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나흘 만에 1억명, 선택만으로 500조… 우리도 팬덤 경제 이끌 CEO를 갖고 싶다
엔비디아 젠슨황·구글천재 허사비스·MS 나델라도 팬덤 CEO
우리는 언론노출 없으면 성공이라 여겨… 낡은 세계관 좀 바꾸자
올해 7월 전 세계 소셜미디어(SNS)를 가장 뜨겁게 달군 뉴스는 아마도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UFC 케이지에서 한판 붙자고 설전을 벌인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사건의 발단은 메타가 새롭게 출시하는 스레드 서비스가 트위터를 대체할 거라는 저커버그의 야심 찬 발언에 머스크가 조롱하는 트윗을 날리며 시작됐다. SNS를 달군 둘의 설전은 결국 ‘말로만 하지 말고 UFC에서 정식으로 한판 붙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UFC 회장까지 나서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투가 될 것이라 부추겼다. 미국 폭스TV에서는 연일 누가 더 잘 싸울지 분석하는 방송을 내보내는 등 세계 최고 기업 CEO들의 치기 어린 싸움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렇듯 가벼운 미국 재계 총수들의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한 그들의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뼛속까지 디지털 문명의 방식대로 사는 거다.
1971년생인 일론 머스크가 1984년생인 마크 저커버그에 비해 13살 형이다. 머스크는 그 유명한 페이팔 창업자이기도 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2001년부터 스페이스엑스, 테슬라, 뉴럴링크, 오픈에이아이 등 세계적 이슈를 만든 기업들을 잇달아 창업했다. 저커버그는 하버드 대학을 다닐 때 만들었던 데이팅 서비스 앱을 기반으로 2004년 페이스북을 창업했으니까 디지털 문명의 원조이자 창조자라 할 만하다. 디지털 기업 최고의 권좌에도 저커버그가 먼저 등극했고 세계 최고 부자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페이스북은 서비스가 노화된 반면 테슬라는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며 기업 순위도 뒤집혔다. 거기다가 머스크가 60조원을 투자해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둘의 신경전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1100조원을 넘었고 메타도 1000조원을 넘겨 바짝 추격 중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추락하던 메타를 살려준 것이 바로 스레드라는 새로운 서비스고 그걸 광고해준 것이 머스크라는 점이다.
스레드는 각종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출시 하루 만에 3000만명 가입, 나흘 만에 1억명을 돌파했다. 1억명 돌파에 틱톡이 9개월, 챗GPT가 2개월 걸린 걸 생각하면 놀라운 속도다. 이제 트위터 가입자 2억3000만명을 따라잡기 위해 전진 중이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진입한 건 머스크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우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후 채택한 정책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이 대거 옮겨왔고 무엇보다 ‘머스크-저커버그 UFC 대결’이 엄청난 관심과 광고 효과를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둘의 SNS 전투는 거의 10조원 가치의 광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광고 하나 없이, 기자회견 하나 없이, 달랑 말싸움 하나로 1억 고객을 낚아채고 기업가치 200조를 끌어올렸다. 대기업이라면 유명 인기 배우를 고용해서 TV채널마다 광고로 도배를 하고 수백명의 언론사 기자를 초청해 신제품 발표 기자회견을 하는 게 상식인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기가 차는 디지털 문명 시대 글로벌 톱 기업들의 신경영 기법이다. 심지어 둘은 아직 한판 붙지도 않았다.
디지털 문명 시대의 소비 특징은 팬덤 경제다. 기업의 가치는 팬덤의 크기와 강도에 비례한다고 할 만하다. 굳건히 세계 1위를 기록 중인 애플은 스티브 잡스에 이어 팀 쿡이 여전히 강력한 팬덤을 잘 관리하고 있다. 세계 2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도 최근 오픈에이아이 지분을 인수하고 챗GPT를 MS의 모든 설루션에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3200조원을 뛰어넘었다. 그 선택만으로 500조원 이상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4위 구글의 시가총액도 2000조원을 넘나드는데 생성형 AI 바드가 호평을 받으면서 떨어졌던 주가가 회복되고 있다. 그걸 해낸 것도 구글의 천재로 SNS에서 이름을 얻고 있는 제프 딘과 허사비스다. 세계 5위인 아마존도 아마존웹서비스에 AI 도입을 강화한다고 발표하며 주가 방어에 노력 중이다. 그러고 보니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SNS 빅스타다. 젠슨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는 그야말로 폭주 중이다. 시총 1400조를 뛰어넘으며 5위 아마존을 바짝 추격하는 중이다. 제조 기반 반도체 기업인데도 최근 AI 붐을 제대로 탄 셈이다. 젠슨 황은 유명한 SNS 스타다. 그도 그럴 것이 진정한 흙수저 출신에다 게임에 적합한 GPU를 만들겠다고 사업을 일으켰으니 MZ세대에게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그의 가죽재킷도 이미 엔비디아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 7위가 테슬라니까 1000조가 넘는 기업의 CEO들은 모두 디지털 문명 시대의 팬덤 경영인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을 돌아보자. 일단 코스피 지수는 코로나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에는 투자 자본이 쏟아진 반면 우리 기업들에는 시큰둥하다. 기업 CEO들에 관한 뉴스를 보면 주로 정치인들에게 불려가 혼나거나 법정에 불려다니느라 분주하다. 글로벌 팬덤은 고사하고 국내 팬덤조차 상상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CEO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 여긴다. 특히 코로나 이후 대박난 플랫폼 기업들은 몸사리기에 급급하다. 잘되는 기업 경영자 불러다 혼쭐내는 게 정치인 인기의 비결이라고 믿는 사회, 사농공상 과거 문명에 매달려 사는 사회에 투자할 자본도 기업도 없다. 투자 없고 사업 없는 사회에는 미래도 없다. 챗GPT 등장 이후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 기준의 전환은 요원하다. 머스크, 저커버그에 이어 샘 올트먼, 오스틴 러셀 등 줄줄이 신문명을 이끄는 수퍼 히어로 CEO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우리 젊은 세대가 열광할 CEO 우리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기업이 미래의 보배다. 제발 낡은 세계관 좀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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