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의행복줍기] 외할머니의 보석함

2023. 7. 1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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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는 나이 들수록 깔끔하고 단정해야 하며 포인트가 되는 브로치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멋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에 향기를 입히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멋쟁이 할머니, 음식 솜씨가 뛰어난 홍 선배는 비 오는 날이면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김치전이며 감자와 애호박을 넣은 수제비를 만들어 행복한 시간을 나눠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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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는 나이 들수록 깔끔하고 단정해야 하며 포인트가 되는 브로치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멋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에 향기를 입히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멋쟁이 할머니, 음식 솜씨가 뛰어난 홍 선배는 비 오는 날이면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김치전이며 감자와 애호박을 넣은 수제비를 만들어 행복한 시간을 나눠 준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시를 읊으며 감성까지 나이 먹는 것을 경계하는 낭만파 차 선배까지.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세 선배가 일 년에 두 번은 달라진다. 단정한 옷차림이 무너지고 고무줄 바지, 헐렁한 티셔츠 차림에 염색시기도 놓쳐 흰머리가 그대로 노출되는 이 선배는 피곤에 지쳐서 옷차림에 신경 쓸 여유도 기운도 없어 보인다. 홍 선배 역시 비 오는 날이 여러 차례 지나갔지만 아무 연락이 없다. 차 선배도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브라우닝 시 대신 이유식 만드는 법을 외운다. 바로 외국에 사는 딸의 가족이 방학을 맞이해서 온 식구가 친정 나들이를 할 때다. 머나먼 타국에서 친정엄마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육아를 해내야 하는 딸에게 달콤한 휴식을 선사하고, 직장생활에 지친 사위에게 영양식도 만들어 먹여야 하고, 그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손자손녀를 돌봐야 한다. 그러자니 시간도 모자라고 힘도 달린다.

전에는 평균 결혼연령이 25세 전후라 50대 젊은 할머니가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30세가 넘어서 결혼을 하기 때문에 70대 전후 할머니가 많다. 자기 몸도 건사하기 힘든 나이에 맞벌이하는 딸을 대신해서 육아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 선배가 어깨에 파스를 붙이며 말한다. “몸은 힘들지만 행복해. 웃을 일도 많아지고.”

내리사랑의 대표는 외할머니 사랑이다. 애틋하고 무조건이다. 나는 방학이면 늘 시골 사는 외할머니댁을 한 살 아래인 사촌동생과 방문했다. 원두막에서 방금 딴 참외 맛은 살랑이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여름을 충분히 느끼게 했고, 늦은 저녁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손자손녀를 위해 읍내 장을 보러간 사이 일이 터졌다. 외할머니댁 마루에 놓인 낡은 장식장 위에 놋쇠그릇으로 엿과 강냉이를 바꿔먹은 것이다. 뚜껑이 있는 국그릇 정도의 크기인 놋쇠그릇으로 제법 많은 엿과 강냉이를 받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장에서 돌아오셔서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셨다. 외할머니의 하얗게 질린 얼굴빛에 ‘뭔가 큰일을 저질렀구나’ 직감해서 두려웠다.

외할머니는 그 길로 달려 나가서 고물장사를 찾아서 돈을 지불하고 놋쇠그릇을 찾아왔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외할머니는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강아지들 엿하고 강냉이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하며 미소 지었다. 놋쇠그릇 안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건 할머니의 보석함이었다. 힘들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할아버지 사진을 꺼내 보시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시며 사시는 외할머니. 결코 요란하지 않으면서 힘이 되는 외할머니의 사랑. 그립고 또 그립다.

조연경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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