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처럼 깨진 호수, 달 바꿔 다는 사람…상상의 세계를 ‘찰칵’
- 독특함으로 동화 같은 장면 연출
- 직접 수천 장 찍어 리터칭 작업
- 자연 파괴 등 해석은 감상자 몫
평화롭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운 남자의 표정이 어둡다. 하늘이 거울처럼 비치는 맑은 호수는 진짜 거울처럼 깨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두 쪽이 났다. 이미 깨진 호수 바닥 메마른 땅엔 폐사된 물고기가 널브러져 있다. 작품명 임팩트(Impact).
비현실적인 이 장면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에 가하는 인간(문명)의 충격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사진가 에릭 요한슨(Erik Johansson)의 사진전 ‘메이크 빌리브(Make Believe)’를 부산 남구 부산문화회관에서 볼 수 있다.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주목받는 그의 별명은 ‘상상을 찍는 작가’. 서울, 대구에 이어 부산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어른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을 위한 ‘상상의 놀이터’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은 유럽의 자연을 배경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 동화 같은 장면을 연출해 낸다.
사람이 지구 깊은 곳에서 도르래로 태양을 끌어올리거나(Sunriser) 낮과 밤을 레버로 여닫는 모습(Daybreaker), 월력에 따라 밤하늘 달을 바꿔 걸어놓는(Fullmoom service) 장면은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람들을 동심으로 되돌려놓는다.
그의 작품이 특별한 건 단순한 디지털 기반의 합성 사진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의 모든 요소를 현실 세계에서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다. 수백, 수천 장 컷을 찍은 뒤 100~300개의 레이어를 사용해 리터칭하고 초현실적인 세상을 완성했다. 1년에 8개 정도의 작품밖에 제작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의 작업 과정은 ‘BTS’라고 이름 붙인 비하인드 더 씬(Behind the scene)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품 제작부터 섭외 촬영 리터치 작업까지 전과정을 엮어낸 영상으로, 궁금증을 풀어주는 한편 작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에릭 요한슨은 허공에 떠 있는 듯 기상천외한 상상을 시각화하지만, 그 메시지는 땅에 발붙인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메시지가 눈에 띈다. 바다 위 신비로운 섬마을을 담은 사진 ‘디맨드 앤 서플라이(Demand&Supply)’는 마을에 공급하기 위해 섬 기둥에서 굴착기들이 자원을 채굴하고 있지만, 과도한 채굴로 섬 기둥의 허리가 모래시계처럼 잘록해져 위태롭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브레이킹 업(Breaking up)’에선 북극의 빙상(氷床)이 깨지면서 그 위의 평온해 보이는 집도 두 동강 났다.
해석은 감상자에게 달려있다. 자연파괴에 관한 경고일 수도 있고,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가 심어놓은 암시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상상 속 세계로 빠져들면 된다. 작가는 “초현실적인 그림이나 사진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삶과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혼자만의 여행 ▷내가 보는 세상 ▷추억을 꺼내 본다 ▷나만의 공간 ▷미래의 일상 ▷올 뉴 에릭 등 6개 섹션에서 120여 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부산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3점과 인 모션(In Motion)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포토존도 흥미와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마지막 섹션에서 만난 신작 ‘Deadline(데드라인)’에선 제목처럼 마감에 쫓기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해수면이 낮아진 간조 바다에 놓인 책상 위 서류를 초조하게 살펴보고 있다. 만조 시간이 다가오면서 물은 발목 위까지 차올랐고, 눈앞에는 거대한 시계가 데드라인을 향해 째깍거린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처럼 영상으로 촬영한 인 모션 작업도 나란히 전시됐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책상 위,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쫓기는 일상에서도 차 한 잔의 여유 정도는 가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에릭 요한슨 작업의 매력은 디테일에 있다. 상상력이 펼쳐진 사진 속 작가가 심어놓은 메시지를 찾아보면 더 즐거운 감상이 될 것이다. 전시는 오는 10월 8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8000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9000원, 36개월 미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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