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연꽃 향기처럼… 관광지인 듯 아닌 듯 자극 없는 여행지 [자박자박 소읍탐방]
나주는 오래전 ‘작은 한양’으로 불렀다. 고려 왕조부터 조선 왕조까지 약 1,000년 동안 목(牧)의 지위를 유지한 행정의 중심이었다.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 '전라도'가 됐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현재도 금성관을 중심으로 나주목관아 부속 건물과 향교가 남아 있고, 이를 중심으로 한 읍성이 도심을 둘러싸고 있다. 그 기반은 넓고 풍요로운 들판이었다. 시내 남쪽 영산강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나무망치로 잘게 다듬은 듯한 평평한 대지에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듬성듬성 솟았고 그 언저리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물길 따라 들길 따라 이동하다 보면 그윽하고 은은한 역사의 자취가 남아 있다. 관광지인 듯 아닌 듯 자극 없는 여행지다.
연꽃 향기처럼 그윽한 나주의 들과 강
나주평야에는 넓은 들판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한 저수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한여름 가볼 만한 곳으로 공산면과 동강면 경계에 위치한 우습제가 있다. 약 43만m²에 이르는 저수지 표면이 홍련으로 가득 덮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다란 대궁에 넓은 초록 연잎이 바람에 일렁거린다. 그 사이에 듬성듬성 피어난 붉은 연꽃이 은은한 향기를 발산한다. 연꽃은 6월 말부터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해 8월까지 시차를 두며 피고 지기를 이어간다. 화르르 피었다 한꺼번에 지는 여느 꽃 군락과 다르다. 연잎은 쌈밥으로, 연근은 반찬으로, 꽃잎은 차로 우리니 쓰임새도 살뜰하다. 진흙탕 펄에서 연분홍 꽃을 피워 흔히 불가를 상징하는 꽃으로 치지만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다.
우습제는 약 300년 전에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43년이라고 한다. 저수지 인근 주민들은 ‘소소리 방죽’이라 불렀다. 소를 제방에 풀어 놓고 꼴을 먹이던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도로변에 주차장을 갖췄고 약 500m 길이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방문객이 많지 않은 편이다. 주차장에서 저수지 위로 바로 덱 산책로가 연결된다. 가장자리는 갈대가 무성하고 안쪽은 온통 연밭이다. 도깨비처럼 장맛비가 퍼부어도 물기를 훌훌 털어낸 연잎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 대신 비를 몰고 온 바람이 연잎을 뒤집어 놓는다. 초록의 바다에 파도처럼 허옇게 연잎 물결이 일렁거린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시야는 끝 간 데까지 이어진다. 초록 바람이 눅눅한 습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짧은 덱 산책로가 끝나면 제방으로 연결된다. 능소화 넝쿨로 터널을 조성해 놓았지만 아직 생장이 부족하다. 가장자리 쇠기둥을 간신히 잡은 능소화가 대롱대롱 바람에 나부낀다. 일부 구간에는 해바라기와 백일홍을 심었다. 역시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소박하다.
우습제에서 약 6km 떨어진 동강면 영산강변 낮은 언덕에 느러지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크게 휘어 도는 영산강이 무안 느러지마을을 감싸고 돈다. 그 형상이 한반도 지형과 비슷해 영월 동강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강폭이 500~600m에 이르러 경관은 훨씬 웅장하다. 그럼에도 주변 산세는 한없이 부드러워 바라보는 마음도 넓은 강폭만큼이나 여유롭고 느긋하다.
전망대 입구에는 ‘곡강, 최부 길’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최부는 조선 성종 때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근무하던 인물이다. 도망한 노비나 부역 기피자를 붙잡아 주인이나 본래 고장으로 돌려보내던 일을 담당하는 관리다. 제주에서 근무하던 최부는 1488년 부친상을 당해 고향 나주로 급히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일행 43명과 함께 중국에 표류한다. 지금의 저장성 닝보 부근에 표착한 일행은 대륙을 종단해 148일 만에 무사히 신의주로 귀국했다. 성종은 그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라 명을 내렸고 그렇게 탄생한 책이 표해록이다.
