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말통령’ 백락

기자 2023. 7.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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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개통령’이 있다면 저 옛날에는 ‘말통령’이 있었다. 말은 지금의 자동차와 같아서 힘 있다는 이들은 천리마같이 세상에 몇 없을 말을 욕망하였다. 그렇다보니 말을 잘 감별하는 이는 전국적 명성을 얻기도 했다.

‘백락’은 그러한 말통령 중 대표적 인물이다. <전국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이가 말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사흘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는 백락에게 일당을 쳐줄 테니 자기 말을 한 번만 쳐다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백락은 그 말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백락이 쳐다보고 간 말이라는 소문이 났고 말 주인은 10배의 가격을 받고 팔았다. 백락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말해주는 일화다.

확실히 그는 남들은 못 보는 것을 보아내는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한번은 초나라 왕의 부탁을 받고 천리마를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다녔건만 구하지 못하던 참에 우연히 소금 수레를 끄는 삐쩍 마른 말과 마주쳤다. 한눈에 천리마임을 간파한 그는 그 말을 초나라 왕에게 보여주었다. 왕은 초라한 말의 외모에 크게 실망했지만 백락이 며칠간 제대로 먹이며 관리하자 천리마다운 늠름한 자태가 드러났다. 백락은 겉모습에 구애되지 않고 본질을 통찰해내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음이다.

단지 말만 잘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제자에겐 괜찮은 말을 감별하는 법을, 맘에 안 드는 제자에겐 천리마 감별법을 가르쳤다. 괜찮은 말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감별료도 자주 받았다. 반면 천리마는 드문드문 있다 보니 감별료를 뜸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시켜 천리마를 구해달라는 군주의 부탁을 거절하고는 땔나무를 하다 파는 이가 자기만큼 안목이 있다며 추천하기도 했다. 백락은 말만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 게다. 말만큼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른 사람의 역량을 잘 읽어낼 줄도 알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통령은 개를 개의 입장에서 잘 알아보고, 저 옛날 백락 같은 말통령은 말과 세상에 대하여 무척 밝았다. 그렇다면 ‘인(人)통령’, 그러니까 사람들의 대통령은 어떠한 덕목을 지녀야 마땅할까? 인통령이면서 인에 대해서도 모르고 세상 이치도 모른다면 과연 개통령이나 말통령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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