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복합재해의 시대… 우리는 최선을 다했나
형식적 지시·보여주기식 대책으로
‘예방하는 척’만 한 것은 아닌지…
국가 역량 총동원 재난 대비 시급
어릴 때 살던 고향 마을에는 산골짜기를 막은 제방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밑바닥이 보였다. 그곳에는 밭도 있고, 나무도 있었다. 제방 양옆으로는 잡목이 우거졌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내려가 술래잡기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비가 오면 달라졌다. 삽시간에 물이 찼다. 기억은 가물하지만 수심이 최소 7, 8m 정도는 된 듯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주택가로 물이 넘치는 것을 막아 놓은 인공 제방이든가, 아니면 비가 올 때마다 골짜기로 물이 넘치다 보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제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맞은 뒤 우리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변했나”를 자문했다. 전례없는 폭우와 기상재해를 겪고 있는 지금 또다시 우리 사회와 자신에게 “우리는 진정 최선을 다했나”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설마 하는 마음에 형식적인 지시와 보여주기식 대책, 안이한 대응으로 ‘예방하는 척’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지난해 여름 장마 당시 포항 지하주차장과 서울 신림동 반지하 침수 사태를 겪었다. 당시 태풍 ‘힌남노’가 상륙했을 때 포항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주민 7명이 사망했다. 인근 하천이 범람해 지하주차장을 덮친 것이다. 폭우에 주차했던 차를 빼러 갔던 아파트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서울 신림동 반지하 빌라 일가족 3명이 숨진 사건도 인근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하천 수위가 올라갔지만 미처 피하지 못해 발생했다.
정부는 적극적인 대비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안타깝게도 비극은 되풀이됐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판박이다. 쏟아지는 폭우에 인근 미호강이 범람했고, 지하차도로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사고가 난 궁평2지하차도는 길이 430m에 왕복 4차선 도로다. 평소 1분 정도이면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하차도 중심 부분이 50cm 정도 차올라야 교통통제를 한다고 하는데,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물로 2∼3분 만에 지하차도가 잠겼다.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생사기로의 상황에서 매뉴얼대로 대응한다는 것은 너무 한가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지하차도에 물이 차오른 것을 확인하고 관계 당국에 이를 전달하고, 또 이를 점검해 판단한 뒤 교통통제를 하는 매뉴얼대로의 프로세스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한양대학교 예상욱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14일자 세계일보 칼럼에서 우리는 기후위기에 따른 복합재해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100% 공감한다. 기상재해는 더욱 빈번해지고, 더욱 강력해지고. 더욱 광범위한 곳이 타격을 받게 됐다. 이미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장마로 경험한 ‘짧은 시간 미증유의 폭우’와 오송 지하차도의 침수, ‘예상하지 못한 기습적 산사태’와 예천 백석리 마을의 매몰이 이를 방증한다.
재난 대비와 점검,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통령 주재의 재정전략회의·비상경제장관회의·수출투자대책회의 등이 잇따라 열리고 앞다퉈 선제적 대응과 효과를 점검하고 후속대책을 강조하고 나선다. 기상재해도 다를 바 없다. 전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해 진정 최선을 다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
이우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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