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에 1300억 배상’ 실익 없는 ‘불복 소송’ 강행

강연주 기자 2023. 7. 18. 21: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무부 “국가에 손배 책임 물은 ISDS 사건 찾기 어려워”
법조계 “취소소송 사유 기존과 동일…승소 가능성 낮아”
‘원인 제공’ 박근혜·이재용 상대 구상권 청구 계획엔 ‘함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배상 판정을 한 지 28일 만이다. 정부는 중재판정부가 손해배상금을 계산하면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며 중재판정부에 손해배상 판정에 대한 정정 및 해석 신청도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PCA 중재판정부 판단에 대한 취소 신청을 영국 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해 정부가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한 바 있다. 한 장관은 “공공기관 등이 소수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 사안에서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ISDS 사건은 찾기 어렵다”고 취소 소송 제기 배경을 밝혔다.

중재판정부 판단이 유지될 경우 향후 유사 ISDS 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한 장관은 중재판정부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삼성 합병 관련 직권남용 유죄확정 판결을 주요 판단 근거로 둔 것도 문제 삼았다. 그는 “저는 앞선 형사사건들을 수사해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이라며 “(문 전 장관과 같은) 개인의 일탈 행위가 있을 때마다 정부가 조 단위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게 ISDS 시스템 취지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취소 소송과 별개로 PCA 중재판정부에 기존 판정에 대한 정정 및 해석 신청도 제기한 상태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취소 소송 사유는 정부가 그간 중재판정부에 주장해온 바와 거의 같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는 정부가 논거로 든 것이 통상적인 ISDS 불복 요건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중재판정부가 기각한 내용의 반복이라 취소 소송 실익도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종보 변호사는 “ISDS 불복 절차는 매우 엄격하다. 법무부가 밝힌 취소 소송 사유는 기존 주장과 동일한 것으로서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을 걸로 본다”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불복 절차를 제기하려면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정부가 제기한 취소 소송 사유에는 절차 측면에 대한 내용도 없다”며 “불복 사유가 안 된다”고 했다.

정부가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직권남용 유죄확정 판결과 엘리엇 사건의 법리가 다르다고 본 것을 두고도 “말이 안 되는 논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2015년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캐스트보트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었던 만큼, 의사결정 과정 위법성과 의결권 행사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국민연금은 다른 소수주주와 달리 정부 개입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나타난 불법적인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만 축소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법부가 인정한 것과도 배치된다”고 했다.

법무부는 엘리엇 소송의 원인 제공자 격인 박근혜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구상권 청구 계획과 관련해선 ‘소송전략’을 이유로 입을 다물었다. 이에 관해 송기호 국제통상법 전문 변호사는 “취소 소송 제기가 박근혜씨와 이 회장 등에 대한 구상권 행사 포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엘리엇 중재판정문에 이 회장의 공동불법행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된 경우 이 회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한국 정부에 실익”이라고 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