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무른 과채, 오르는 물가…상인 ‘속 썩는 여름’

강은·김송이 기자 2023. 7. 18. 2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가락시장 오이 도매가격 하루 사이 2배 ‘껑충’
채소·과일 금세 상해…종일 골라내도 판매 어려워
“값 오르자 손님도 뚝…30년 장사했는데 가장 심각”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한 상인이 18일 폭우로 인해 썩은 복숭아를 골라내고 있다. 강은 기자
시장 상인 울상

지난 17일 오후 11시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경매사들이 내는 특유의 ‘호창’ 소리가 채소동 경매장에 울려 퍼지자 무선 응찰기를 손에 든 중도매인과 납품업자 등이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경매 참가자 수십 명이 차곡차곡 쌓인 채소 상자 사이를 정신없이 오갔다. 이들은 상추와 오이, 고추를 꺼내 만져보거나 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계속 비가 오니까 채소들이 다 짓물러서 그래. 평소 같으면 저렇게 코 박고 냄새 맡고 그러진 않지.” 경매대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던 김청한씨(57)가 말했다. 전광판에는 생산자, 품목, 수량, 단가, 낙찰자 등 목록이 석 줄씩 표시되고 있었다. 대형마트에 채소를 납품한다는 김씨는 “오이가 100개씩 담긴 한 상자당 8만~9만원이나 하는데, 전날과 비교해도 2배가 뛴 것”이라고 했다.

연이은 폭우로 농작물을 내다 파는 시장 상인들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시장을 돌며 채소·과일 등을 살펴보니 색이 변하고 짓무른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채소값은 오히려 2배, 3배 뛰었다. 비 피해로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경매사 박혜령씨(30)는 “지난주와 비교해 출하량이 절반이나 감소했다”면서 “폭우가 내리면 이렇게 영향이 즉각적으로 눈에 보인다”고 했다.

상추와 깻잎 같은 잎줄기채소는 피해가 유독 심하다. 물먹은 잎은 햇볕에 쉽게 녹아내리기 때문에 올해처럼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날씨를 견뎌내기 어렵다. 잎줄기채소를 도매 유통한다는 권모씨(55)는 “경매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다음날 낮에 판매할 것까지 생각하고 사야 하는데 그때까지 채소들이 버텨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18일 0시30분, 채소 경매는 마무리되고 건너편 과일동 경매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과일상들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한국청과에서 일한다는 양상국씨(58)는 “채소와 달리 과일은 맛이 없으면 사람들이 아예 안 사기 때문에 가격이 도리어 폭락한다”면서 “여기 있는 상자 안에도 썩은 과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수백 개씩 쌓인 복숭아 상자 더미를 가리켰다.

과일 중도매인들은 점포 곳곳에서 썩은 과일을 골라냈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썩은 복숭아를 쓰레기봉투에 넣던 고운형씨(52)는 “말도 마라, 얼마나 버리는지 모른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산지에서) 물먹은 과일을 보내면 여기서 다 썩어버려요. 속상해도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있나요? 이렇게 많이 버리면 하루 벌이를 날리는 거예요.” 4~5개씩 담겨 있던 복숭아 상자 십수 개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는 “30년 넘게 이 일을 했지만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어우, 짜증 나. 이거 안 되겠다.”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들도 상한 채소를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노랗게 변한 상추를 골라내던 김종희씨(59)는 “한 상자에 1만원대였던 게 이제 4만5000원”이라며 “도매시장에 물건이 있어도 비싸서 못 들여온다. 갑자기 값이 뛰면 손님들도 안 사간다”고 말했다. 그는 “(도매상하고) 싸워서 다른 물건으로 다시 받아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상인들은 다가오는 추석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무겁다. 맞은편 월드컵시장에서 채소 가게를 하는 박달용씨(62)는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데 물건이 남아나겠나”라며 “앞으로도 값이 계속 오를 텐데 추석이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해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값이 뛰겠지만 이미 너무 많이 올라서 장사할 게 없다”고 했다.

시장을 오가는 이들은 폭우로 인한 참사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김종희씨는 “사람도 죽어가는데 물건이 어떻게 살겠나”라고 했다.

강은·김송이 기자 ee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