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예수님 손바닥엔 두 종류의 못 자국이 있다”... 30년 전 개신교계 ‘어른’들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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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간된 ‘시대의 별, 그루터기의 삶’(도서출판 신앙세계)이란 책을 읽으며 계속 밑줄을 쳤습니다. 이 책은 월간 ‘신앙세계’가 그동안 인터뷰하거나 특집으로 다룬 크리스천 리더 32인의 이야기를 모은 것입니다. 한경직(1902~2000) 김재준(1901~1987) 목사님부터 주선애(1923~2022) 전 장신대 교수, 김옥라(1918~2021)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까지 지금은 별세한 분들의 이야기를 1983년부터 2020년까지 잡지에 실린 순서대로 정리한 책입니다. 책에는 ‘크리스천 리더’라고 적혀 있었지만 저는 ‘리더’ 보다는 ‘어른’이란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책에는 목회자도 다수 등장하지만 각각의 일터에서 삶과 신앙을 일치시키려 노력한 ‘크리스천 어른’들의 말씀이 울림이 컸습니다. 30~40년 전의 인터뷰도 있지만 지금 돌아봐도 새겨들을 말씀이 많았습니다. 인상 깊게 읽은 몇 대목을 소개합니다.
“밥 한 그릇에 쌀이 몇 알인지 알아?”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신조로 유명한 가난안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1909~1988) 장로의 말에는 현장에서 비롯된 힘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손바닥엔 두 종류의 못 자국이 있다고 말하지요. 그는 “성육신하신 예수는 이 땅에서 목수라는 노동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로마 병정이 박은 못 자국 말고도 목수 일을 하며 배긴 못 자국이 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나는 평생 비누는 세 번 이상 비빈 적이 없고, 치약도 2㎜ 이상 짜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자린고비 절약 정신’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지는 “모든 물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각자의 몫이 있는데 그 이상을 쓰는 것은 도적질”이라는 것이 본질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각자의 몫’이란 ‘무소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역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갖지 않는 것을 뜻했으니까요. 김 장로는 그런 맥락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남았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해석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두가 배불리 떡을 뗄 수 있었던 일이나 오병이어의 기적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아낄 줄 알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장로의 이야기는 “밥 한 그릇에 쌀알이 몇 알인지 아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얼핏 ‘라떼’를 이야기하는 ‘꼰대’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역시 이유를 알고나면 반성하게 됩니다. “밥 한 그릇이 쌀 5000알. 국민 4000만이 한 끼에 쌀 한 톨씩만 아껴도 8000명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800만이니 1000만이니 하는데, 성도들만이라도 이런 정신을 가진다면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 대부분이 해결되지 않겠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지금도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의 자성과 솔선수범을 촉구한 말씀이었지요.
종교인, 명예욕에서 자유로운가?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은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과 깊이 교유했지요. 그래서 김 의장이 천주교 신자인 줄 아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평양의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주기철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개신교인이었습니다. 주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한 분이지요. 김 의장은 잡지 ‘샘터’를 ‘두 기둥’ 위에 세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기둥, 또 하나는 과학의 기둥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바른 신앙에 입각한 바른 지식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는 ‘종교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종교인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 의장이 지적한 부분은 ‘명예욕’입니다. “범인(凡人)들이라면 몰라도 자신이 믿는 신과 영적 교류를 하면서 평생을 살겠다는 분들이 명예욕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를 가끔 대할 때가 있다”면서 “그러나 누가 뭐라든, 어떤 상황에서건 그분들만큼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초연하게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왜 교회는 다니는데 생활은 변하지 않나?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1914~2013) 풀무원 설립자는 공동체를 만들게 된 이유로 ‘왜 교회는 다니면서 생활은 변하지 않는지’가 안타까워서였다고 말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바로 그것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사람끼리 부딪치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싸우고 속이고,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 다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노작교육’입니다. 누구에게 구걸할 필요없이 그저 땀 흘려 일한 만큼의 먹을 것을 되돌려주는 땅의 정직함을 몸소 체득하게 함으로,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 삶을 이루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풀무원’이란 이름도 베드로전서 1장 말씀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하지요. 유기농 식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풀[草]’을 연상하기 쉽지만, ‘풀무’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풀무원’이란 이름의 뜻은 베드로전서 1장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는 말씀처럼 금이 풀무에 연단 될수록 더 단단해지듯 금보다 귀한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단 과정이 있음을 새기고, 자신의 순수한 땀으로 살 수 있도록 인간을 풀무질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뜻”이라고요.
모나미 볼펜에 적힌 153의 의미
송삼석(1928~2022) 모나미 회장의 아호는 ‘항소(恒笑)’인데, 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중 ‘항상 기뻐하라’에서 따왔답니다. 신앙을 생활로 실천하려 한 것이지요.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돈이 아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알고 게시는 분이 많겠지만 모나미 볼펜에 적힌 ‘153′의 비밀도 설명하지요.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고, 그 말씀을 따르자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153마리를 잡은 성경 말씀을 들며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의 심정으로 볼펜을 만들었다”고요.
누구를 가르친다? 나부터!
크리스천 어른들의 공통점은 누구를 가르치기 보다는 솔선수범하려는 태도입니다.
김재순 의장은 “저 자신도 신앙생활을 철저히 못하는데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혹을 받거나 어떤 결정 앞에 섰을 때는 ‘홀로 골방에서 기도합시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송삼석 회장도 이렇게 말하지요.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보다는 오히려 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네 삶에는 남들에게 어렵게 가르쳐야 할 복잡하고 심오한 진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진리는 늘 평범한 것들 속에 있는 것이며 그 평범한 진리만이라도 제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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