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몸부림 친 흔적"...오송 지하차도 침수차량의 처참한 모습

유가인 기자 2023. 7.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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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기준 24명의 안타까운 사상자(사망 14명·부상 10명)가 난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사고 발생 후 3일간 궁평2지하차도 현장에서 목격한 모습이 주마등이다.

구조를 위해 궁평2지하차도 앞을 가득 메웠던 소방관, 경찰, 군인, 의료진 등이 하나둘 자리를 뜬 뒤였다.

이곳에는 당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참혹함을 온전히 간직한 차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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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현장 3일 연속 방문해 보니 통제·감시하는 경찰들만 남아
인근 마을 피해 흔적 곳곳, 다시 내리는 비에 거칠게 흐르는 미호강
"창문 깨지고 문 부서져" 탈출 위한 몸부림 선명했던 침수 차량들
18일 오후 1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침수됐던 747번 버스가 청주의 한 견인차 사무소에 옮겨져 있는 모습이다. 사진=김영태 기자
오송 지하차도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 되는 18일 오전 11시 경찰들이 비를 맞으며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유가인 기자

18일 기준 24명의 안타까운 사상자(사망 14명·부상 10명)가 난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15일 아침 처음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나흘이 지났다. 6만t의 물길이 된 450여m의 궁평2지하차도는 차량 17대가 갇히면서 생사를 오가는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당장 궁평2지하차도에 들어간 물을 빼기 위해 대용량방사시스템이 가동돼 물을 뿜어냈고, 수색과 구조에 수많은 소방과 군인들이 투입됐다. 습한 날씨 현장을 누비던 의료진도 분주했다. 물이 조금씩 빠지고 실종자들이 하나둘씩 발견됐으나 이미 늦은 때였다. 오열하는 유족들을 뒤로하고 무심한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사고 발생 후 3일간 궁평2지하차도 현장에서 목격한 모습이 주마등이다.

18일 오전 11시쯤 처참했던 사고 현장은 고요했다. 구조를 위해 궁평2지하차도 앞을 가득 메웠던 소방관, 경찰, 군인, 의료진 등이 하나둘 자리를 뜬 뒤였다. 경찰들만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현장을 지켰고, 어수선한 분위기와 급박함은 없었다.

마무리된 현장이 궁금해 와봤다는 인근 마을 주민 A(50대) 씨는 "처음 왔을 때보다 분위기가 너무 고요해졌다"라며 "시신이 다 수습된 걸로 알고 있는데 며칠 동안 저 안에 갇혀서 얼마나 고통이었겠냐.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라고 말하며 지하차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근 마을로 이동해 보니 성인 키를 훌쩍 넘는 풀숲들은 흙탕물 색으로 오염돼 있었고 잔재물들이 매달려 폭우가 휩쓸었던 그날을 증명했다.

강내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B(60대) 씨는 "사고 당일 마을에서도 폭우 피해가 컸다"며 "키가 167㎝인데 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바로 옆이 미호천교 아래라 지하차도를 잠기게 한 미호강이 흐르는데 비가 매섭게 와서 거칠게 흐르는 강이 너무 무섭게 느껴진다"라고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18일 오후 1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침수됐던 747번 버스가 청주의 한 견인차 사무소에 옮겨져 있는 모습이다. 사진=김영태 기자

같은 날 오후 1시 청주의 한 견인차 사무소. 이곳에는 당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참혹함을 온전히 간직한 차들이 모여 있었다. 주인을 잃은 채 견인차에 끌려온 차들은 경찰 통제선에 둘러싸여 사고 당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중 시선이 꽂힌 것은 빨간색 '747번 버스'였다.

경찰 통제선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관찰한 버스의 모습은 처참했다. 버스의 전면과 탑승·하차구 사이 창문은 전부 깨져있었고, 휩쓸려 온 나뭇가지들은 차량 와이퍼에 뒤엉켜 있었다. 이곳에 견인된 다른 침수 차량들도 흙으로 뒤덮이고 창문이 깨져 온전한 모습의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차에 남은 흔적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떠나간 이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남겨진 유족들의 앞날까지 함께 휩쓸어 간 이번 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라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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