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나의 아지트

관리자 2023. 7. 1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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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물소리와 물 내음에서 나를 듣고, 나의 냄새를 맡는다.

내가 만들고, 내가 닦고 치우고, 내가 그 속에서 빛나고 있다.

시간과 여유, 이건 내가 만들기 나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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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친구와 만든 비밀본부
나만의 공간이라 행복한 장소
힘들때면 기댈 공간이 꼭 필요
자신을 돌아볼 여유 가지려면
안주하고 싶은 곳을 만들어야
아지트가 늘수록 삶 풍요해져

장마철이다. 내 아지트가 궁금하다. 물살에 쓸려 내려간 건 아닌지. 내가 앉던 자리는 무사한지. 저녁 때면 생각나던 그곳. 노을이 부를 때마다 달려가던 그곳. 마음이 온통 그곳으로 향한다. 저 멀리서 강 내음이 올라오는 것 같다. 마음속에서 나의 아지트가 살아난다. 한강. 더 정확히는 잠실대교 밑 나의 아지트. 그곳에서 난 이랬다.

노을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온 세상이 다 노을스럽다. 하늘도, 물 색깔도 심지어 건물들도 노을로 물든다. 여기에 청아한 한강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덩달아 맑은 물 내음이 폐부를 파고든다. 노을 속에서 나를 본다. 물소리와 물 내음에서 나를 듣고, 나의 냄새를 맡는다. 나의 아지트에서 나와 대화한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주제도 없다. 멍하니 나 자신을 보려 애쓴다. 그러다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내가 보인다. 나를 빛나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렴풋이 보인다.

‘아지트. 우리말로 비밀본부.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만든 비밀 장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나만의 공간. 남들과 공유도 하지만 나에게 특별한 곳. 그래서 자주 찾는 곳. 멍 때리기 좋고,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 나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 힐링할 수 있는 곳.’ 아지트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아지트에서는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 함몰된 나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나를 찾게 한다. 나의 존재를 더듬을 수 있다. 아지트에서는 나에 대해 집중할 수 있다. 흘러가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나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아지트가 몇개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찾아보니 꽤 있는 것 같다. 집 앞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 동네 도서관 1층, 집 근처 산 개울 귀퉁이, 뒷산 작은 언덕 등.

집안에도 아지트가 있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아지트가 변한다. 저녁에는 앞 베란다 테이블, 야심한 밤에는 서재의 창가, 잠자리에 들 시간에는 침대. 이렇게 따지고 보니 참 많다. 아침엔 커피머신 앞, 점심 땐 씽크대, 한낮엔 세탁기 옆. 커피를 마시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할 때 그리고 밤공기를 마실 때 나를 보고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집안 곳곳이 나의 아지트다.

누구나 이런 공간은 다 있다. 그런데 잘 모른다. 그저 습관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간이 소중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진 공간, 그래서 건성으로 대한다.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냥 주어진 곳은 없다.

내가 만들고, 내가 닦고 치우고, 내가 그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런데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돌아볼 여유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여유, 이건 내가 만들기 나름인데 말이다.

살다보면 기댈 공간이 필요하다.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찾아가고 싶은 공간이 있다. 또 안주하고 싶은 일상의 장소가 있다. 적극적으로 만들고 찾아보자.

세상 어떤 곳이든 내 아지트를 만들어보자. 그래서 세상을 품에 안아보자. 이곳에서 오감을 열고 세상을 품자. 어느 스님 말씀처럼 세상에 내 것이 없지만, 내 것 아닌 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온 세상이 다 내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게 다 공짜다. 아지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 삶은 풍요로워진다.

어? 저기도 공짜네. 아지트로 만들어볼까?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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