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3] 명예로운 ‘불멸의 초대장’
“일단 불멸의 배에 오르면 영원히 내려갈 수가 없어요. 이건 공포예요. 공포라고요. 내가 죽어 널브러져 있을 때, 나는 보았어요. 내 시신 옆에 쪼그리고 앉은 마누라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조리 끄적거렸고, 그 뒤에서 아들 놈도 뭔가 써 갈기고 있더군요. 친구들은 나에 대해 들은 온갖 뒷공론과 중상을 해댔고 수백 명의 저널리스트도 마이크를 들고 앞다투어 몰려들었지요.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그 얘기들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발전시켜 수많은 논문과 책으로 펴냈답니다”
-밀란 쿤데라 ‘불멸’ 중에서
정치인은 말로 매혹하고 뜻으로 산을 옮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목적이 있어도 정치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눈에 훅, 귀에 쏙, 마음을 움직이는 구호가 필수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어지럽던 국론을 모았다. ‘하면 된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으로 국민의 공감을 끌어낸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정치인은 입으로 현혹하고 혓바닥으로 싸운다. 큰 사람을 적으로 설정하고 호통치면 실제보다 커 보이는 착시 효과를 얻는다. 그래서 일부 정치인은 두 대통령에게 독재자, 친일파, 원조 적폐라는 오명을 씌우고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왔다며 저항과 투쟁 이미지를 키워왔다. 그들의 무덤 위에 민주화라는 깃발을 꽂고 마음껏 침을 뱉으며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소설 속 헤밍웨이는 불멸의 세계에서 괴테를 만나 불평한다. 사람들이 작품으로 기억해주지 않고 살아생전에 부린 허풍을 비판하거나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까지 꾸며 거짓으로 떠벌린다고 억울해한다. 괴테는 말한다. “그것이 불멸인 걸 어쩌겠소. 불멸은 영원한 소송이라오. 하지만 죽은 뒤 뭘 어쩔 수 있겠소.”
영생이나 후대에 길이 남을 영광을 바라며 많은 사람이 불멸을 꿈꾼다. 하지만 변론할 수 없는 사후 악명도 불멸의 일부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국가보훈부가 이승만대통령기념관을 건립한다. 이장호 감독은 두 대통령의 나라 사랑을 바로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을 제작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선물해준 분들께 보내는 명예로운 불멸의 초대장이 고맙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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