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47] 제주해녀의 여름 보양식 깅이죽
“제주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죽이야. 죽은 실패가 없어.”
아내가 며칠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헤아려보니 보말죽, 깅이죽, 전복죽 등 해안마을 제주의 죽을 대표하는 것은 모두 맛보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은 깅이죽이란다.
깅이는 게를 말하는 제주어로 ‘깅이’, ‘겡이’라고도 한다. 게 중에서 조간대에 사는 작은 게를 말한다. 특정 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방게, 풀게, 바위게 등 모래와 자갈이 섞인 곳이나 자갈만 모여 있는 갯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게들이다. 특히 방게를 깅이죽을 쑤는 데 많이 사용한다. 겨울철을 제외하고 어느 때나 깅이를 잡을 수 있지만 제일 맛이 좋을 때는 망종 무렵이다. 제일 바쁜 철이다. 해서 제주에서는 “깅인 보리 비지 말잰 알 밴다”는 말이 있다. 바쁜 절기를 알고 게가 알을 밴다는 말이다. 깅이가 많을 때는 콩을 볶을 때 깅이를 놔서 반찬으로 하기도 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나오다가, 삼촌들이 파도에 무너진 원담(물고기를 잡는 돌그물, 독살의 제주 방언)을 보수하다 깅이 몇 마리 주웠다. 일삼아 잡는 것이 아니라 재미 삼아 잡아 반찬으로 만든 것이 끼니까지 잇게 된 것이다. 깅이죽을 쑤는 데는 깅이 외에 쌀 한 주먹과 소금 약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제주에서는 쌀도 소금도 귀했지만 ‘바당(바다의 제주방언)’에 깅이가 지천이었다. 장난삼아 잡지만 훌륭한 찬과 끼니로 변신하는 것이 깅이다. 그래서 해녀들은 깅이는 “족아도 아주망”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게는 작아도, 제 몫을 단단히 한다는 의미다.
갯가에 흔한 것이 깅이지만 작고 날렵해 잡는 것도 쉽지 않다. 또 깨끗하게 씻고 해감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살아 있는 깅이를 돌확에 찧어 껍질을 가라앉히고 웃물만 떠 쌀 한 주먹을 넣고 죽을 쑤었다. 깅이는 식재료 이전에 뭍에서 내려오는 유기물을 섭취하는 바다 청소부였다. 또 호주와 시베리아를 오가는 철새들이 탈진 직전의 한반도 길목에서 허기를 달래는 귀한 존재였다. 최근 깅이 서식지가 해양오염과 난개발, 여행객들의 무분별한 체험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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