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그녀에게 '설레는 사랑'의 빚을 졌다[김고금평의 열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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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숨을 거둔 '프렌치 시크' '버킨 백'의 아이콘으로 숱한 화제를 몰고 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배우·모델이었던 제인 버킨(76)은 '사랑, 그 자체'(Love Itself)였다.
버킨은 1968년 프랑스 샹송음악의 거장인 세르주 갱스부르(1928~1991)와 영화 촬영 중 만나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의 국민 시인답게 갱스부르가 근사한 노랫말을 지으면 버킨은 그에 맞는 정서를 입혀 설레고 떨리는 첫사랑의 꿈을 단 돛단배로 금세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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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숨을 거둔 '프렌치 시크' '버킨 백'의 아이콘으로 숱한 화제를 몰고 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배우·모델이었던 제인 버킨(76)은 '사랑, 그 자체'(Love Itself)였다. 버킨은 1968년 프랑스 샹송음악의 거장인 세르주 갱스부르(1928~1991)와 영화 촬영 중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갱스부르는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고 버킨보다 18세나 많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이었지만, 음악적인 인연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국민 시인답게 갱스부르가 근사한 노랫말을 지으면 버킨은 그에 맞는 정서를 입혀 설레고 떨리는 첫사랑의 꿈을 단 돛단배로 금세 변신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낯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갱스부르가 버킨 이전에 만났던 브리짓 바르도를 위해 지은 러브송 'Je t'aime… moi non plus'(널 사랑해. 아니 난)가 노골적인 성적 가사와 여성 신음으로 바르도로부터 발매 중지 요청을 받았는데, 제인 버킨과 사귄 후 1970년에 발매한 음반 'Jane Birkin/Serge Gainsbourg'에 다시 실으면서 대중에게 공개됐고 이후 외설 논쟁에 휩싸이며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1977년 발매된 이 곡 하나로 두 사람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화신으로 떠올랐다. 주인공은 '예스터데이 예스 어 데이'(Yesterday Yes a day)다. 제목부터 동음이의어 같은 느낌이 드는 단어를 센스있게 조합한 것부터 신선하고 설레며, '어제(Yesterday)는(yes) 또 하나의 하루(a day)'라는 문장의 의미 역시 제법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갱스부르는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시적이고 은유적이고 중의적이며 철학적인 사랑의 언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무엇보다 이 가사를 제인 버킨이 철저하게 아마추어리즘적으로 접근해 첫사랑이나 풋사랑 같은 느낌을 노래 끝날 때까지 긴장감 있게 유지함으로써 노래의 생명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Yesterday Yes a day/Like any day/Alone again for every day/Seemed the same sad way/To pass the day"(어제는, 또 다른 하루/다른 날과 마찬가지로/매일 매일 혼자 외롭게 보내는/변함없이 슬픈 날 같았어요)
"What did you do without me/Why are you crying alone/On your shadow/He said 'bye now'"(나 없이 무엇을 했나요?/왜 혼자 당신의 그림자 위에서/울고 있나요?/그는 말했어요 '이제 안녕')
"Living my life without him/Don't let him go/he's found my shadow/Don't let him go"(그 사람 없이 내 삶을 살았기에/그를 보내지 말아요/그는 내 그림자를 찾았어요/그를 보내지 말아요)
버킨은 일부러 슬픔을 드러내지 않지만 고독과 외로움, 작은 우수와 그리움, 말하지 못할 내면의 아픔 같은 정서를 눈물을 다 흩날린 뒤 남은 건조한 목멤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음정으로 실어 날랐다.
이런 가사와 음색을 듣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사랑에 시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들이라면 더욱 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펑펑 쏟아낼지 모른다. 울컥거리게 만드는 모든 요소는 이들 두 사람이 그 순간 열렬히 사랑하고 온 힘을 바쳐 사랑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 곡으로 충분히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갱스부르는 생전에 위대한 국민가수의 표상과 함께 독특한 괴짜 음악가라는 두 개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 곡은 모든 이에게 건네는 사랑의 찬가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그의 장례식에서 "우리의 보들레르이고 아폴리네르다. 그는 음악의 위상을 예술의 수준으로 격상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언어는 시적 영감으로 똘똘 뭉쳤다.
버킨이 세상을 떠난 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우리의 언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로 노래한 버킨은 프랑스의 아이콘"이라고 추모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랑을 찾아 결국 떠났지만, 버킨은 오랫동안 갱스부르의 발자취를 잊지 못했다. 지난 2012년 두 번째 내한 무대에 오른 버킨은 공연명을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로 정한 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르주는 아폴리네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시인으로 꼽혀요. 그는 늘 20년 정도는 앞서갔고, 예지력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한 진정한 아티스트였어요. 멋진 청년처럼 로맨틱하고 도발적이었던 그는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죠."
그런 안타까움에 젖었던 버킨도 너무 이른 나이에 숨을 거뒀다. 어제는 또 다른 하루이겠지만, 그녀의 가창대로 '내 그림자에서 울고 있지 않을' 나를 위해 또 다른 하루를 사랑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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