전망대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짧은 산책로에는 소나무 그늘 아래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최부 길’은 그가 태어난 인근 성지마을에서 시작한다고 표기돼 있는데, 정작 마을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주민들도 잘 모르는 마을 뒤편 밭 한가운데에 유허비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영산강 하류는 후삼국시대 왕건이 견훤을 크게 무찌른 곳이기도 하다. 느러지전망대 인근 대전2리 마을 어귀에 ‘식전바위’ 표식과 함께 소공원이 꾸며져 있다. 왕건에 패배한 견훤이 쫓기면서 이른 새벽 아침식사를 한 바위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영산강 물길을 이용해 목포 장터를 오가던 주민들이 요기를 하며 쉬어가던 곳이기도 하다. 강 건너 무안 몽탄면은 왕건이 꿈을 꾸고 강을 건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느러지전망대에서 상류 죽산보까지는 크게 휘어진 강줄기만큼이나 영산강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한때 지역의 대표 관광지였던 나주영상테마파크도 이 구간에 있는데 지난달 문을 닫았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신축과 함께 재단장하여 만나겠습니다’라는 기약 없는 안내문만 붙어 있다.
시골 들판 한가운데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선 이유
우습제에서 약 10km 떨어진 반남면 들판에 국립나주박물관이 있다. 도심이 아닌 전원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선 건 이곳이 처음이다. 느림과 휴식의 여유를 제공하는 역사공원을 겸하고 있다.
이 시골에 국립박물관이 세워진 이유는 분명하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등지에 약 4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통칭해 반남고분군이다. 반남은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을 중심으로 고대 문화가 꽃을 피운 곳이다. 반남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발굴돼 세상에 알려진 삼한시대 유적이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독널(옹관)과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당시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발굴된 유물은 일본으로 옮기기 위해 서울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광복으로 해외로 반출되는 신세를 면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던 유물은 현재 국립나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은 기획전시실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널을 전시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어른 키를 훌쩍 넘는 2개로 분리된 대형 옹기가 눈길을 잡는다. 거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모형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 유물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크기에 놀라고 진품이어서 다시 한번 놀란다. 반남고분군 유물 외에 전남지역에서 출토된 다양한 독널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독널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다. 초기에는 지면을 약간 파고 독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봉분을 쌓았으나 후대에는 봉분을 쌓은 후 정상부에 독널을 안치해 봉분의 규모도 커졌다고 한다. 독널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데 이곳 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주박물관의 또 다른 자랑은 관람객 눈높이에 맞춘 체험이다. 영상체험관에서는 매시 정각 바닥과 3개 벽면을 이용해 고분 조성과 부장품 제작 과정을 환상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영상이 끝나면 금동신발 속 물고기와 용 문양을 활용한 영상체험이 이어진다. 바닥의 그림을 밟으면 자동 반응하는 방식이다.
지하 어린이박물관은 박물관 직업체험장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유적 발굴에서부터 보관 처리 전시 교육까지 문화재를 지키는 ‘박물관 사람들’의 업무를 소개한다. 통유리로 보이는 개방형 수장고에서 직원들이 유물을 복원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다.
박물관 건너편으로 나가면 덕산리와 신촌리 고분군으로 이어진다. 들길을 따라 10여 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경북 고령이나 경남 창녕의 가야고분에 비하면 밀집도가 떨어진다. 주변도 말끔히 정비된 상태가 아니라 농지와 마을이 혼재돼 있다. 옥수수밭을 지나면 커다란 고분이 등장하고 논두렁과 마을숲을 통과하면 다시 봉분과 마주하는 식이다. 고대인의 영혼이 현재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인근 반남면 소재지로 들어서면 ‘마한농협’ 간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이 옛 마한 땅의 중심이라는 은근한 자랑이다. 행정복지센터 옆길로 약 500m를 오르면 자미산성이다. 성벽은 흙과 돌로 축조되었고 둘레는 660m에 이른다는데 문외한의 눈으로는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대신 일대를 두루 관찰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짐작할 만하다. 높이 98m로 산이랄 것도 없지만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인다. 북쪽과 서쪽으로 멀리 영산강 물길이 꿈틀거리고, 남쪽으로는 월출산이 우람하다. 그 사이 광활하게 펼쳐진 나주평야가 넉넉하고도 평온하다.
나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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