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도망·‘하하하’ 월북”…‘분계선 넘은 미군’ 전말은? [특파원 리포트]
■ "하하하 웃으며 사라졌다"…"현장에 북한 군인 안 보여"
"DMZ 현장에 있는 건물 중 하나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그 사람이 갑자기 크게 '하하하' 하고 큰 소리를 내더니 일부 건물 사이로 뛰어들어갔습니다."
DMZ 투어를 하던 중 미국인이 월북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같은 투어에 참가한 관람객이 미국 CBS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군 관계자들이 몇 초안에 반응하긴 했지만, 혼란에 빠졌었다고 이 목격자는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그가 돌아오지 않자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 모두가 동요하면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는게 목격자의 얘기입니다.
미국인이 월북할 때 인근에선 북한 군인들이 보이지 않았다고도 이 목격자는 밝혔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북한 군인들은 계속 없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월북이 일어난 직후 함께 관광에 나섰던 사람들은 진술을 받기 위해 판문점의 남측 건물인 '자유의 집'을 거쳐 버스로 이동했다고 했습니다. "사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검문소 중 하나에 도착하니 '43명이 들어가고 42명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
■ "월북 당사자는 주한미군 이등병"…"언쟁 벌이고 두 달 구금, 귀국길 빠져나와 월북"
월북한 미국인이 주한미군 소속으로 밝혀진 만큼, 월북 정황은 대부분 미군을 취재하는 미국 언론들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AP통신과 로이터, 미국 ABC 방송 등은 월북한 미군 병사의 신원을 23살 주한미군 이등병 트레비스 킹으로 지목했습니다. 익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와 미군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미국 ABC방송은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 군인이 한국 현지인들과 언쟁을 벌인 뒤에 한국에 있는 구금 시설에 구금돼 두 달을 보냈고, 이후 시설을 나와 주한미군에서 감시 하에 다시 일주일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보내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호송됐습니다. 하지만 군 호위병들은 항공기 티켓이 없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당 미군은 혼자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익명의 미국 관리는 이 미군이 비행기에 탑승해 미군기지인 텍사스 포트 블리스에 도착했어야 하지만, 비행기에 타는 대신 DMZ 투어를 위해 공항 터미널을 떠났다고 ABC 방송에 밝혔습니다. 언제 DMZ 투어 티켓을 샀는지는 확실치 않다고도 했습니다.
미군은 이미 복역을 마쳤고 더는 구금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게이트 안까지 호위할 필요가 없었으며, 비행기에 타지 않을 거로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일부 미국 언론들은 이 병사가 징계를 받을 예정이었다고도 보도했습니다.
■ 당혹스런 미국 "고의적 월북…초기 조사 중"
미국은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월북한 미군의 신원을 아직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미군의 월북 경로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초기 단계라고도 했습니다.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모두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에도 "조사 중"이라는 입장 외에 공식적으로는 더 나아간 정보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월북한 사람이 미군 소속이고 '고의적이고 무허가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했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 화상회의 뒤 연 기자회견에서 "우리 군인 중 한 명이 (공동경비구역을) 견학하던 중 고의로, 무허가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오스틴 장관은 "북한이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믿고 있다. 상황을 긴밀히 주시하고 조사 중이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미국 백악관도 정례브리핑에서 "이 군인이 현재 북한에 구류(in custody)돼 있으며, 사건 해결을 위해 국방부가 북한의 카운터파트와 접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사도 미국 국방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현역 군인인 만큼, 국방부가 주무 부서"라며 "국방부가 북한 관리들과 적절히 접촉하고 있고, 우리는 그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까지는 일단 미군 차원의 문제로 사건을 좁히는 모습인데, 공동경비구역을 관할하는 유엔사를 통해 문제를 풀려 할 가능성이 큽니다.
■ 기밀 유출에 월북까지…뻥뻥 뚫리는 미군
미국 백악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상황을 보고받았고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추가 상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보고를 받을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의 높은 관심에도 극도로 보안을 유지 중인 미국 정부의 태도에서 당혹감도 엿보입니다.
21살 매사추세츠주 주방위군 공군 일병이던 잭 테세이라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을 미국이 도·감청한 내용을 담은 군 기밀 문건을 유출했다가 적발된 게 불과 지난 4월입니다. 석 달 만에 다시 미군이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만한 사고를 저지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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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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