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떠난지 15년… 집은 여전히 후배 작가들에 내주고 있다
소설가 김희선과 찾은 원주 박경리뮤지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대하소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1926~2008)가 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집 베란다엔 손바닥 크기 쪽문이 있었다. 생전에 그가 들고양이에게 음식을 내어주던 곳. 작은 생명을 위한 은그릇과 화로는 비어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도 이곳에 고양이 ‘시내’가 와서 몸을 뉘었다고 한다.
박경리는 지난 5월 15주기를 맞았다. 타계 직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시 ‘옛날의 그 집’)고 노래했던 작가의 집에 그 자신을 위한 물건은 거의 없었다. 지난 11일 원주에 사는 소설가 김희선(51)과 함께 그 집을 찾았다. 박경리의 외손자 김세희(42) 토지문화관장이 맞이했다. 그는 2019년 어머니 김영주 전(前)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원주에 정착했다. 그 무렵부터 아버지 김지하 시인을 작년 작고할 때까지 모시고 살며,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화관장을 맡았다.
함께 거실에 들어서자, 작가가 텃밭에서 기른 고추와 나물 등을 손질하던 대청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박경리는 ‘사치스럽다’며 고사했지만, 건축가의 고집으로 지은 공간. 결국엔 후배 작가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줄 수 있어서 그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장소가 됐다. 거실 중앙에 화려한 컵도 눈에 들어왔다. 김 관장은 “예쁜 것은 손님에게 내어주던 거다. 할머니는 저런 투박한 컵을 썼다”며 주방을 가리켰다. 단조로운 무늬의 컵과 그릇, 차가 들어있던 플라스틱 통 뒤로 얼룩진 벽지가 보였다.
김 소설가는 “박경리 선생님 작품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고난 속에서도 결국엔 삶을 긍정하는 정신이 보이는데, 그 점이 가장 마음을 끈다”며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은 의지와 작가정신을 존경한다”고 했다. 또 “선생님을 뵙기 위해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린 적이 있었다. 집에 오다니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김 관장은 “할머니는 이 집에 오시면서 건강이 악화돼 글을 많이 쓰진 못하셨다. 대신 ‘토지’를 수정하며 후배 작가들을 돌보는 데에 신경을 쓰셨다”고 했다.
‘박경리뮤지엄’은 ‘사람 박경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2년 전 토지문화관 내부에 마련한 전시 공간이다. 작가 사후 공개되지 않았던 마지막 집이 그때부터 2전시실로 탈바꿈했다. 작가의 육필 원고와 물건 등을 통해 삶의 궤적을 되짚는 1전시실, 작품 활동을 모은 3전시실로 구성됐다. 소설 ‘토지’, 시 ‘옛날의 그 집’ 등 작품 다수의 육필 원고엔 작가가 고쳐 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작품을 쓸 때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김 관장은 고인이 생전에 쓰던 목장갑, 호미 등이 전시된 공간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뵀던 분들은 이런 모습이 더 익숙할 겁니다. 글 쓸 때는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 고립됐지만, 텃밭에 계실 때만큼은 달랐어요.” 집 안방 TV를 보면서는 “어머니와 할머니는 항상 TV를 켠 채로 주무셨다. 고요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적막하셨던 것 같다”고 했다.
토지문화관은 이곳 박경리 동상에 새겨진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생전 발표한 에세이 제목)라는 말을 구현했다. 대회의실, 집필실, 창작실 등을 갖춰 2001년부터 지금까지 약 950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통영 출신인 박경리는 1980년 원주로 이사 와 단구동 집(현재 박경리문학공원)에서 현대소설사의 거대한 산맥이라 불리는 ‘토지’의 4·5부를 집필해 완간했다. 이후 1998년 이곳 매지리로 집을 옮겼다. 토지문화관은 그 이듬해 작가가 사재를 털어 세운 것이다. 전국에 박경리를 기리는 시설은 총 4개다. 박경리문학관(하동), 박경리기념관(통영), 박경리문학공원(원주)은 지자체, 토지문화관은 박경리가 설립한 비영리법인 토지문화재단이 운영한다.
김 관장은 “제 대(代)에서 박경리 문학이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한 고민이 깊다. 후배 작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하도록 하는 할머니의 뜻을 지키되, 박경리 문학이 지닌 가치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박경리뮤지엄’을 열었다”고 했다. 대하소설 ‘토지’를 10년 만에 최근 재출간하기도 했다.
“따르르릉.” 토지문화재단 사무실에서 김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별안간 경쾌한 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작가들이 다 먹었으니, 밥 먹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이곳에선 외부인과 접촉을 줄여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가와 재단 직원 등의 식사 시간을 분리하고 있다. 정성 가득하게 차린 매 끼니와 자연의 정취에 이끌려 재방문한 작가가 다수다. 이날도 닭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삼계탕, 텃밭에서 나왔을 고추 등이 접시를 가득 채웠다.
음식 내음과 세찬 빗소리에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작가 20여 명이 각자 방에서 머무르는 공간에 들어서니, 현관문을 열어둔 채 작품에 몰두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토지’의 서문)고 했던 박경리의 마음을 헤아리려던 것일까. 빗소리가 한동안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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