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권선동 은행나무

경기일보 2023. 7.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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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권선동의 세곡초등학교 앞 길가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 570년의 꺼칠한 고목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피트니스클럽에 간다. 너무 늙고 기력이 쇠한 이 나무는 문신처럼 강렬한 세월의 무늬가 있다. 나무의 밑동에서 위로 올라가며 꽈배기처럼 꿈틀대는 모습이 거대한 아나콘다 같은 느낌이다.

이 나무는 고려 말 한림학사 이고(李皐·1341~1420)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벼슬을 내려놓고 수원에 내려와 살면서 후진들에게 어질고 선하게 살라고 가르치며 자신의 집터에 심은 은행나무다. 집은 간 데없고 절간의 석탑처럼 나무만 덩그러니 서 있다. 이 나무는 내부에 공동(空洞)이 있고 가지 절단부와 줄기에 부패가 진행돼 비바람에 쓰러지거나 가지가 고사해 떨어질 염려가 있었다. 시에서는 보호수 생육환경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외과수술과 고사한 가지를 제거하는 한편 철제 지지대도 4개 설치했다. 나무의 가지들은 잘려 나갔으나 외형은 일부분 힘이 느껴진다. 칠월 초 모든 환경개선 작업이 완료돼 깨끗이 단장됐다.

오늘날 권선동은 이고 선생이 선하게 살라는 권선(勸善)의 의미에서 지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선하게 살자! 생이 일장춘몽이고 악해야 할 시간과 용서받을 시간이 없으므로. 이고 선생의 은행나무는 선하게 살라는 뜻을 받들어 삶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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