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논산 수해농가 방문 윤 대통령 “돈 얼마가 들더라도 정부가 원상복구”
기후변화 대비책도 설명…"이상기상 전제한 하천 정비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집중호우로 농업 피해가 크게 발생한 충남 공주·논산 일대 농가를 방문했다. 전날 경북 예천 산사태 피해지역에 이은 농촌 수해현장 행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당초 예정에 없던 농촌현장 방문을 두시간 넘게 이어가면서 피해농가들을 만나 전폭적인 지원을 수차례 약속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장관 직무대행), 김태흠 충남도지사,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 최원철 공주시장 등도 함께했다.
초록색 민방위복을 입은 윤 대통령이 오후 4시30분께 먼저 도착한 곳은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마을. 시설하우스 단지를 둘러보면서 “이게 지금 무슨 하우스예요?”라고 묻자, 김천기 이장이 “사과대추 하우스입니다”라고 답했다. 정 장관이 곁에서 “가을에 출하하려던 사과대추가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금강에서 범람한 물이 하우스를 통째로 덮쳤다가 빠져나간 터라 사과대추 한알도 성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우스 프레임이 무너지지 않은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
동행한 정 의원은 “(피해를 본) 작물들이 신품종이라 보험처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농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배수펌프는 물론이고, 농작물 피해 보상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정 장관에게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찜통같은 하우스 안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32사단 장병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가 많다”고 일일이 격려했다.
이어 방문한 축사도 참담한 모습은 마찬가지. 소들이 떠내려가 텅 빈 축사 내부는 진흙으로 뒤섞인 여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농장주 김유희·최숙자씨 부부는 “2007년부터 축사를 운영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김씨는 “14일 밤 축사에 빗물이 3m 넘게 차올라 소 33마리 중 22마리가 사라졌다”며 “소는 주인이 데리고 나가지 않는 한 도망치지 않는데도 피해가 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 대통령은 김씨의 손을 잡고 “고생이 많으시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이 농장에선 전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적이 있었다. 진득한 토사로 뒤덮인 우리에서 암소가 새끼를 낳은 것. 김씨는 “수해로 힘이 빠진 어미소가 출산을 힘들어하자 장정 4명이 도와 송아지가 태어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축사 복구를 지원하던 32사단 김관수 사단장은 68개 지역에 장병 1300명을 투입해 재난 극복을 돕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분뇨 냄새가 나는데도 장병들이 고생이 많다. 우리 장병들밖에 없다”고 격려했다.
축사를 나온 윤 대통령은 인근 대학2리 마을회관에서 주민 20여명을 만나 고충을 들었다. 김 이장은 “마을 지대가 얕아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된다”며 “배수펌프장을 설치하고 하천 정비도 해주셔야 주민들이 편하겠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이 즉석에서 “준설도 하고 배수 펌프시설도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다행히도 주택은 많이 파손되지 않은 것 같은데 농작물 피해가 커서 안타깝다”며 “오늘 충남지사, 농식품부 장관이 같이 왔는데 직접 상황을 봤으니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정부가 원상복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윤 대통령이 “농산물 피해 현황을 살펴서 가을추수가 정상적일 때와 다름없도록 지원할 수 있게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하자 주민들은 입을 모아 감사를 표하며 박수를 보냈다.
이같은 위로에 더해 기후변화에 대응한 새 대비책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기존 배수장 용량은 평균 강수량을 기준으로 설계했는데 이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눈·비·가뭄이 많아져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1년에 내릴 비가 사흘 동안 내리는 이런 현상이 일반화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하천 정비계획을 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가 태평양도서국 등 다른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도 직접 영향을 받고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논산으로 향한 윤 대통령은 성동면 수해현장을 찾아 피해를 입은 수박농가와 육묘장을 둘러봤다.
백성현 논산시장은 “이 지역은 논산천과 금강천에 인접한 저지대로 인근 둑이 무너져 수박 비닐하우스가 완전히 잠겼다”고 했다.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이 비닐하우스로 직접 들어가 물에 잠긴 수박을 만져보며 “수확할 수 있느냐”고 묻자, 백 시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동행한 김 지사는 “이 지역 수박농가의 80% 정도는 보험에 들었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 농가들은 시름이 크다”며 안타까워 했다.
대통령을 만난 한 주민은 “대통령님 큰일났습니다. 도와주세요”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그의 손을 꼭 잡고 “많이 놀라셨겠다. 우리 정부가 긴축재정을 유지하는 것은 이럴 때 쓰려고 돈을 아낀 것”이라며 “재난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복구 노력을 하는데 당연히 정부가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위로했다.
인근 마을로 이동해선 육묘장을 찾았다. 논산 대표작물인 방울토마토와 오이·상추 모종을 키우는 곳이었다. 육묘장 하우스는 성인남성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찼던 탓에 웃자라거나 시들어버린 모종이 가득했다.
육묘장 관계자는 “모종은 크기가 작아야 하는데 콩나물같이 크게 자라서 못쓰게 됐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정 장관이 “물에 빠진 모종은 쓸 수 없다”고 부연하자, 대통령은 “너무 걱정 마시라. 다 복구하실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 돈을 쓰려고 정부가 그동안 재정을 아껴왔다”며 주민들을 다독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집중호우 피해대책을 논의한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혈세는 재난으로 인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면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의 정치 보조금을 전부 삭감하고, 농작물 피해 농가와 산 붕괴 마을 100% 보전에 투입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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