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물리학자 꿈꾸다 와인에 빠져 ‘토론테스의 여왕’ 등극/아르헨 첫 여성와인메이커로 와인협회장 세차례 역임/세계와인의 변방이던 아르헨 와인 품질 대폭 끌어올려/G20 산하 W20 의장맡아 여권신장도 기여
아르헨티나 멘도사 최초·진보당 첫 여성 국회의원. 주요 20개국(G20) 산하 여성경제정상회의(W20)의장. 아르헨티나와인협회장 세 차례 역임. 아르헨티나 첫 여성 와인메이커. 저명 평론지 와인 애드버킷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와인메이커 10인. 드링크 비지니스지 선정 올해의 여성. 영국 국제와인평가대회(IWC) 평생 업적상 수상. 화이트 품종 토론테스의 여왕.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고 끝이 없다. 하지만 무임승차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무지의 시대, 그는 불굴의 의지로 편견을 깨고 과감하게 선을 넘었다. 수사나 발보(Susana Balbo·67)가 ‘아르헨티나 와인 혁명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는 어린 자식을 돌보듯, 지금도 매일 포도밭을 가꾼다. 섬세한 손길로 와인을 빚고 여성 인권 신장에도 발 벗고 나서는 수사나 발보. 몸집은 아주 작지만 그가 품은 이상은 안데스산맥처럼 높고 거대하다.
◆핵물리학자를 꿈꾸던 소녀 와인에 빠지다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달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발보씨는 어머니처럼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반긴다. 엄청난 경력 때문에 여장부 같은 우락부락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뜻밖이다. 이런 작은 몸에서 어떻게 아르헨티나와인협회장을 맡아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와인산업의 변방, 아르헨티나 와인의 품질 혁신을 이끈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을까. “우리 안에는 숨겨진 능력들이 놀랍도록 많아요. 하지만 능력이 발휘되기 전까지는 이를 잘 깨닫지 못한답니다. 아르헨티나 토착품종 토론테스의 품질 개선이 대표적이죠. 쓰고 산화된 느낌만 많던 와인을 신선하고 과일향이 뛰어난 스타일로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제 안의 감춰진 능력을 발견했고 결국 저를 세계적인 와인메이커 반열로 이끌었죠.”
토론테스는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도 평소 즐겨 마실 정도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이다. 아르헨티나 최북단 산지 살타에서 많이 재배한다. 달콤한 청포도와 복숭아향, 아카시아향이 도드라지지만 마셔보면 드라이한 반전 매력을 지녔고 산도가 뛰어나 음식과 매칭이 아주 잘된다. 덕분에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사랑받는 품종이 됐다. 하지만 양조기술이 낙후됐던 예전에는 품질이 매우 낮은 저렴한 와인에 불과했다. “맛과 향을 뽑아내는 양조과정에서 너무 오랜 시간(24시간) 포도 껍질을 담가뒀기 때문이에요. 즙을 짤 때도 강하게 압착을 해 떫은 탄닌이 과도하게 추출됐죠. 따라서 음식과 페어링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답니다.”
발보씨는 사과즙을 짤 때 사용하는 효소를 와인 양조과정에 적용해 저품질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했다. 효소를 같이 넣어주자 껍질의 성분들이 빨리 분해돼 포도 무게에 눌려 저절로 흘러나오는 ‘프리런 주스’가 보다 빠르게 추출됐다. 껍질과 접촉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쓴맛과 탄닌이 과도하지 않아 토론테스의 가장 큰 매력인 향긋한 꽃향기와 산뜻한 과일 풍미가 제대로 살아난 것이다. 반응은 엄청났다. 불티나게 해외에 팔렸고 팬아메리카항공은 퍼스트 클래스 와인으로 선택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재에도 등장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둬 지금도 아르헨티나 와인산업의 혁명을 이끈 사례로 꼽힌다.
