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쓰레기가 비행기를 띄웁니다, 믿기시나요”

美 재생에너지 기업 ‘펄크럼’ 르포… 사막서 폐기물을 ‘항공유’로 제작

지난 13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 리노시. 드넓은 사막 한복판에 세워진 재생에너지 기업 펄크럼의 생활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바나나 껍질, 과자 포장지, 음료수 캔 같은 쓰레기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쉴 새 없이 운반되고 있었다. 공장 안은 쓰레기를 3㎝ 이하 조각으로 잘게 분쇄하는 굉음으로 시끄러웠다. 짐 스톤사이퍼 펄크럼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믿기지 않겠지만, 이 악취 나는 쓰레기들은 우리 기술을 거쳐 비행기를 날게 해주는 항공유로 변신한다”고 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이 총 8000만 달러(약 1015억원)를 투자한 펄크럼은 최근 항공업계의 화두인 ‘지속 가능 항공연료(SAF)’ 분야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승용차·버스와 달리 배터리로 비행을 할 수 없는 항공기들은 SAF를 기존 석유 기반의 항공유에 섞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줄인다. 지난 4월엔 유럽연합(EU)이 역내 27국 공항에서 항공기에 급유할 때 SAF를 반드시 섞도록 하는 규제까지 실행했다. SAF 시장이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으며 활황인 이유다.

13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펄크럼의 합성원유 생산 시설 시에라 공장에서 짐 스톤사이퍼 펄크럼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이 분쇄 및 건조 처리가 된 쓰레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쓰레기들은 펄크럼의 기술로 항공유의 원료인 합성원유로 가공된다. /오로라 특파원

◇쓰레기의 변신은 무죄

펄크럼의 생활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차로 15분쯤 떨어져 있는 합성원유 생산 시설 ‘시에라 공장’. 2만4000평 규모의 부지에 지어진 10층 건물 높이 정제 시설은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고, 굴뚝에선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1층에는 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운반해온 분쇄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악취는 나지 않았다. 손으로 만지면 바삭거릴 정도로 건조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펄크럼은 분쇄된 쓰레기에 산소와 증기를 주입해 분해 과정을 가속시켜 합성가스를 얻는다. 그 가스를 다시 고온·고압 상태에서 촉매와 반응시키면 원유와 화학적으로 유사한 합성원유가 생산된다. 쓰레기를 건조시켜 정육면체 모양의 조각으로 만든 쓰레기 큐브가 합성원유로 바뀔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펄크럼은 현재 한 해 50만톤의 쓰레기로 26만 배럴의 합성원유를 만들고 있다.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비행기로 180회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다. 회사는 미국과 영국 등 10여 곳에 신규 공장 설립을 추진하며 합성원유 생산량을 연 1000만 배럴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시에라 공장에서 만난 에릭 프라이어 펄크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부터 합성원유 실제 판매에 성공했고 앞으로 1년 내 회사가 수익을 내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펄크럼은 이곳에서 생산한 합성원유 전량을 미 정유사 마라톤에 판매하고 있다. 마라톤에서 후처리를 거쳐 생산된 항공유는 미국 유나이티드, 일본항공(JAL),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기에 실제로 사용된다.

프라이어 CEO는 “(시에라 공장은)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분수령(watershed)이자,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이 공장에서 항공유를 생산할 경우, 원유를 시추하고 정제해 같은 양의 항공유를 만들때보다 탄소 배출을 80% 줄일 수 있다. 매립지로 직행했을 쓰레기가 재활용되며 쓰레기 총량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 릭 바라자 펄크럼 운영담당 부사장은 “쓰레기 선별 후 약 5%의 재활용 쓰레기와 15%의 매립용 쓰레기가 나오는데, 이를 제외하면 반입된 쓰레기의 80%를 항공유로 재탄생시키는 셈”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한국에서는 실현 어려운 사업

펄크럼 투자사인 SK이노베이션 역시 마라톤처럼 이 회사의 합성원유를 SAF로 만드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국내에선 아직 실행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항공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어, 폐기물에서 얻은 합성원유를 활용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럽과 미국은 다가올 SAF 시대를 대비해 보조금과 세제 지원 등으로 펄크럼 같은 회사를 적극 양성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런 변화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