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가리지 않고 덮친 재앙…세계는 휘청
폭염, 폭우, 산불.
이상기후로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 한낮 기온 50℃를 넘긴 가운데 세계 각국에선 폭염·극한호우·산불 등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이상기후로 인한 전 세계 피해현황을 이같이 보도했다.
◆미국·유럽 ‘기록적 폭염’…"7월4일 역사상 가장 더운 날"
미국 서부와 남부는 기록적인 폭염에 휩싸였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고 알려진 캘리포니아주(州) 데스밸리 사막 기온은 16일 기준 53℃까지 치솟으면서 90년 만에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남서부 애리조나주의 주도(州都) 피닉스의 한낮 최고기온은 17일 45.5℃까지 올랐다. 이 지역에선 한낮 최고기온이 43.3℃(화씨 110도)를 웃도는 날이 18일 이상 이어졌다. 애리조나주 매리코파 카운티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피닉스에서만 425명 가량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이 지역에서 노숙생활을 해온 크리스티나 힐씨는 “빨래방에 있는 건조기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며 “질식할 것만 같은 더위”라고 하소연했다.
반면 미국 북동부에선 ‘폭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버몬트주는 11일 하루 만에 200㎜ 넘는 비가 쏟아져 삽시간에 물이 불어났다. 펜실베이니아주 북동쪽에 위치한 벅스카운티 어퍼 메이크필드는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150~180㎜ 비가 내려 5명이 사망했다.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에 따르면 지난 4일은 ‘역사상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세계 평균기온 17.01℃를 기록하면서 2016년 8월 기록인 16.92℃를 넘어선 것이다. 로버트 보타드 기후 과학자는 “이상고온에 대비하지 못하는 건강 취약계층에 대한 우려카 크다”며 “(올해 폭염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도 불볕더위로 들끓고 있다. 지난해 폭염으로 6만1000명 가량이 사망했는데, 올해도 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이번주 이탈리아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에서 한낮 최고기온 48℃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보건국은 17일 로마·볼로냐·피렌체 등 16개 도시에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폭염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어 적색경보 발령지역은 19일 23개 도시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캐나다·그리스 등지서 산불…"기후위기의 결과"
이상고온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지에선 산불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캐나다에선 5월4일 앨버타주(州) 일대를 시작으로 산불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캐나다산불센터에 따르면 올들어 4148건 가량의 산불이 발생했으며 국토 1000만㏊를 태웠다. 미국 CBS는 “캐나다 서부에서 동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화재는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고온 현상과 가뭄 등 혹독한 기상조건이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선 15일 시작된 산불이 강한 바람 때문에 잡히지 않으면서 17일까지 4600㏊의 산림을 태웠다. 그리스에선 수도 아테네 인근의 두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주민 200여명과 여름캠프에 참가했던 어린이 1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힘든 여름이 시작됐고 더 힘든 날이 이어질 것"이라며 “날로 심해지는 기후위기의 결과”라고 꼬집었다.
◆중국 북서부 52.2℃ 기록…한국·일본 ‘폭우’ 덮쳐
아시아도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북서부 싼바오의 한 마을에선 한낮 52.2℃까지 오르며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일본도 47개현 가운도 32곳에선 열사병 경보가 발령됐다.
폭우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북부 아키타현 다이헤이잔은 15일부터 16일 낮 12시 기준 415.5㎜의 폭우가 내렸으며, 후지사토마치 321.5㎜, 센보쿠·가쿠노다테 321.5㎜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이는 예년 7월 한달 강우량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16일 이 지역에 최고 경계경보인 5단계 ‘긴급 안전 확보’ 명령을 내렸다.
인도에선 몬순(우기) 폭우로 최악의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인도 기상청은 16일 히마찰프라데시, 우타라칸드, 인도령 잠무·카슈미르, 우타라프라데시, 비하르 등에 폭우 경보를 발령했다. 인도 내부무에 따르면 몬순 기간 인도 전역에서 폭우로 인한 사망자는 624명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도 13일부터 쏟아진 비로 최근 12년 가운데 호우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18일 오후 6시 기준 사망자는 44명, 실종자는 6명으로 집계된다. 2011년 태풍으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나 7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후 최대 규모다.
◆원인은 ‘기후변화’ …"세계 지도자들 행동할 때"
과학자들은 폭염·극한호우·산불 등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기후의 배후에 ‘기후변화’가 있다는 분석이다.
안잘 프라카쉬 환경운동가는 중동매체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이상고온 현상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며 "우리가 점점 더 많은 탄소를 대기에 배출하면서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1.16℃ 가량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사레물 후크 국제기후변화개발센터 소장도 “(이상기후의 원인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가 1℃ 이상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과학자들이 훨씬 나중에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던 일이 빠르게 닥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WMO)는 극심한 더위와 강우가 8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을 보호할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극단적인 기상이 보건과 생태계·경제·농업·에너지·물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온실가스 배출을 가능한 한 빨리 대폭 줄여야 하는 시급성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비벡 샨다스 포틀랜드 주립대학교 기후변화적응 도시정책학과 교수는 "도시에 더 많은 녹지공간을 조성해 열섬현상을 완화해야 한다"며 "에어컨 사용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사무총장도 "기후위기는 경고가 아니라 현실"이라며 "세계 지도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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