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일타쌍피’ 독수리의 포효 “오늘 메뉴는 왜가리 영계로구나!”

정지섭 기자 2023. 7. 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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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조로 유명한 흰머리수리, 왜가리 둥지 덮치는 장면 포착
’스위트홈’이 돼야 할 둥지, 포식자들 들끓는 잔혹한 사냥현장으로 전락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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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빛나는 머리색깔과 황금색깔로 빛나는 부리, 그리고 심장까지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눈빛…. 새들의 제왕 맹금류중에서도 유독 마성의 외모를 가진 녀석이 바로 흰머리수리입니다. 이 수려한 외모 덕분에 미국 국조로 지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 새는 알고보면 상당히 과대평가돼있기도 합니다. 생긴 건 분명히 수리 중에서 이글(eagle·살아있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부류)인데, 식습성을 보면 오히려 벌처(vulture·죽은 사체를 파먹는 부류)에 훨씬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썩어 문드러진 사체더미를 파헤치거나,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는 음식 찌꺼기를 탐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연어잡이 배들이 많은 알래스카 지역에 가면 사람들이 손질이 끝난 연어 찌꺼기를 던져주기를 기다리며 흰머리수리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대머리수리들처럼 사체나 음식쓰레기를 주로 먹는 흰머리수리가 모처럼 왜가리 둥지를 포획해 새끼 두 마리를 낚아채고 있다. '일타쌍피'라는 단어가 꼭 어울리는 상황이다. /Michael Whittaker. National Audubon Society

이런 흰머리수리가 오랜만에 이름값을 했어요. 미국 최대의 조류보호단체인 전미오듀본협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오듀본조류사진 경진대회의 올해 입선작 중 하나가 화제입니다. 오듀본협회는 수많은 새를 그렸던 전설적인 생태화가 존 오듀본(1758~1951)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단체인데, 해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담은 새의 생생한 모습들을 선별해 공개합니다. 이 중에 흰머리수리가 모처럼 킬러본능을 발휘한 장면이 포착됐어요. 우선 사진부터 보실까요?

위 사진을 확대한 장면.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왜가리 새끼 세 마리는 공격에서 살아나 목숨을 부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 전미 오듀본 협회 조류 생태사진 입선작 중 하나다. / Michael Whittaker. National Audubon Society

코네티컷주에서 마이클 휘태커라는 사진가가 출품한 작품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야생 출사를 나갔고, 왜가리 둥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답니다. 둥지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을 때 흰머리수리가 왜가리 둥지를 급습하는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보니 이런 장면이 담겨있었죠. 폭격 후 날아오른 흰머리수리는 발끝에 각각 왜가리 새끼 한마리씩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눈깜짝할사이에 벌어진 일타쌍피 사냥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어미가 물어다 게워주던 물고기나 개구리, 혹은 새끼 오리 따위의 먹잇감을 받아먹기 여념이 없던 왜가리 두마리가 순식간에 흰머리수리의 식사거리가 됐습니다. 발끝의 묵직함으로 성취감에 빠져있을 흰머리수리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음홧홧홧! 오늘 메뉴는 싱싱한 왜가리 영계, 그것도 두 마리로구나!”

부모새가 자리를 비운 새 둥지는 포식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터다. 뱀이 갓 부화한 새끼를 삼켜버리기 직전의 모습. /IVM Reptile Story Youtube

이 솜털 보숭보숭한 어린 왜가리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변이 없다면 독수리 둥지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고통없이 세상을 하직하도록 숨통을 미리 끊어줄 만큼의 배려도 의지도 지능도 이 포식자 새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연약한 몸은 독수리 부리에 산채로 도륙당해 조각났을 것이고, 나부터 달라고 신경질적으로 입을 벌리는 새끼 독수리의 뱃속으로 삼켜졌겠죠.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은 누군가의 삶의 동력이 됩니다. 이 왜가리들도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늪지의 괴수가 돼서 어미와 아비들처럼 물고기부터 뱀, 새끼오리까지 닥치는대로 삼키는 사냥꾼이 됐겠지만, 지독히도 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배에서 태어난 다섯마리 중 두 마리가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면서 나머지 녀석들은 생존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둥지습격이 없다면 말이죠.

이 사진을 계기로 둥지 습격에 특화된 흰머리수리의 킬러 본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5년 전인 2016년 8월에도 비슷한 장면이 포착된 적이 있거든요. 이번에는 왜가리보다 더 공격적인 포식자인 물수리가 타깃이었습니다. 메인주의 호그 아일랜드에서 어미와 아비의 보살핌을 받으며 제법 어른새의 모습을 갖춰가던 새끼 물수리 세마리. 부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공격은 눈깜짝할새에 시작됐습니다. 안개로 가득찬 상공에서 벼락처럼 흰머리수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살기(殺氣)를 느낀 한마리는 재빠르게 날개를 퍼덕여 둥지를 피합니다. 그리고 둥지에 남아있던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순식간에 흰머리수리의 발톱에 낚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위에서 솟구치며 먹잇감을 채가는 장면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 어린 물수리는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깃털이 죄다 뽑히고 살점이 파헤쳐지며 흰머리수리 가족의 저녁상에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맹금류가 맹금류를 사냥하는 드문 장면이 포착됐죠.

이 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러 온 부모가 아니다. 남의 새끼를 먹어치우기 위해 들이닥친 날강도 포식자다. 먹고 먹히는 자연의 냉정한 섭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Around My Camera Youtube

이처럼 새들이 짝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시켜 정성껏 길러내는 소중한 생명의 공간인 둥지는, 한편으로는 포식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냥터입니다. 부모새들이 먹이를 구해오느라 둥지를 비웠을 때, 아직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고 눈도 뜨지 못한 어린 새끼들은 무방비상태에 놓입니다. 식은 죽 먹듯, 누워서 떡 먹듯, 넝쿨째 굴러온 사냥감을 먹어치우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 둥지에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극의 드라마가 쓰이고 있습니다. 우선 동영상 한 편 보실까요? 마음이 약하신 분은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이 동영상의 부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지저귐’이라고 해야할 것 같아요. 어미새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어린 새끼들의 둥지에 뱀이 들이닥쳤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아기새들의 지저귐이 몸뚱아리와 함께 꾸역꾸역 뱃속으로 사라집니다. 옆에서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는 아마도 눈앞에서 뻔히 당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어미새의 절망의 지저귐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 뱀도 먹고살기 위해 포식본능을 발휘하는 것일텐데요. 산채로 먹히는 새끼새들만큼이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모든 것을 잃고 난 어미새들의 모습입니다. 애지중지 기르던 새끼를 포식자 표범에게 강탈당한 코뿔새 부부의 허탈한 표정을 담은 다음 동영상처럼 말이죠.

오늘도 어느 둥지에서는 새들이 사랑의 결실인 알을 정성스럽게 품고 있을 것이며, 어느 둥지에서는 어린 새들이 부모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또 어느 둥지에서는 새끼들이 사냥당해 통째로 삼켜지거나, 뜯어먹히기 위해 깃털이 뽑히거나, 온몸이 조각조각나 포식자와 그 새끼들의 위장속으로 직행해 녹아들고 있을 겁니다. 탄생의 설렘과 약육강식의 냉정함이 공존하는 곳 바로 둥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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