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겪은 美, 연방재난청 독립시켜 컨트롤 타워로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7. 1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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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방재 대책 어떻게 바꿨나
2005년 허리케인에 ‘수중 도시’ 된 美뉴올리언스 - 2005년 9월 2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시내 주택들이 물에 잠겨 있다. 나흘 전 시간당 최대 풍속 209㎞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하면서 뉴올리언스는 물에 잠긴 ‘수중(水中) 도시’가 됐다. 허리케인 피해로 18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AP 연합뉴스

폭우·폭염·홍수 등 극단적 기상 사태로 세계 각국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늘어나면서 선진국들은 수년 전부터 재난 방지책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가 증가함에 따라 방재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다.

미국은 2005년 루이지애나주(州) 뉴올리언스를 강타해 1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허리케인(대폭풍) 카트리나로 국가적 재난 사태를 겪은 뒤 방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국토안보부 산하에 편입됐던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카트리나 사태 이후 독립 기관이 돼 연방 전부 차원의 방재 컨트롤 타워가 됐다.

이에 따라 FEMA는 독자적으로 방재 대책을 구축하는 한편, 청장은 백악관 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이 FEMA의 지원이 필요한 ‘재난 선포’를 승인하기 위한 요건과 절차도 최소화했다. FEMA는 자연 재해 예방과 재난 발생 후 재건을 모두 수행하는 조직이다. 올해 예산이 295달러(37조2000억원)로 전년보다 7억달러 늘었다. 조 바이든 정부가 제안한 예산을 미 하원이 이례적으로 늘린 결과다.

FEMA는 지방정부 및 지역 사회가 ‘우리 지역의 방재를 강화해 달라’고 요청할 경우 심사를 통해 연방 예산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지역의 위험을 가장 잘 파악하는 주체인 지역 커뮤니티와 지방정부에 실무를 맡기되, 중앙정부가 재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FEMA는 지난해 알래스카의 한 인디언 원주민이 ‘수해 예방을 위해 댐을 높여 달라’고 한 요청을 받아들였고, 토네이도가 빈번한 오클라호마주엔 토네이도 발생 시 피할 수 있는 튼튼한 대피소 마련 예산을 지원했다. FEMA는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재해가 발생한 후 대응하기보다 미리 준비해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라고 홈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16일 일본 혼슈 동북부인 도호쿠 지방의 아키타현에서 한 공무원이 폭우로 잠긴 지하차도 앞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날 도쿄와 규슈를 비롯한 지역에서 폭염으로 인해 열사병 경계경보가 발령됐으나, 동북부에서는 하루 동안 300㎜가 넘는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AFP 연합뉴스

주 정부의 권한과 책임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기상 예보를 활용해 과도할 정도로 대피 명령 및 경고를 하는 주들이 많다. 2010년 눈폭풍 늑장 대처로 곤욕을 치른 뉴욕주와 뉴욕시는 이듬해부터 폭설이나 태풍 예보가 있을 경우 일찌감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위험 지역에 있는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하고 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 발생 시 앤드루 쿠오모 당시 뉴욕 주지사는 허리케인이 700㎞ 밖에 있을 때 이미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멀쩡한 날씨에 비행기 이착륙과 지하철 운행을 금지시켰고 결과적으로 허리케인의 실제 위력은 허무하리만큼 약해져 ‘오버’라는 비난도 일었지만 이후에도 ‘과할 정도의 대처’ 기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와 애리조나주 피닉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최근 빈발하는 폭염과 관련한 대응과 대책 수립을 총괄하는 폭염최고책임자(Chief Heat Officer)를 새로 임명해 기민하게 대처하도록 하고 있다.

지진 등 자연 재해가 많은 일본은 최근 기존 치수 시스템으로 통제가 어려울 정도의 극단적 폭우가 잇따르면서 방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다. 우선 지방정부 수장이 직접 방재 컨트롤 타워를 적극 지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잘못된 피난 권고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 대응하라’는 내각의 방침에 따라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지난 15~16일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서 48시간 동안 최대 400㎜ 강수량을 기록한 폭우가 쏟아졌을 때 호쓰미 모토무 시장이 지휘봉을 잡고 재해대책본부를 이끈 것이 대표적이다. 호쓰미 시장은 16일 새벽에 ‘레벨5′ 재해 명령을 선제적으로 발동해 지역 주민들이 대비하도록 했다. 레벨5는 피난 명령(레벨4)보다도 한 단계 위의 명령으로 해당 지역의 각자가 생존하기 위한 방안을 실행하라는 강력한 경고에 해당한다. 역대급 폭우에도 이 지역에선 차 안에 갇힌 남성 1명이 사망한 것 외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일본은 기후 변동의 영향에 따른 미래 강수량 증가를 고려해 치수 계획도 다시 세우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백서(2022년판)는 “지구온난화가 지속하는 한, 일본에선 하루 강수량 200㎜ 이상이 되는 날짜와 단시간 폭우 발생 빈도가 전국 평균으로 20세기 말보다 2배 많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훗카이도 북부가 ‘평균기온이 2도 오를 경우 제방 정비, 유수지 마련 등 하천 범람 대책을 추가로 세워야 한다’는 대책을 마련하는 식으로 지방정부별 대처 방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유럽은 2021년 7월 독일 서부와 벨기에, 네덜란드 일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를 계기로 새로운 재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당시 서유럽에 하루 만에 150㎜가 쏟아지면서 240명이 사망했다. 치수 시설이 잘 갖춰진 서유럽에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대형 재난이었고 각국 정부가 기존 방재 매뉴얼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대홍수 대응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난 관리 공무원들 간 소통 및 협업 미비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지자체 차원에서 재난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전문가와 공무원이 공조하는 팀을 상시 준비하고,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에 기반한 비상 계획을 철저히 수립하기로 했다. 또 재난 상황 발생 시 이들을 즉각 현장에 투입 가능하도록 여러 시나리오를 짜고 이에 맞춘 훈련도 반복적으로 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이상 고온으로 인한 폭염, 건조한 날씨의 지속에 따른 산불 확산, 기록적 폭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 등 기존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재난이 발생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 훈련을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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