란이 됐던 구글 로그인은 이번 토론에서 없어졌지만 네이버도 한 사람이 여러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이 간편인증, 금융인증서, 휴대전화 등 여러 수단으로 로그인해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도 중복 투표 가능성은 열려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집회·시위 규제 강화 토론에서 앞서 경향신문이 TV 수신료 토론 댓글 분석 때 중복 이용자의 판단 근거로 사용했던 ‘전체 글보기’ 기능을 없애기도 했다. 투표와 토론 댓글은 다르지만 중복 이용자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웹 소스코드를 분석해보니 토론 댓글을 남긴 이용자의 고유 아이디 값이 표시됐던 부분은 통째로 삭제돼 있었다. 대통령실에서도 중복 이용자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TV 수신료 분리징수, 집회·시위 규제 강화 등은 논란의 소지가 큰 중요 정책 사안이다. 토론과 숙의를 거쳐야 할 사안에 대해 이처럼 불완전하고 세력몰이 식으로 이뤄지는 ‘국민참여 토론’ 형식으로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7월3일자)에서 “이렇게 원하는 방향으로 답을 몰아가는 것을 ‘푸시 폴’(push poll), 즉 ‘조사를 가장한 정치 캠페인’이라고 한다”며 “인터넷 기사 댓글난에서도 보는, 엄지가 올라가거나 내려간 모양의 흥미 유발용(?) 추천·비추천 아이콘이 졸지에 대한민국 수신료 징수방식을 결정짓는 시민 의견으로 둔갑해 공증됐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이 결과를 정책 추진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유현재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예, 아니요만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설문 문항 자체가 프레이밍(틀짜기)”이라며 “대부분의 사회문제에서 진실은 중간쯤에 있는데 지금 정부는 네 편과 내 편, 선과 악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고 설문 투표 결과를 근거로 합리화를 하면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제안 웹페이지를 담당하는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참여 토론 관련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대변인실 쪽으로도 문의했지만 공식 입장은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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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politics/president/article/202306150600001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이수민 기자 watermin@kyunghyang.com, 박채움 기자 cuc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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