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판정부 “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 이익·엘리엇 손해 구조”

이정훈 2023. 7. 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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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의결권 부당 행사로 손해”
“정부 불법 개입으로 ISDS 소송 발생”
정부가 배상할 경우 이재용 등 책임 분명
법무부 불복해 구상권 청구는 그 결과 따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 소송에서 중재판정부가 국내 법원 판결을 인용해 “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의 이익과 삼성물산 주주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라고 판정했다. 아울러 정부의 1389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구상권 청구 대상임이 명확해졌다. 하지만 법무부가 중재판정부의 판정에 취소소송을 제기해 구상권 청구는 취소소송 결과에 따라 판단할 사안으로 미뤄졌다.

18일 중재판정부가 누리집에 공개한 판정문을 보면, 중재판정부는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재판부 판결을 인용하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부당 행사로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 피해를 인정했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법원은 국민연금이 (합병)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본건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표결과 국민연금과 청구인(엘리엇)을 포함한 다른 삼성물산 주주들이 입은 손실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중재판정부가 한국 법원의 판단보다 우선할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이 본건 합병에 반대 표결을 했다고 하더라도 2.7%가 넘는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본건 합병에 반대 투표하여 본건 합병의 승인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국 정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도 밝혔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삼성물산 주주들이 피해를 봤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 중재판정부는 이번 소송이 “국민연금의 본건 합병 투표에 대한 피청구국(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발생했다”며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 전 장관 등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사실을 받아들인 셈이다. 반면 엘리엇이 합병 반대에 실패해 소송에 나섰다거나 삼성물산과 2016년 3월 맺은 비밀합의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한국 정부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389억원(법률 비용 포함)을 엘리엇에게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삼성물산과 엘리엇. 연합뉴스

이로써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 지배력을 확보한 이재용 회장의 책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삼성물산 합병으로 이 회장이 이득을 얻고 엘리엇을 비롯한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정부가 이를 배상하게 되면 이재용 회장 등 삼성 경영진을 비롯해 불법 합병에 연루된 박근혜 전 대통령, 문형표 전 장관, 홍완선 전 본부장 등 불법행위에 참여한 이들이 구상권 청구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상권 청구는 아직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법무부는 이날 관할 위반(중재합의 범위 일탈 등)을 이유로 중재판정부 판정에 불복해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에스디에스는 국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가 행위로 볼 수 없어 엘리엇이 주장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무관하다는 게 법무부 주장이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가 수용하지 않은 관할 위반 주장을 재차 펼칠 전망이다. 중재판정부는 관할과 관련해 “한국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주식을 취득하기 위해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 해당 주식을 취득하는 주체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국가”라며 “국민연금은 기능적 및 재정적으로 당사국과 연결되며 사실상 국가기관”이라고 판정했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중재판정이 잘못됐으니까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라며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상업적 지분권만큼을 행사한 것이어서, 충분히 검토해보면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제통상 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는 “갈수록 국가가 투자자에 대해 관여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협정이나 양국 간 투자협정 등에서 국가기관의 행위를 넓게 인정하는 것이 최근 국제중재 추세”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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