그는 어떻게 와인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조부는 원래 이탈리아 출신으로 매일 와인을 마시는 가족문화가 있었어요. 아이들에게도 와인에 물을 섞어서 시음하게 했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와인 DNA가 녹아들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학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마치 신이 길을 정해준 것처럼 매우 운명적이었다. 사실 학창시절엔 수학, 물리, 화학을 좋아했고 핵물리학자가 꿈이었다. 이에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물리학으로 유명한 발세이로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는 1975년으로 아르헨티나 정권 쿠데타가 일어나기 직전이었고, 수많은 테러가 발생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했다. 이 때문에 부모는 고향인 멘도사를 떠나 다른 곳에서 공부하는 것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멘도사 후안아구스틴마짜대학교에 처음 설립된 양조학과에 진학했다.
◆아르헨티나 첫 여성 와인메이커가 되다
양조학과 38명 중 여성은 18명이었지만 최종 졸업생은 3명이고 여성은 발보씨가 유일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첫 번째 여성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와인메이커 자리는 구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와이너리에서 여성이 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고, 특히 여성 와인메이커는 전무했다. “연구소에서 와인을 분석하는 일 정도밖에 없다 보니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내야 했어요. 그러다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죠. 해발고도 3000m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와인산지인 살타의 카파야트마을에 있는 미셸 토리노에서 와인메이커 자리 제의가 들어왔답니다.”
지원자 중 여성은 발보씨가 유일했지만 무려 8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아르헨티나 첫 번째 여성 와인메이커가 돼 남성의 전유물이던 와인업계 ‘유리천장’을 깨뜨린 순간이다. 하지만 실력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카파야트 인구는 5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은 마을이었어요. 전기가 오전 6시에 들어오고 오후 9시에 꺼질 정도로 세상과는 단절된 오지였답니다. 양조기계가 고장나도 고칠 사람이 없어서 제 손으로 직접 고쳐야 했죠. 더구나 마을 사람들은 잉카의 후예인 살타지역 원주민들이었기에 여성차별도 극심했죠. 와이너리의 유일한 여성이라 늘 감시당하는 실험실에 있는 기분이었답니다. 이에 와인메이커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성과를 보여줘야 했어요. 와이너리 오너가 카파야트 대표 품종인 토론테스로 보다 나은 와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8년 동안 쉬지 않고 죽어라 일했답니다. 제대로 된 토론테스를 만들어냈지만 동료는 ‘여성스러운 와인이라 시장에서 실패할 쓸모없는 와인’이라며 폄훼하던 순간이 떠오르는군요.” 동료의 예상과 달리 그의 토론테스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토론테스의 여왕’에 올랐다. 오지에 파묻혀 살다 보니 자신이 유명해진 사실조차도 몇 년 뒤에나 알았단다.
◆사업 실패와 와인 컨설턴트로 새 삶
토론테스의 여왕이 됐지만 열정을 바친 첫 직장을 떠나야 했다. 1년에 300% 달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급여 가치는 곤두박질쳤고 심지어 1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미 가정을 꾸려 아이들까지 있는 마당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1991년 직접 전 재산을 쏟아부어 작은 와이너리를 구매했다. “남편과 나는 아르헨티나 전역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방문해 와인을 팔았답니다. 그러나 잘될 것 같던 와인사업은 사기를 당해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2만5000병을 주문한 구매자가 지불한 수표가 가짜였죠. 세상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어요. 하늘은 무너져내렸고 남편은 떠났으며 모든 것을 잃었답니다.”
그래도 신은 그의 열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토론테스의 여왕’이란 타이틀이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이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 세계 와이너리를 돌며 양조를 돕는 와인 컨설턴트로 새 삶을 시작했다. 프랑스 1등급 와인과 미국 나파밸리 와인이 경쟁한 유명한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프랑스를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미국 스텍스 립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와이너리 반피와 마두라 그룹, 프랑스 랭슈바쥐의 와인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42년 동안 남반구과 북반구를 오가면서 모두 52차례나 포도 수확에 참여해 와인 컨설턴트로 명성을 떨쳤다. 발보씨는 1999년에 자신의 이름을 건 두 번째 와이너리 수사나 발보 와인즈를 설립해 아르헨티나 최고의 와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와인 생산량은 300만병으로 약 85%를 45개국에 수출한다.
