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무른 과채, 오르는 물가…서민 ‘속 썩는 여름’

시금치·적상추값 폭등에…“사장님 마트 가서 사세요”
식당 주인 “장마철마다 올랐지만 올여름 유독 힘들어”
폭염·태풍 등 날씨 악재 계속…“추석 물가 벌써 걱정”

18일 한 시민이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채소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밥상 물가 비상

“안 오른 게 없어요. 오이가 하도 비싸 오이지를 못 담근다니까.”

인천에서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김현주씨는 18일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록적인 폭우에 오이는 물론 대파, 상추 등 채소값이 줄줄이 올랐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부터 닭고기값 상승도 겪은 터라 속이 더 타들어간다. 김씨는 “농산물시장에서 물건을 대주는 사장님이 ‘대파 가격이 많이 올랐으니 마트에서 사서 쓰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전날 마트에서 2980원에 산 대파 한 단이 도매시장에서는 품질에 따라 최대 3900원대까지 거래됐다. 농산물시장은 산지 상황에 따라 그날그날 가격이 변동되지만 마트는 물건을 비축해놓고 팔기에 시차에 따른 약간의 가격차가 생긴다. 하지만 마트 물가가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미 소매점에서는 시금치 한 단에 6000~7000원, 오이 한 개에 1000원꼴에 판매되고 있다.

김씨는 “경기가 안 좋은 데다 물가도 올라만 가지 내려오지 않고 있잖느냐”며 “매년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야채값이 오르지만 올해 유독 더 힘들다”고 말했다.

집중호우가 농작물 생산지를 덮치면서 밥상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장마철 호우에 이어 폭염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태풍까지 닥칠 수 있어 한동안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안정을 도모하던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상등급 시금치 4㎏ 도매가격은 5만4840원으로, 한 달 전 1만7170원보다 219.4% 올랐다. 1주일 새 50% 넘게 뛰었으며, 평년(2만4439원)과 비교해도 2배 넘게 비싸다. 상등급 적상추 4㎏ 도매가격은 5만9720원으로 한 달 전 1만9345원보다 208.7% 급등했다. 같은 기간 얼갈이배추와 다다기오이 가격은 각각 133.6%, 85.1% 상승했다.

전북 고창, 충남 논산, 경북 예천 등 여름과일 산지들이 물에 잠겨 수박, 복숭아 등도 앞으로 가격 상승이 불 보듯 뻔하다. 특히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이미 평년 장마철 강수량을 넘어선 비가 쏟아지면서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장마 이후 폭염과 태풍, 9월 추석 등 물가를 끌어올릴 요인이 줄지어 있다.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신모씨는 “야채값 상승세가 한동안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면서 “배추 같은 건 장마로 인해 물을 많이 먹고 있다가 해가 쨍해지면 다 쓰러져 값이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씨는 “아직 추석까지 한 달 넘게 남은 만큼 영향이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태풍이 올 경우 야채보다는 과일값이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장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걱정도 벌써부터 나온다. 신씨는 “김장철에 나올 채소 등은 아직 파종하기까지 시간이 있어 지금 상황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