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간첩? 앵커와 불륜?... 中 외교부장 친강이 사라졌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7. 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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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후임으로 발탁된 지 7개월… 20여일째 공식 석상 안 나타나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5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네덜란드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뉴시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어디에 있는가.’ 중국 베이징의 외신 기자들은 요즘 외교가 인사를 만나면 이 질문부터 던진다. 친강은 지난달 25일을 마지막으로 3주 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친강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제공할 정보가 없다”고 답을 피하면서 의문은 더 늘어나고 있다. 이유 모를 부재가 길어지면서 중국 외교가와 금융권에선 친강 낙마설과 아울러 불륜설·간첩설까지 도는 상황이다. CNN은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외교부장이 20일 넘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친강은 지난달 25일 베이징에서 스리랑카·베트남 외교장관과 러시아 외교차관을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이달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 회의(4일)가 열리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6일)과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16일)가 중국을 방문하는 등 숨 가쁜 외교 일정이 이어지는데도 친강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1~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장관급 연쇄 회동에 친강이 불참해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만남이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그 전까지 친강이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최장 기간은 설 연휴 때인 8일이었다.

친강은 중국에서 시진핑 눈에 들어 ‘헬리콥터식 초고속 승진’을 한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왕이 현 중앙정치국 위원의 후임으로 외교부장에 발탁됐고, 지난 3월엔 전례에 비해 3년 정도 빨리 국무원 지도부 구성원인 국무위원에 올랐다. 중국의 외교 노선인 거친 ‘전랑(늑대 전사) 외교’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지난달 25일 친강 외교부장이 베이징에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을 만나 함께 걷고 있다./중국 외교부

중국 외교가는 친강이 낙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체제 특성상 외교 수장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대외 공표 없이 잘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1일 정례 브리핑에선 친강이 ‘건강 사유’로 대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이는 고위직 건강 상태를 일급비밀로 하는 중국 관례에 어긋난다. 건강 문제라면 바로 아래인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상급자인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이 친강이 참석해야 하는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도 ‘친강 사태’ 수습 차원처럼 보인다. 몸이 아프다면 문건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조치도 없다.

중국 지도부가 친강 관련 소식을 강도 높게 검열하고 있는 정황도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미국인 칼럼니스트 필립 커닝햄은 18일 트위터에 “지난 15일 SCMP에 기고한 칼럼 중 친강 관련 내용이 상의 없이 삭제됐다”고 했다. 그가 밝힌 삭제된 부분은 “친 부장이 종적을 감춘 것은 그가 아프거나 정치적 입지를 잃었다는 의미” 등 5문장으로 구성된 한 단락 통째다. SCMP는 2015년 중국 기업인 알리바바에 인수된 매체로, 중국 지도부의 영향권 안에 있다.

일부 중화권 매체는 친강이 간첩 혐의 등으로 조사받는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 가설엔 의외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일부 매체는 “푸틴이 시진핑에게 친강이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를 흘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것은 중죄 중의 중죄다. ’군 기밀 유출설’도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중국 로켓군 부대 관련 보고서가 발간됐는데, 이 보고서에 담긴 민감 정보가 친강의 소극적 대응으로 미국에 유출됐단 설(說)이다.

지난달 25일 이후 3주 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 /환추스바오

일부에선 친강의 불륜설마저 상당히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중국 금융권에선 홍콩의 한 방송국 아나운서와 친강이 불륜 관계이고, 이 때문에 그가 중국 중앙기율검사위(반부패 기구)의 조사를 받는다는 글이 돌았다. 혼외자가 미국 국적이란 얘기도 나왔다. 이 소문은 올 초에도 한 차례 돌았는데, 친강이 자취를 감추자 다시 불거진 것이다. 영국 더타임스는 “중국에서 고위 정치인을 둘러싼 불륜설은 당 노선에 반기를 든 인물을 제거할 때 구실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중국 지도부가 ‘노코멘트’로 일관하면서 친강에 관한 소문의 진상은 확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17일 “모든 정보를 비밀에 부치는 중국의 관행 때문에 친강 부재와 관련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며 “하지만 시진핑이 2012년 집권 직전 2주간 잠적해 힐러리 클린턴(당시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취소하고도 문제없이 복귀한 전례를 볼 때 친강이 병에서 회복 중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중국 고위 외교관들이 간첩 혐의나 정보 유출로 조사받아 공개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슬란드 주재 중국 대사인 마지성 부부는 2014년 현지에서 6개월 동안 실종됐는데, 이후 그가 일본에 국가 기밀을 누설한 간첩 혐의로 중국 국가안전부(국정원 격)에 체포된 사실이 알려졌다. 2006년 12월 리빈 전 주한 중국 대사는 김정일 방중 관련 정보를 한국 인사에게 언급했다가 체포됐다. 2007년엔 국영 언론인 신화사의 위자푸 외사국장이 외국 기구에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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