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발로 뛴 리투아니아 대사

김나영 기자 2023. 7.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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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슬레파비추스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10.11/대통령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렸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이 최근 폐막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관련 뉴스에 여러 차례 리투아니아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많은 이에겐 이름조차 생소할 이 나라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리차르다스 슬레파비추스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주한 리투아니아 대사관

반년 전 조선일보 국제부 자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 너머로 대사관 관계자는 자국으로의 출장 취재를 제안했다. 출장에 앞서 미팅을 위해 대사관을 찾았다. 대사관은 별도의 부지와 건물 없이 중구의 한 호텔에 세들어 있었다. 방 두 칸에 탕비실과 옷장,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간은 대사관이라기보단 소규모 스타트업에 가까웠다. 문 앞에 작게 걸린 문패만이 그곳이 한 나라의 대사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리차르다스 슬레파비추스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5월 최초의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로 임명돼 서울에 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대사라는 직책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태도였다. 엄격한 업무 절차를 요하는 큰 나라 대사관과 달리, 그와는 서양의 채팅 어플인 ‘왓츠앱’으로 소통했다. 회사에서 미팅이 있던 날 그는 수행원도 관용차도 없이 혼자 걸어서 찾아왔다. 그는 방한하는 자국 장관 인터뷰를 요청하는 등 작은 일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 덕분에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달리 보였다. 고위 공직자라면 피울 법한 거드름 한 번 없이 사소한 업무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그는 차라리 세일즈맨에 가까워 보였다. 단지 판매하는 것이 상품이 아닌 국가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를 보며 낯선 타국에서 주재하며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달픈 임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발로 뛰는 그에게서 그 나라의 희망을 보기도 했다.

문득 초창기 한국 외교관들을 떠올렸다. 선배들에게 들었던 그들의 활약. 73년 전 6·25전쟁 당시 미 워싱턴 DC에 있던 장면 주미 대사는 급히 뉴욕으로 향했다. 당시 한국은 유엔 가입국도 아니었지만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의 동의하에 발언권을 얻었고, 그는 “우리의 생존은 유엔에 달렸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이역만리에서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대표하면서 그들이 겪었을 산전수전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은 어느새 당당히 경제·문화 대국이 됐다. 주로 조명받는 건 경제 역군 기업인, K팝 아이돌들이지만 어쩌면 묵묵히 저 먼 타지에서 일한 이들이 있기에 오늘날의 위상이 가능한 것일 테다. 리투아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나토 정상회의라는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건 국민 한 명 한 명의 노력과 땀이 모인 덕분이다. 타국 외교관으로부터 그 나라의 희망을 보았듯,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망을 만들고 있을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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