◆와인협회장·W20 의장에 오르다
발보씨는 전 세계를 돌며 얻은 와인양조 기술과 설비를 아르헨티나로 들여와 전국 와이너리들에 공급하는 일에도 적극 나섰고, 그 결과 아르헨티나 와인 품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6∼2016년 세 차례나 아르헨티나와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 와인을 팔려고 해외시장에 나가 보니 와인숍에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섹션은 있는데 아르헨티나 섹션은 없더군요. ‘디 아더스’ 섹션에서도 가장 밑에 저렴한 와인들만 모아서 파는 박스에 대충 담겨 있어요. 얼굴이 붉어졌죠. 혼자서 아무리 와인을 수출하겠다고 발버둥쳐봐야 역부족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협회를 개혁하려고 발을 들였답니다.”
가장 처음 한 일은 아르헨티나 와인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아르헨티나 대표 레드 품종인 말벡을 전 세계에 알린 ‘세계 말벡 데이(4월17일)’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아르헨티나 와인 어워즈’도 창설해 와인 품질 개선을 이끌었다. 회장을 맡아 매년 90~180일을 해외에서 생활하며 시장을 방문, 직접 아르헨티나 와인판매에 나선 결과 와인 수출은 무려 30%나 증가했다.
이렇게 잘 나가면 보통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오는 법이다. 그도 2015년 멘도사 최초이자 진보당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인생에서 가장 실패한 선택이라고 돌아본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연간 인플레이션이 130%에 달할 정도로 변화가 심한데 정치인들은 더 이상하더군요. 원칙이 없고 부패도 심해요. 극심한 회의가 들더군요.” 이에 2017년 국회의원에서 사임하려 했는데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에서 산하 여성경제정상회의인 W20 의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W20은 각 국가 경제사회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초국가적 여성 지도자 네트워크. G20 개최 전 자체 회의를 열어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와 권리 증진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G20에 권고한다. 발보씨는 현재도 W20 아르헨티나 의장으로 활동하며 농촌지역 등 여성 인권신장을 위한 사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가족·직원 사랑에 진심을 담다
하이트진로를 통해 국내에도 수입되는 그의 와인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 기본급 레인지 크리오스(Crios)는 자녀란 뜻. 레이블을 보면 큰 손바닥 안에 작은 손바닥, 그 안에 더 작은 손바닥이 그려져 있다. 순서대로 발보, 아들 호세, 딸 안나의 손이다. 자세히 보면 모든 선이 연결된다. 대를 이어서 와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토론테스의 여왕답게 크리오스 토론테스는 상큼한 라임의 시트러스로 시작해 패션푸르츠와 리치 등 잘 익은 과일향으로 이어지고 크고 햐얀 꽃같은 부케가 피어 오른다. 산도는 생동감이 넘쳐 음식을 부르고 입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매우 부드럽고 우아향이 길게 이어진다. 죽은 효모와 3개월 숙성하는 쉬르리(Surless)를 통해 풍미를 끌어 올렸다. 토렌테스의 고향 카파야트와 우코밸리의 포도를 절반씩 섞어 최고의 아르헨티나 최고의 토론테스를 완성했다. 발보씨가 예전에 카파야트 와이너리에서 일할때 심었던 포도나무 묘목을 우코밸리에 옮겨 심은 만큼 고향은 모두 카파야트인 셈이다. 2020 빈티지가 제임스 서클링 91점, 로버트 파커 90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와인산지는 최북단 살타(Salta)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카타마르카(Catamarca), 라 리오하(La Rioja) , 산 후안(San Juan), 멘도자(Mendoza), 네우켄(Neuquen), 리오 네그로(Rio Negro)로 이어진다. 그중 멘도자가 핵심이다. 아르헨티나 와인 전체 생산량의 80%가 멘도자에서 생산되고 수출 와인의 95% 멘도자 와인이다. 해발 고도가 높지만 평야지대가 많아 대규모로 와인 생산 가능하다. 멘도자의 연중 강수량은 220mm이고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포도가 천천히 익어간다.
멘도자 세부 산지는 크게 세곳이다.
