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제대로 기다리는 방법 찾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2023. 7. 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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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세상살이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맛이 단맛보다는 쓴맛이라는 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버티는 일입니다. 버티는 힘은 인내심에서 나오는데 사전에 의하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입니다. 미국 정신분석가인 살만 악타르는 인내심이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내부의 마음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 분노와 억울함을 버리는 것,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지키는 것, 그리고 초조함과 조급함 없이 좋은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깊게 보려는 것은 인내심이 피분석자와 분석가 사이의 상호작용에도 아주 의미 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나 자신이 과연 그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일까. 여기서 그들이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인물입니다. 그들은 그냥 계속 기다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피분석자와 분석가의 관계는 이런저런 기법적인 과정을 떠나 홀로 기다리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같이 기다려준다는 것이 바탕입니다. 분석 과정에서 다른 사람 탓만 하던 사람이 자신의 책임도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삶을 소모하지 않게 되며, 절망감에서 벗어나고,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다면 큰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피분석자도, 분석가도 어려운 과정을 참고 견뎌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기다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를 지배하면 우울감에 빠집니다. 지난 일에 매여서 현재를 생산적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우울감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예를 들어 잃어버린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계속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물건이나 돈은 물론이고 관심, 사랑, 성공도 상실의 대상입니다. 지나간 길을 쳐다보며 힘들어하는 우울감과 달리, 불안은 갈 길에서 마주할 아직 모르는 것에 관한 막연한 느낌입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현재의 시점에서 근심하면서 삶의 조각을 버리는 겁니다.

정신분석의 중심에는 감정이 자리합니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카타르시스를 강조하면서 피분석자를 지배하고 있는 억압된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치료에 활용했습니다. 몸에 생기는 이런저런 질병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만 마음에 파도처럼 몰려오는 다양한 감정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들에는 감각의 요소, 움직임의 요소, 표출의 요소가 단어에 따라 골고루 포함돼 있습니다. 순서를 굳이 정해본다면 느낌, 감정, 정서, 정동일 겁니다. 느낌이나 감정은 일반적인 표현이고, 정서와 비슷하지만 가장 힘이 있는 표현인 정동(情動)은 ‘희로애락과 같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 진행 중인 사고 과정이 멎게 되거나 신체 변화가 뒤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라고 길게 정의되며 ‘충격’ ‘유발’ 같은 움직임이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하고 억울하다는 원통(冤痛)에는 폭발적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원통한 사람과 우울한 사람은 구별해야 합니다. 우울하면 자신의 탓을 하며 혼자 있으려 하지만 원통하면 남을 탓합니다. 자신이 불공정한 속임수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울한 사람은 자신을 해치려 하지만 원통한 사람은 남을 해치려 합니다. 원통한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분노를 타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길러냅니다. 원통함이 지나치면 자아의 왜곡이 일어나서 용서할 여유가 없어집니다.

인내심은 성숙함에서 비롯됩니다. 비록 인생이 쓴맛이라고 해도 쓴맛을 두려워하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경험도 인내해야 축적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재능보다는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지속하는 것도 인내의 결과입니다. 낯선 상대를 참고 기다려줘야 관계가 맺어지고 이어집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기다리려면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고, 과거에 믿음이 깨어졌던 쓰라린 경험을 했다면 어렵습니다. 인내심은 믿음이 기반인 관계에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낙관과 비관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성향이 기울지가 결정되는 겁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여전히 자신만의 ‘고도’를 기다리겠지만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것도 모두 허망할 겁니다. 정신분석으로 읽으면, 덮어놓고 기다린다면 만성적으로 미루는 것을 되풀이하는 일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학대합니다. 반면에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한다면 자기중심적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합니다. 제대로 기다리는 방법을 현명하게 찾아야 합니다. 분석가 역시 피분석자가 이렇게 저렇게 하는 이유를 탐색하고 이해해서 나눕니다. 기다림은 늘 피분석자의 무의식적 환상에 뿌리가 닿아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에 내게 다가올 삶을 헤아려 내다보는 과정에서 인내심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삶의 계획이나 노력이 실종된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삶 자체를 두려워하는 무조건적인 비관주의도 제대로 기다리는 방법이 아닐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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