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석이버섯부터 강황까지…진짜 ‘약주’ 한번 맛보실래요?
‘인생 활력소’ 술 빚기가 어느새 업으로
‘석로주’ 기분좋은 흙향 입안에 감돌아
지역문화재 연계 관광상품 개발 계획
‘술은 잘 마시면 보약이지만, 잘못 마시면 독이다.’
유명한 격언처럼 어떤 술을, 어떻게,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술은 약 또는 독이 되기도 한다. 무더위로 체력이 떨어지기 쉬운 요즘 약이 되는 술 빚기에 노력 중인 대전 석이원주조의 이상권 대표(62)를 만났다.
“충북 옥천에서 사슴농장을 크게 했었어요.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아 사업 실패를 겪었죠. 이후 여러 일을 하다가 석이버섯 음식점을 시작했어요. 술은 음식점을 열면서 배웠죠.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음식점을 접고 지금은 술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산전수전 겪은 이 대표에게 새로운 배움은 인생의 활력을 선사했다. 이 대표는 ‘전만동(전통주 만들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등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술을 배웠다. 2005년 주변 추천으로 전주대학교 대체의학과에 입학한 후 석이버섯의 효능에 매료됐다. 석이버섯은 깊은 산속 바위에서 자라는 버섯으로, 모양이 사람 귀를 닮았다. 채취도 어려울뿐더러 1년에 2㎜만 자라는 귀한 버섯이다. 석이버섯엔 항암 성분인 베타글루칸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석이버섯으로 술을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한 전통주 대회에도 나가 출품했더니 1등 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만들기 시작했죠.”
2012년 식당 옆에 양조장 문을 연 이 대표는 석이버섯 약주인 ‘석로주’(13도)를 선보였다. 차의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2015년 ‘석이버섯을 이용한 전통발효주 개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석로주’에 들어가는 석이버섯은 모두 국산이다. 석이버섯은 향이나 맛이 유별나진 않다. 대신 술로 빚어 마시면 입 안에 기분 좋은 흙향이 아주 가볍게 느껴진다. 술이 깔끔해 복날 음식인 삼계탕과도 궁합이 좋다. 백숙이나 담백한 회와도 잘 어울린다.
그는 석이버섯뿐만 아니라 계절별 다양한 약재들로 술을 빚는다. 국화를 넣은 약주인 ‘자자헌주’(17도)가 그것이다. 국화 중에서도 임금님이 차로 마셨다는 ‘어자국’을 직접 길러 사용한다. 쓴맛 없이 국화의 향긋함이 느껴지는 약주다. 또 막걸리인 ‘벗이랑’(12도)도 있다. 막걸리엔 강황·버찌 같은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재료를 넣었다. 모두 특유의 쓴맛이나 신맛이 있어 쓰기 쉽지 않은 재료다. 재료의 향과 맛을 마시기 좋게 조화롭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특히 ‘벗이랑’ 중 버찌로 만든 건 붉은색을 내는 홍국균을 접종한 쌀인 홍국쌀을 함께 써 예쁜 분홍색을 냈다. 도수가 있는 편인데도 부드러우며 질감은 걸쭉하다. 마시면 적당히 달고 균형감이 좋다.
“대전을 대표하는 술을 빚고 싶었어요. ‘벗이랑’은 대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형상화한 술이죠. 대전 청정지에서 버찌를 채취해 만들어요.”
석이원주조의 술은 모두 삼양주다. 삼양주란 술을 세번 빚었다는 의미다. 고두밥을 쪄서 술을 빚고, 덧술로 고두밥을 첨가한다. 발효한 술은 옹기에 두고 저온숙성한다. 한가지 술이 완성되는 데는 대략 100일 정도 걸린다. 그야말로 정성껏 빚은 술이다. 최근에는 정수 장치를 보완해 술맛을 더 좋게 했다. 입에 넣으면 샘물 같고 맛은 감미로운 술을 만들고 싶어서다.
이 대표의 다음 목표는 자가 누룩을 빚는 것이다. 진정한 전통주를 빚으려면 석이원주조만의 누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에서 자가 누룩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은 손꼽힌다. 누룩과 관련된 연구도 함께 할 예정이다. 올가을쯤 누룩을 만들기 시작해 자가 누룩 술은 내년 무렵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역 문화재와 양조장을 연계한 관광상품을 연구·개발하는 등 우리 술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갈 계획이다.
“우리 전통주는 그 맛이나 가치에 비해 폄하돼 있습니다. 우리 몸에 약이 되는 좋은 술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국산 농산물, 우리 술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어요.”
대전=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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