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업계, 對中 수출규제에 ‘반기’… “공급망 교란하고 中의 보복 확대 불러”
인텔-엔비디아 등 소속 단체 성명
업계 역풍에 바이든 부담 커질듯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일방적인 규제를 반복하는 것은 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공급망을 교란하며 중국의 지속적인 보복 확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가) 동맹국들과 완전히 조율됐는지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추가적인 규제를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발표한 데 이어 최근 낮은 사양의 AI 반도체로 수출 규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인텔과 퀄컴 등에 부여했던 화웨이에 대한 수출 승인 면허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SIA는 인텔과 IBM, 퀄컴, 엔비디아 등 미 반도체 업체는 물론이고 주요 글로벌 반도체 업체가 소속된 반도체 관련 최대 민간 단체다. SIA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반대 성명을 낸 것은 처음으로, 이는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이 추가 규제로 사실상 차단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SIA가 대중 수출 규제 강화를 공식 반대하고 나서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보다 적극적인 의견 제시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의 역풍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규제를 무기로 중국과 ‘반도체 전쟁’을 벌여온 바이든 행정부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 수출 규제를 늦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은 이날 인텔과 퀄컴, 엔비디아 등 미 반도체 업계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반도체 규제 등 중국 정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백악관 회동에서도 추가 수출 규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 반도체CEO들, 백악관 회동직전 “中시장 접근 허용해달라”
美 행정부가 우회수출도 차단하자
“광범위한 규제, 경쟁력 떨어뜨려”
반발 가시화에 규제 강도 조정 전망
“中내 韓업체엔 긍정적 영향” 관측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드라이브에 미국 반도체 업계가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가 규제 확대로 중국에 대한 우회 수출로 차단까지 나서면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중국이 ‘자원 무기화’로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에 중국의 보복을 부를 수 있는 추가적인 수출 규제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 백악관 회동 직전 “추가 규제 위험” 반기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고위급 관료들과 미 반도체 업계는 1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비공개 회동을 하고 대중 반도체 수출 추가 규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미국 안보·경제 사령탑들이 총출동했다. 업계에서는 인텔과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내 대표적인 반도체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리했다.
회동 직전 인텔과 퀄컴, 엔비디아 등이 속한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성명을 내고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 시장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일방적인 규제를 반복하는 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공급망을 교란하며 중국의 지속적인 보복 확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SIA의 회원사는 매출 기준으로 미 전체 반도체 산업의 99%를 차지한다. 미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해외 반도체 기업까지 포괄하는 단체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규제에 대해 ‘모호하고 광범위하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SIA는 지난해 10월 미 상무부가 반도체 수출 규제를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국가안보를 보장하려는 미국 정부의 목표를 이해한다”는 성명을 내며 사실상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옥죄기가 강화되면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엔비디아가 규제를 피해 성능을 낮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차단하고, 중국의 규제 우회로로 지목된 클라우드 서비스를 차단하는 조치까지 추진하자 미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피해 우려가 본격화된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최종 소비시장으로서 대체 불가능하다”며 반도체 수출 규제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 미중 소통 나선 美, 규제 조정 가능성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해 “미국의 국가안보와 동맹국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맞춤형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중 기술전쟁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 분야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디리스킹(derisking·탈위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가시화된 만큼 추가 수출 규제의 시기나 강도를 일부 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 등에 대한 미 기업의 ‘아웃바운드’ 투자 제한 행정명령을 이르면 8월 말 발표하되 시행은 내년 초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반도체 업계의 공개 반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유예 연장 등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간 성숙·낙후 공정을 장비 업그레이드를 통해 상위 공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SIA의 반발이 미 정부의 강력한 대중 제재 방침을 선회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면서도 “중국 시장의 중요성이 큰 만큼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중장기적인 대중 제재 완화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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