북부 멘도자에선 루한 데 쿠요(Lujan de Cuyo), 마이푸(Maipo)가 중요 생산지다. 특히 해발 고도 900∼1100m인 루한 데 쿠요는 아르헨티나 최초로 생산지통제규정인 DOC를 받은 곳이다. 아르헨티나의 빼어난 말벡 와인들은 바로 이곳에서 생산된다. 중부 멘도자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중요한 최고의 와인산지가 몰려있는데 바로 우코 밸리(Uco Valley)다. 해발 고도 1000∼1450m로 멘도자에서 가장 높은 와인산지다. 우코밸리안에는 ‘아르헨티나의 나파밸리’로 꼽히는 구알타야리(Gualtallary)를 비롯, 로스 차카에스(Los Chacayes), 비스타 플로레스(Vista Flores), 아그렐로(Agrelo), 알타미라(Altamira) 등 유니크한 5개의 좋은 떼루아가 따로 존재한다.
크리오스 카베르네 소비뇽과 말벡은 우코밸리의 뛰어난 빈야드 5곳의 포도를 섞어 만든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잘 익은 자두, 검붉은 체리, 라즈 베리, 블루 베리로 시작해 검은 후추 등 향신료향이 따라온다. 무엇보다 탄닌의 질감이 매우 부드럽다. 크리오스 말벡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붉은 체리 등 과일향과 제비꽃, 허브의 아로마가 잘 어우러지고 오크 풍미는 과하지 않고 미묘하게 녹아있다. 말벡 품종의 특징을 순수하게 잘 살렸다.
뛰어난 말벡 와인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발보씨는 말벡에선 다양한 향기가 나는데 제비꽃 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다. “기본적으로 좋은 말벡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때는 제비꽃 향이 강하게 나느냐 안나느냐를 봅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명확하게 제비꽃 향이 아니라 초록색 허브 느낌이 난다고 적혀있다면 이는 기본적으로는 잘 만든 말벡은 아니랍니다. 로즈마리처럼 특징적인 향이 나야하는데 초록색 풀향이 좀 난다면 품질이 떨어지는 말벡 와인이에요. 프리미엄 말벡이 되려면 바이올렛 노트가 굉장히 중요하죠.”
전세계에선 말벡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훨씬 인지도가 높고 더 잘 팔린다. 아르헨티나에선 왜 말벡이 대표 레드 품종으로 자리 잡았을까. 포도나무가 자라는 특성때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가지가 자꾸 옆으로 뻗어나간다. 아르헨티나는 와인산업 초기 농기구가 없어서 말을 타고 포도밭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는데 말 다리에 가지가 계속 걸렸다. 반면 말벡은 키가 크게 키울 수가 있어서 말을 타고도 일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프랑스 말벡과는 달리 훨씬 더 알맹이도 작고 껍질도 부드러워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와인이 빚어졌다. 그래서 와인산업 초기에 포도 재배자들이 말벡을 많이 심게됐다.
벤 마르코 시리즈는 유명한 와인메이커 에드 바르도 델 포폴로(Edgardo Del Popolo)의 손을 거쳐 태어나는 와인이다. 2022년 영국의 와인 평론가이자 마스터 오브 와인(MW) 팀 앳킨(Tim Atkin)이 ’올해의 포도재배자’로 선정했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나다. 발보씨는 2008년부터 아르헨티나와인협회에서 함께 일한 포폴로의 양조 솜씨에 반해 5년을 기다려 그를 와인메이커로 영입했다.
벤 마르코 라인은 떼루아에 집중하는 와인이다. 벤 마르코 말벡(Ben Marco Marbec) 우코밸리의 뛰어난 5개 포도밭중 로스 차카예스 말벡 100%로 빚는다. 말벡의 특징인 제비꽃향이 아주 잘 살아있고 레드체리와 다크체리 등 과일향과 잘 어우러진다. 모래와 암석이 많은 토양에서 자란 말벡이라 생기발랄한 산도가 입안을 꽉 채우고 부드러운 탄닌이 긴 피니시를 지녔다. 두번 정도 사용한 프렌치 오크에서 11개월 숙성해 오크향의 밸런스가 아주 좋다.
