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54. 양구 전우사
양구읍 중1리 한자리서 45년 역사·전통
없는 게 없는 명실상부 지역 군인백화점
군청 선정 모범친절업소 9년 연속 선정
도장·오버로크 달인 막도장 30초면 뚝딱
계급장 테두리 ‘칼각’ 자세 나오는 군복
경기침체 속 부인·두 아들과 탄탄 경영
양구지역에서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지역대표 ‘군장점(軍裝店)’, 전우사는 양구읍 중1리 현 위치에 1980년 3월 10일 개업했다. 약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6평(20㎡)의 매장으로 출발해 76평(250㎡) 규모로 성장했다. 국방부 시계는 더디게 가도 초침·분침·시침 사이를 메우며 양구 전우사의 미싱 역시 잘도 돌아갔다. 전우사의 구성원들은 전우애 같은 끈끈한 가족애로 무장하고 친절과 배려를 모토로 100년 이상의 성장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 친절
허범구(70) 전우사 대표의 부친은 하리에서 4평(13㎡) 남짓한 규모로 침술원을 했다. 밤에 아기가 경기를 일으키면 부모가 업고 침술원으로 왔다. 수 많은 아기들이 침술원에서 살아났다. 밤낮 구분 없는 생활이었다.
부모님은 허 대표를 한의사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자다말고 일어나야 하는 생활’에 자신이 없었다. 1970년대는 콩 비지로 밥을 짓고, 멀건 시래기밥도 감지덕지로 여길 만큼 가난한 시절이었다. 누군가 “군장(軍裝) 일을 배울 거냐”고 물었다. 허 대표는 ‘기술’을 열심히 익혔다.
4년 넘게 서당에 다니며 체득한 한문이 밥벌이를 위한 커다란 무기가 됐다. 전우사 개업 이전에 허 대표는 현재 양구분식 자리에서 ‘명문당’이라는 명칭의 도장업을 3년 정도 했다. 인장 전문이었고 미싱을 한 대 갖다 놓고 명찰도 했다.
1980년 개업한 전우사는 ‘군장’을 주품목으로, 군장병들을 위한 품목과 사무용품, 체육용품, 컴퓨터 용품, 전기용품, 생활용품, 선풍기, 난로, 도장, 명찰, 코팅, 전자복사, 각종 잡화류 등을 취급하는 명실상부한 군인백화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개업 당시부터 훈련병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허 대표와 부인인 안정복 대표, 2명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전우사에 들어서면 ‘친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안정복 대표는 약 30년 전부터 현재까지 방문 손님에게 드링크를 대접하고 있다. 애써 찾아와준 것이 너무 고맙기 때문이다.
전우사는 코로나19 직전까지 군청에서 선정했던 ‘군장병이 뽑아준 모범친절업소’에 9년 연속 선정됐다.
전우사 매장에 물품 구입을 위해 방문한 한 육군 21사단 장교는 “인터넷 거래로 구할 수 없는 물품도 최대한 빠르게 구입해 주고 무척 친절해서 단골이 됐다”며 “군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 준다”고 칭찬했다.
# 달인
양구군 양구읍 중1리 전우사. 어려서 한문을 배운 허범구 대표는 ‘도장’과 ‘오바로크’의 달인이다. 세필·대필… 붓글씨를 연마한 덕분에 필체가 반듯했다. 도장을 파려면 글씨를 거꾸로 잘 써야 한다. 밤낮으로 연습을 했다. 연마의 효과가 나타나 1호부터 5호까지 칼을 들고 30초면 막도장 하나를 완성했다.
오바로크 미싱은 양발로 밟아 바느질을 하면서 한 손으로 원을 그리고 또다른 손을 직선으로 움직이며 따로 놀고 오른쪽 무릎으로 간격 조정을 한다. 역대급 난이도의 오바로크는 민무늬 야상의 팔 부분에서 사단마크 아랫부분에 다는 ‘빨간색 계급장’이었다. 작대기 하나하나를 붙여서 완성한다. 멋을 부리기 위해 계급장 테두리의 모양을 다이아몬드 형태로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 갈고 닦은 기술을 쏟아부어야 했다.
‘칼각’은 물론 계급장의 테두리까지 신경쓰는 군인들이 민무늬 군복을 입고 다니면 멋이 넘쳐흘렀다. 고생스러운 군생활을 잊게 할 만큼 ‘자세’ 나오는 군복이었다. 허범구 대표는 도장을 새기고 오바로크를 치면서 경조사 리본의 글씨를 도맡아 썼다. 마름질한 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실로 박음질하는 것을 일컫는 ‘오버로크(overlock)’의 일본식 발음인 ‘오바로크’는 군인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허 대표는 1978년 동방무술 유심권(합기도)에 입문해 2001년까지 23년간 수련하면서 공인 6단으로서 지역내 후배 양성을 위해 헌신했다. 양구문화원 이사로 10년간, 양구경찰서 방범자문위원으로 8년간 활동하며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무술 수련과 지역 봉사활동으로 바쁠 때 가게 운영은 부인인 안정복 대표가 도맡았다. 허 대표는 어려서 엄마의 젖 대신 밥물을 먹고 자라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몸이 약했다.
그래서 운동에 몰입했다. “술기(術技)를 지닌 자는 광자(者)의 칼처럼 위험하다”고 말하며 바른 몸가짐에 대해 강조했다.
매일 축구를 한다. 올해까지는 ‘56회’ 소속이고 내년부터 ‘실버팀’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80세까지 공을 차겠다”고 말했다.
# 성심
전우사는 허범구 대표와 그의 부인인 안정복(68) 대표, 직원으로서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일하고 있는 장남 허영훈(48), 차남 허영민(44) 씨 등이 합심해 운영하고 있다. 막내딸인 허다영(38) 씨는 군인가족으로 소령인 남편과 함께 타지에 거주하고 있다.
허 대표와 안 대표는 1975년 결혼해 2남1녀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인 김영미(48) 씨, 지역내 어린이집 원장인 송은주(44) 씨. 며느리 둘도 시부모와 성격이 잘 맞는다. 2남1녀가 낳은 손자·손녀 6명의 영특한 모습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사단 해체와 읍내 상경기 침체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두 아들을 중심으로 쌓아온 노하우와 처절한 자구노력을 더해 단단히 전우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전우사는 ‘만남의 광장’이다. 매장 바깥에 메모지를 꽂을 수 있는 공간을 갖춰 1993년 설치돼 2018년까지 활발하게 운영됐다. 메모지도 전우사에서 제공했다. 외출·외박 나온 군장병들이 소식을 주고 받으며 유용하게 활용했다. 안정복 대표가 1993년 대전엑스포 때 광장에 설치된 ‘만남의 광장’ 메모판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전우사에서 메모지를 안 꽂았으면 양구에서 군생활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표현은 널리 알려졌다.
허범구 대표가 최근 손을 놓겠다고 말했을 때 두 아들이 건강하게 역할을 좀 더 해달라고 진지하게 만류했다고 했다. 허 대표는 “최소한 5년 정도는 근면 성실을 실천하면서 더 일할 생각”이라며 “손·발·머리 품을 팔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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