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거쳐 전쟁으로 죽음도 목격… 그러니 아름다움은 그리지 못한다
[지금 이 명화] [7] 황용엽 ‘인간’
나는 남들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살아온 삶이 그렇다.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다녔고, 해방 후 김일성 치하의 폐쇄된 공산사회에서 혹독한 이념 교육을 받았다. 6·25 전쟁 때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상하는 상황을 겪었고, 길에서 사람을 잡아 죽이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만 하는 극한 순간. 그때의 좌절과 공포가 그림의 밑천이 됐다.
내 고향은 평양시 신양리 184-11. 평양미술대 2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다.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남쪽으로 내려왔다. 국군에 입대해 참전했다가 오른쪽 다리에 총을 맞고 제대했다. 지금도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1.5㎝ 짧다. 삶은 전쟁이었다. 홍익대 미대에 편입했고, 돈벌이를 위해 미군부대에 가서 초상화를 그리다 영창에도 갔다. 그렇게 많은 죽음과 고통을 보면서 인간의 가치가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가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체 같은 걸 어떻게 그리겠는가. 글로 쓰지 못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형상화해온 것이다.
평생 ‘인간’을 그렸다. 누군가 “왜 인간만 그리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릴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리는 것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알 수 없는, 왜소하고 가냘프고 일그러진 사람의 비틀거리는 모습을 그린다. 내가 왜 일그러진 인간을 그리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 그림이 나온 시기가 전쟁과 이산 등 모든 것이 희망 없는 암울한 시대였다는 점이다.
소마미술관 특별전에 나온 ‘인간’(1982년)은 말라 비틀어진 인간을 추상화 형태로 그린 그림이다. 이 해의 출품작들은 내 그림의 전체적 흐름과 다르다. 1979년 말부터 1980년 중반까지 나는 유럽 여행에 앞서 파리에 머물렀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 방송은 군인들의 진압 장면을 생생하게 방송했다. 광주의 참상을 TV로 보면서 화가로서 인간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화면에 군중의 격렬한 움직임을 표현했다. 날카로운 선과 강렬한 색채를 더한 그림이다.
요즘도 나는 매일 아침 화실에 올라와서 하루 7~8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한국 근현대 작가 25명 중 내가 유일한 생존 작가라고 한다. 살아서, 이렇게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작품 보려면…]
▲서울 소마미술관 8월 27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학생 9000원
▲문의: (02)724-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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