벤 마르코 신 리미테스 구알타야리 말벡(Ben Marco Sin Limites Gualtallary Marbec)은 우코밸리에서 최고의 포도밭으로 꼽히는 쿠알타야리 말벡으로만 만든다. 쿠알타야리에 좋은 포도가 생산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와 비슷한 석회암 지역이라 포도에서 미네랄 노트가 잘 느껴지고 우아한 스타일의 와인이 빚어진다. 특히 포도밭 주변에 바이올렛, 제비꽃과 로즈마리, 타임 등 야생허브가 많이 자라 신 리미테스 구알타야리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허브향이 매력적으로 발산된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생산자들은 더 서늘한 지역을 개발하는 추세다. 구알타야리는 고도가 높으면서도 포도를 키우기 굉장히 좋은 떼루아를 지내 요즘 생산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
벤 마르코 익스프레시보(Ben Marco Expresivo)도 구알타야리 포도로만 빚는데 말벡에 카베르네 프랑이 15% 블렌딩되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구조감과 풍미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려고 카베르네 프랑을 섞었다.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향, 제비꽃, 검은후추향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야생효모만 사용하고 프렌치 오크(뉴오크 70%)에서 14개월 숙성한다. 제임스 서클링 96점(2020빈), 팀 엣킨스 94점(2019빈)을 받았고 2016년 제임스 서클링 톱 100에 2014 빈티지가 선정됐다.
노소트로스(Nosotros)는 매년 최고의 싱글빈야드 말벡으로만 한 해에 단 1만병만 생산하는 플래그십 와인이다. 노소트로스는 ‘우리’란 뜻. 와이너리 직원들을 가족처럼 존중한다는 진심이 잘 느껴진다. 노소트로소는 2020년과 2022년 제임스 서클링 톱100 와인에서 4개 빈티지가 99점을 받아 세계 최고의 아르헨티나 와인으로 등극했다. 우코밸리 5개 빈야드중 파라헤 알타미라(Paraje Altamira) 말벡으로 빚으며 야생효모를 사용해 프렌치 오크(새오크 80%)에서 16개월 숙성한다. 블루베리, 검은자두, 카시스와 제비꽃, 다양한 허브가 잘 어루지고 질감이 뛰어나다.
발보씨는 와인메이커의 개입을 최소화는 형태로 와인을 양조한다고 강조한다. “과도하게 과일 향과 성분을 뽑아내기 위해서 발효때 온도를 높이거나 포도즙을 위아래 섞는 펌핑 오버나 펀칭 다운을 세게 하지 않아요. 낮은 온도에서 신선한 포도즙을 지속해서 뽑아내죠. 오크의 개입dl 강해지면 포도의 본연의 떼루아 느낌이 사라지고 오크가 점령을 해버리기 때문에 두 번 이상 사용한 오크 위주fh 10∼11개월 정도 숙성한답니다.” 발보씨의 시선은 이제 ‘건강한 와인’으로 옮겨지고 있다. 이미 2019년 지속가능성 인증, 2021년 국제표준인증사 레티스(LETIS)의 유기농 인증, 2020년 영국소비협회(BRC) 글로벌 식품안전 표준인증도 받는 등 거장답게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수사나 발보는…
▲1956년 아르헨티나 멘도사 출생 ▲멘도사 후안아구스틴마짜대학 양조학과 졸업 ▲아르헨티나 최초 와인메이커(미셸 토리노) ▲수사나 발보 와인즈 설립(1991년) ▲아르헨티나와인협회장(2006~2008년, 2008~2010년, 2014~2016년) ▲멘도사 최초·진보당 첫 여성 국회의원(2015∼2017년) ▲G20 산하 W20 의장(2018년) ▲현 W20 아르헨티나 의장 ▲드링크비즈니스지 선정 ‘올해의 여성’(2015년) ▲와인 애드버킷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와인메이커 10인’(2018년) ▲영국 국제와인평가대회(IWC) ‘평생 업적상’ 수상(2022년)
●최현태 기자는…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